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세상에 던지는 화두

2010.11.11 07:56:00

스마트폰이 화제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어느 덧 4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조사기관들은 2014년에 스마트폰 보급률이 50%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추세로 본다면 그때쯤엔 사실상 모든 휴대폰이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스마트폰은 손 안에 컴퓨터로 불리는 것처럼, 스마트폰 휴대는 손 안에 PC와 인터넷을 들고 있다는 뜻이다. 손에 컴퓨터를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 한 것은 물론 즐거움이 넘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등 비디오를 언제 어디서나 보고 들을 수 있다. 무료한 시간이 없으니 생활이 활기차고 행복하다. 언제 어디서든 내 가족과 항상 연락할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함도 느낀다.

스마트폰은 음악 감상부터 장보기, 은행 업무, 주식거래까지 가능해지면서 우리 생활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낯선 곳에서 사람을 만나 길을 묻던 불편함도 없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어른에게 선생님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손에 스마트폰이 모두 해결해 준다.

보도에 의하면, 조만간 스마트폰과 같은 기능을 가진 시스템을 장착한 승용차들이 등장해 자동차 운전석에서 터치스크린이나 음성으로 대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집을 비운 사이에 방문자 기록이 남고, 귀가 전에 스마트폰으로 온도를 높일 수 있다. 멀리 회사까지 출근하지 않고 업무 처리가 가능해진다.

앞으로 스마트 패드, 스마트 TV 등 더 많은 스마트 기기들이 출현한다. 스마트 러닝, 스마트 빌딩, 스마트 기업, 스마트 시티, 스마트 국가 등 그야말로 온 세상이 스마트로 통한다. 스마트 기기가 가져오는 우리 사회의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을 것이다. 개인은 물론 조직문화도 보다 개방되고 효율적으로 바뀔 것이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접촉하는 삶의 모습은 빠르고 편리해진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화하는 스마트 세상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스마트 세상은 말 그대로 기기에 의존하는 삶이다. 프로그램 검색으로 룰을 따라가는 종속된 삶이다. 그것은 창조적인 문화도 없고 건조한 삶만 있다.



과거 우리의 삶으로 비추어 볼 때 급속도로 성장한 문화는 결국 우리의 삶에서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례가 많다. 스마트폰도 벌써 걱정이다. 스마트폰은 애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위치 추적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참 친절하다. 그러나 이러한 첨단 기능은 뜻하지 않게 재앙으로 올 수가 있다. 소위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가 우려 된다. 실제로 최근 은밀한 사생활이 인터넷에 돌아 그 충격으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컴맹이라는 말이 지금도 있듯이, 문명의 이기가 나올 때마다 그 문명에 소외받는 삶들이 있다. 스마트폰맹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스마트폰도 어렵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접근을 하지 않고 마음에 평온을 누리고 있는데, 오히려 기계치 대접을 받는다. 이도 우리가 변화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기보다 도구 자체에 매달려 나타난 현상이다.

넘쳐나는 콘텐츠도 덫이다. 스마트폰은 앱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활용할 수 있는데, 이렇게 넘쳐나는 콘텐츠가 오히려 필요한 정보를 묻어 버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영상이 손 안에서 그리고 안방까지 침투할 것이 뻔하다. 자극적이고 즉흥적인 문화는 그것이 우리의 마음까지 그렇게 만들어버릴 확률이 높다. 최근 ‘토플러 협회’ 미래 학자들이 예견한 바에 의하면, 인류는 ‘사이버 쓰레기(cyberdust)’ 처리에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디지털에 빠진 사람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아날로그 세대라고 낮잡아 본다. 아날로그 세대가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고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그들은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역할의 중심에 있다. 아날로그 세대는 삶의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삶에 따뜻함에 있고, 내면의 깊이가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스마트 문화의 편리성은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기기로 나누는 삶은 기계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삶에는 향기가 있고,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삶의 가치는 여전히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기술이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관계는 배려와 사랑, 그리고 의리와 존경이 넘쳐나야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인간 문화의 필수 조건인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무턱대고 편리한 기계만 사준다고 신세대의 대열에 밀어 넣는 것은 아니다. 기계에 의존하는 청소년은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을 능수능란하게 만지는 것보다 나이에 맞게 상대방과 만나는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미묘한 인간관계를 인식해 따뜻한 소통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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