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갖기 운동하자!

2010.12.09 14:06:00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김치·불고기’라는 조사가 있었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2009년 주한 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복수 응답을 허용해 실시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김치·불고기(30.4%)에 이어 한복(27.9%), 한글(16.1%), 태권도(8%), 태극기(3.6%) 등을 꼽았다.

2010년 9월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김치와 불고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신문은 김치가 상큼하고 아삭하면서도 매운맛이 있다고 평했다. 김치는 의학적으로도 효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각종 양념과 재료, 발효 방식에 따라 200여종의 다양한 김치가 존재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불고기는 가정마다 비법을 갖고 있는 특별 메뉴라면서, 한국의 요리 문화에는 식도락을 위한 시각적 즐거움과 미각적 기쁨이 공존한다고 표현했다.

흰 쌀밥과 함께 끼니때마다 먹는 김치는 오랜 세월 동안 먹을거리의 기본이 되어왔다. 최근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 김치를 우수한 건강 발효식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불고기는 잔치가 있을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며, 건강식으로도 많이 먹는다. 따라서 김치와 불고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는 사회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이제 국가 간 경쟁력의 원천은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힘에서 점차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힘으로 바뀌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화 경쟁력의 중심에 한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20세기 후반에 압축 성장을 했는데,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학적이고 훌륭한 문자를 바탕으로 한 교육력이 큰 힘이 됐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각 나라가 여러 종류의 글자를 쓰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고유한 말과 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한글은 만든 목적이 뚜렷하고 만든 사람이 분명한 글자다. 한글은 인체의 발음기관과 우주 구성의 3대 요소인 삼재(三才: 하늘, 땅, 사람)를 본떠서 만들어졌다. 상형(象形)을 기본으로 한 한글의 제자(制字) 원리는 현대 언어학 또는 문자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매우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담은 책이 ‘훈민정음’이다. 이 책은 세종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 해설서다.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예의편(例義篇), 해례편, 정인지서문(鄭麟趾序文)의 3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의편은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와 새 글자의 음가(音價) 및 운용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해례편은 새 글자의 제자원리와 그 음가 및 운용법, 문자가 표시하는 음운체계 등에 관한 내용이 있다.

세계에서 한글과 같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 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유일무이한 일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에는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사용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는데, 그 이론의 정연함과 엄정함에 대해서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에서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에 필자는 전 국민이 ‘훈민정음’ 읽기 운동을 하는 것을 제안한다. 집집마다 책꽂이에 ‘훈민정음’을 갖고, 수시로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훈민정음’을 읽는 문화는 우리 국어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조상이 남겨준 문화유산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게 된다.

초등학교에서 상품 및 선물로 국어사전을 주던 때가 있었다. 이처럼 학교에서 ‘훈민정음’을 학생에게 상품으로 주는 운동을 전개하자. 기타 공공기관 등에서 국민을 상대로 상품을 제공할 때 ‘훈민정음’을 주자. 이렇게 되면 집집마다 ‘훈민정음’을 소유하는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

‘훈민정음’ 영역(英譯)본을 발간하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및 세계인에게 배포하는 작업도 전개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면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한글 공정’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훈민정음’ 책자 등의 영역본 보급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류 열풍에도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어도 관심이 많은데, ‘훈민정음’ 보급은 이들에게 좋은 참고서다. G-20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 ‘훈민정음’의 국제적 보급 운동은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현저히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훈민정음’의 보급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인이 함께 공유한다면 문화선진국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고, 나라의 격을 높이는데도 기여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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