‘수시모집 발표’ 왜 하필 이때인가

2010.11.04 07:54:00

대학입시일정 수험생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요즘 고3 아이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아마도 그건 시험이 다가옴에 따라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교실 문을 여는 것조차 미안할 때가 있다. 조금이나마 아이들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언제부턴가 야간자율학습시간 교실을 출입할 때는 항상 뒷문을 이용하곤 한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의 전원을 꼭 확인해 본다.

지난 화요일 밤(3일). 자율학습감독을 위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교실 뒷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담임인 나의 출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조금 야속하기도 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 발걸음이 아이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살폈다. 긴장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많이 상기해 보였다. 그런데 교탁 앞에 자리 두 개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생활을 잘하고 있는 터라 처음에는 그 아이들의 부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잠깐 늦는 줄만 알았다. 몇 분이 지나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몇 명을 보내 찾아보게 하였다.

특히 두 명 중 한 아이는 10월에 발표된 수시모집에 모두 낙방하여 방황을 많이 했었다. 간신히 마음을 잡고 수능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다른 한 아이는 그나마 학교 내신이 좋아 수시모집에 지원한 대학(다섯 군데) 모두 1단계에 합격하여 지난 10월에 심층면접과 논술을 보고 왔다. 그리고 11월(4일, 5일, 8일, 9일, 16일)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특히 논술 준비를 위해 방학을 이용해 고액 과외까지 받은 아이였다.

잠시 뒤,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나를 보자 울먹이기 시작하였다. 조금 전까지 고요했던 교실이 갑자기 그 아이들의 울음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부하고 있던 아이들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생님, 저 대학 떨어졌어요. 어쩌면 좋아요?”
“발표일이 내일인데…”
“아니에요. 조금 전에 확인했어요.”

“선생님, 저 대학에 또 떨어졌어요.”
“……”

알고 보니 대학의 합격자 발표일이 하루 앞당겨진 것이었다. 떨어진 사실을 알고 도저히 공부할 기분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문득 지난달 논술을 보고 온 뒤, 상당히 자신감이 넘쳐났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그래서 담임인 나 또한 내심 합격했으리라 생각했다. 이 대학 전형을 위해 서울에 소재한 논술 학원까지 다녔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 생긴 일이라 담임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불합격으로 그 후유증이 얼마 남지 않은 수능 당일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남아 있는 합격자 발표였다. 만에 하나 발표일이 남아 있는 대학 중 한군데라도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 아이는 심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으나 책상에 엎드려 계속해서 흐느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수험생의 이런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대학의 입시일정 처사에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일부러 수험생을 골탕먹이려는 대학 측의 의도로 보였다.

수능 최저학력이 없는 대학의 경우, 최소 수능 한 달 전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여 아이들이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능 최저학력이 있는 대학의 경우, 발표 일을 수능 이후로 하여 아이들이 최저학력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능시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의 대학입시 일정은 수험생을 배려하기보다 대학의 실리에 맞춰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 발표일이 수능시험 이틀 전인 16일에 발표되는 대학마저 이 아이가 떨어져 수능시험을 망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는가.

오늘도 이 아이들을 위해서 담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해 본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18일(목요일)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를 수첩에 적어둬야겠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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