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22)

2010.12.07 10:31:00

아이스 케키 !

1968년 7월 어느 날 여름 방학을 일주일가량 남긴 우리 6학년 교실 풍경은 여늬 날과 조금도 다름없습니다.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수업이 오후 4시가 되어서 해가 설풋이 기울었지만, 끝날 줄을 모릅니다. 오늘은 산수시험을 봐서 자기 목표 점수를 넘지 못한 사람은 운동장을 열 바퀴 돌기로 약속을 한 날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쉴 시간이 되어도 한 문제라도 더 풀어 보느라고 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의 6학년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중학교라도 3 : 1이 넘는 경쟁을 해야 하는 중학교 시험을 보아서 입학을 하여야 했기 때문에 요즘의 고3학생들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젊은 선생님의 무서울 만큼 엄한 지도를 받으면서 날마다 교과서를 외우고 문제 지를 몇 장씩 풀어서 그 틀린 문제를 공책에 옮겨 적으면서 다시 외우는 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야 입학시험을 잘 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5월 15일 스승의 날 행사를 치르고 나서 바로 그날 저녁부터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자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정식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8시가 되면 벌써 공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약 40분 정도 쉴 시간을 주고서는 오후 5시가 되도록 잠시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을 제외하면 밖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에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에 오게 하였지만 너무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이 힘이 들어서 얼마 후에는 아주 아침에 도시락을 두 개 싸 가지고 와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때 우리 학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 학교 이어서 각자가 자기 앞에 조그만 호롱불<석유 등>을 놓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밤 11시까지 외우고 또 외우는 공부는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너무 힘들어서 11시가 되면 저절로 떨어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물론 처음 며칠은 잠자라고 하면 킥킥거리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친 아이들이 잠을 안자면 낮에 졸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하여서 밤에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두 달 가까이 교실에서 밤낮 없는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점점 싫증을 느끼고 한 둘이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때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포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날씨는 섭씨 30도를 넘은 기온이 오후가 되어도 좀 채 식을 줄을 모르고 들판을 건너오는 바람도 시원한 기운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날씨가 가물어서 너무 오래 비가오지 않아 달구어진 들판에서는 더운 김만 올라오나 봅니다.

오후 네 시경이면 날씨가 보통 때는 벌써 시원하게 느낄 만한 시간이었지만 이날을 유난히 더워서 열어 놓은 창문으로 더운 김이 확확 끼쳐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길 건너가게집 앞의 도로에서 “아이스 케키 ! 아이스 케키 !”하는 아이스 케키<요즘의 아이스 바처럼 생긴 얼음과자(빙과)>를 파는 아이의 외침이 들려 왔습니다. 이 때는 아이스 케키를 구두닦이 통보다 좀 큰 통에 담아 가지고 매고 다니면서 팔았었습니다.

“선생님, 저기 아이스 케키 장사하는 아이가 박성호 인데요.”
누군가가 이렇게 선생님께 일러 바쳤습니다. 아마도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경재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금방 호랑이 같이 변하셔서
“뭐야 ? 박성호라고 ? 그 녀석 부모님은 어떻게든 가르쳐 보겠다고 공부만 하면 대학까지 라도 보내겠다고 하시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아이스 케키 장사를 시작했단 말이냐?”
“야 ! 경재, 그리고 반장 병규 빨리 가서 잡아 가지고 데려 와 !”
같은 마을에 사는 경재와 반장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벌써 교실 문을 나설 정도로 빨리 달려 나갔습니다.

이 무렵 우리 고장에서는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이 반 이상이었고, 또 중학교에 가려고 하여도 시험에 떨어져서 못 가는 아이도 있어서 전체의 약 1/3 정도만이 중학교에 진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에서 가장 부잣집의 아들인 박성호는 중학교에 갈만한 성적이 안 되어서 부모님들은 늘 걱정을 하시고,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을 한다는 말씀을 드리기까지 하여서 선생님도 늘 관심을 가지고 더 주의를 주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어디 도망쳐 버려서 찾고 야단이 났었는데, 엉뚱하게 아이스 케키 통을 둘러매고 장사를 나선 것입니다.

잠시 후에 경재가 달려 와서는 소리칩니다.
“선생님, 성호가 안 오려고 버티고 뒹굴어서 못 데려 오겠어요.”
이 말을 들으신 선생님은 곧 학급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기운이 센 기영이를 불러서
“야 ! 안기영, 가서 끌고 와.”
하고, 말씀을 하시자 공부하기 싫어서 눈치만 살피고 있던 기영이가 스프링이 튀듯 뛰어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그 보습을 보면서
“기영이가 궁둥이가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고 앉아 있었던 거야. 나가라니까 저렇게 신바람이 나서 번개 같이 뛰어 나가는데.....”
하시면서 웃으십니다. 아이들도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동장에는 경재가 성호의 케키 통을 둘러매고 기영이가 성호를 껴안고 밀면서 교실을 향하여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창 너머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무어라고 떠들면서 소란스러워 졌습니다.



성호는 교실 문 앞에 와서 다시 한 번 기를 쓰고 안 들어오려고 문지방을 붙들고 버티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박성호 ! 이제 이 교실에 안 들어 올 거야? 지금 안 들어오면 아주 이 교실에는 못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 할 거야. 교실에 들어와서 꾸중 듣고, 매를 맞더라도 학교를 다닐 거야. 아주 달아나서 학교를 그만 둘 거야? 기영이 놔 줘. 스스로 결정하게....”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시자 성호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곁눈질을 하면서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빨리 결정 해 ! 너 때문에 지금 한 시간은 손해가 났어. 지금 50명이 한 시간이면 50 시 간이야. 너 혼자는 이틀을 잠을 안자고 보충을 해주어야 해. 알겠어?”

선생님의 호령이 떨어지자, 성호는 슬금슬금 교실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선생님은 성호를 교탁 앞에 세우시면서
“자 ! 오늘은 성호가 여러분의 친구로 여기 온 게 아니라, 아이스 케키 장사로 온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의 불쌍한 친구 성호를 위해서 우리가 아이스 케키를 사 주어야 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다는 듯이 몇 몇 아이들이 힘찬 소리로
“예 !”
하고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은 성호를 교탁이 가리지 않은 쪽으로 세우고,
“자, 여기 친구들이 너의 아이스 케키를 모두 사 주기로 하였으니 고맙지? 그렇지만 너는 아직 친구들에게 아이스 케키를 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아까 저기 길거리를 다니면서 외치듯이 힘차게 아이스 케키를 세 번 외치도록 한다. 어서 !”

선생님의 호령에 성호는 다시 기가 죽어 고개만 숙이고 있고, 같은 반의 친구가 어려운 꼴을 당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여학생 몇 명은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숨어서 킥킥거리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들은 성호가 어떻게 할까 지켜보면서 비웃음을 보냅니다. 다른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중학교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보내주겠다는 데도 공부를 하기 싫어서 중학교를 못 간다는 친구를 보면서 부러움과 미움이 겹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마도 선생님도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성호에게 이렇게 혼을 내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긴 본래 성호의 성격이 활달하지 못해서 앞에 나오면 말을 잘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벌을 받는 일이고, 더구나 아이들 앞에서 아이스 케키를 사라고 외치라니 성호도 힘이 들것입니다. 아마 나라고 하더라도 그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 리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커다란 매를 들면서

“지금까지 팔았으면서 여기서는 왜 못해. 그렇게 말 도 못하고 짊어지고만 다니면 누가 사 주겠어. 큰 소리로 외쳐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때릴 듯이 하시자 성호는 몸을 움츠리면서
“아이스 케키 ”
하고 소리를 내었지만, 앞에 앉은 아이들이 겨우 들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소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누가 사러 오겠어? 더 큰소리로 !”
하시자 성호는 자기를 때리시는 줄 알고 목을 잔뜩 움츠리고 주저앉듯 하였습니다.
“안 때릴게. 넌 이번에 아주 큰 공부를 하는 거야. 남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거든. 더구나 물건을 팔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까 멀리 갈 것 없이 여기서 큰 소리로 외치면 여기 있는 것을 모두 선생님이 사 줄 거니까 어서 해 봐.”
하고 다시 독촉을 하자, 성호는 용기를 내어서 조금 큰 소리로
“아이스 케키 !”
하고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더 큰 소리로 하라고 하셨고
“아이스 케키 !”
이번에는 제법 큰 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간 여자아이들이 못 참겠다는 듯이 킥킥거리자, 다음 번 소리는 다시 적어 졌습니다. 선생님의 호령을 듣고서야 두 번 더 큰 소리로
“아이스 케키 !”
“아이스 케키 !”
를 외치고서야 성호는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스 케키를 모두 하나씩 먹으라고 통을 열었습니다. 우리 반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씩 먹고도 몇 개가 남았습니다. 선생님은 통을 매고 교실을 나서시면서
“나도 아이스 케키 장사를 나가야지. 제자 덕분에 이것도 매어 보겠구나.”
하시면서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우리들은 성호 덕분에 한 시간은 쉬게 되었고, 공부 시간에 아이스 케키까지 먹게 되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익살스런 영래가
“야 ! 박성호 ! 날마다 짊어지고 와. 그럼 우린 날마다 케키 먹을 거 아니냐?”
하자 아이들은
“와아 !”
하고, 합창을 하면서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말썽꾸러기 성호는 공부 시간에 도망을 쳐서 아이스 케키를 파는 짓은 물론 말썽을 부리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좋은 중학교는 아니더라도 면내에 있는 사립 중학교에 합격을 하여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아이스 케키 장사는 아주 잘 한 셈이었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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