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24)

2010.12.24 14:19:00

*** 요즘 같았으면 폭력교사라고 쫓겨날 짓을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잘 못 본 게 죄지!

“장영길 ! 이리 나왔!”
선생님은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면서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영길이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눈이 둥그레 가지고 엉거주춤 일어섭니다.
“빨리 나와 ! 이게 뭐야 ?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거야. 이거 .... 이게 뭐냔 말 야. 이 따위로 하니까 군내 경시 대회에서 75점을 맞아서 우리 학교의 점수를 까먹 더니 다시 본 시험지에서 요 모양이란 말이냐? 딴 사람은 몰라도 넌 이 시험지를 두 번째 본 게 아니냐? 그런데 75점이 뭐냐? 엉 이게 뭐냔 말이야?” 선생님은 붉으락푸르락 하시면서 영길이가 앞으로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미 손에는 넓이가 10cm, 길이가 90cm 쯤이나 되는 무서운 매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무서운 매를 들어서 사정없이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무서운 분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교살에서 잠을 자면서 집에도 못 가는 생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무서운 매를 때리시면 반드시 왜 맞았으며,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를 일러주시기 때문에 매를 맞을 때보다 나중에 꾸중을 들을 때 더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자기 잘 못을 뉘우치는 눈물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도 매를 맞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우리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시고 계시는 분입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잠을 자면서 하루 15시간 이상을 매달려 우리를 가르치시느라고, 코피를 쏟으시면서도 밤을 새워 시험지를 만들어서 우리 공부를 시키십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 매를 맞는 것쯤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우리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 때였으니까요. 만약에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중학교에 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도 없었던 시절에 더구나 시골 면 소재지에서 4km 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50명중 겨우 5,6 명이 중학교에 제대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공민학교라는 중학과정을 가르치는 무허가 학교에 가야 하는 그런 시절이기 때문에 6학년이 되면 요즘 고등학교 3학년과 똑같았습니다.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은 집에서 과외를 받았지만, 우리 같은 농촌 구석에 있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시험지를 몇 장씩 풀면서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응용문제를 풀어서 시험을 대비하는 공부를 해야 하니까, 노는 시간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무렵에 6학년 담임을 하시는 분들은 젊고 튼튼한 사람이 아니면 견딜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 8시간은 보통이고 밤이 되도록 수업을 하는데 중, 고등학교처럼 교대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온 종일 혼자서 연속으로 7, 8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데, 우리 반은 그것도 모자라서 저녁을 먹고 밤 11시까지 교실에서 공부하고 11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깨워서 아침운동은 30분 동안 시킨 다음에 아침 공부를 한 시간 마치고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도시락을 두 개 싸 가지고 학교에 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자는 시간 5시간과 집에 다녀오는 시간 2시간해서 7시간과 잠시잠시 쉬는 시간 한 시간 정도를 뺀 나머지 16시간을 모두 선생님과 함께 교실에서 책과 시름을 하는 공부를 하고, 문제지를 풀고 외우는데 정신을 쏟아야만 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급에서 5,6명은 날마다 보는 시험지의 점수가 평균 95점 이상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 중학교에 갈 아이들도 거의 평균 80점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만약 못 미치면 모자란 점수대로 1점에 한 대씩 매를 맞기로 약속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여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에 군내 경시대회가 열렸습니다. 각 반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 두 명씩을 추천하여 군내 20여개 학교의 대표들이 한 곳에 모여 시험을 봐서 우수 학교를 표창하는 2학기 경시 대회에 우리 반에서는 영길이와 경규가 참가를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가 아주 조금 차이로 2등을 한 것입니다. 한 두 문제만 더 맞혔어도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만 영길이가 수학에서 겨우 75점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90점만 맞았다면 1등을 한 읍내 학교보다 앞설 수 있었는데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2등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수고했다고 격려를 했지만, 영길에게는 매우 꾸지람을 하였습니다.
“뭐야, 이렇게 쉬운 문제<수학에서 처음 5번까지는 가장 쉬운 문제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3문제를 틀렸음>들을 틀렸으니, 이것은 네가 문제를 잘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
하시면서 꾸지람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군에서 본 시험지를 가지고 우리 반 전체 아이들이 시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대표하여 출전을 했던 장영길이가 오늘 시험지에서도 또 75점을 맞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본 순간에
“장영길, 이 녀석이 경시 대회에서 시험을 잘 못 봤다고 꾸중을 했더니 일부러 틀린 거지. 다른 아이들은 이 시험지가 처음이지만 영길이는 벌써 두 번째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하신 선생님은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옴>것을 느낄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장영길이가 앞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 !”
하고 호령을 하시더니, 매를 들어서 영길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셨습니다. 아마도 열 대를 때린 것 같았습니다. 널찍한 매가 엉덩이에 떨어지는 순간 울려 퍼지는 무서운 소리는 교실을 쩌렁쩌렁 울려 우리들은 기가 죽어 고개를 들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매를 맞고 있는 영길이 보다 더 움찔움찔 놀라는 아이들도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일어 서 !”
열대를 때린 선생님은 영길이를 일어 세우시더니,
“이게 뭐냔 말이야. 이게 ? 그래 또 75점을 맞아? 네가 그것 밖에 안 되니?”
선생님은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
영길이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서 있습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너에게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었기에 군 대회에 가서 망치고 와서 또 이런 결과가 나오니까 너무 어이없고 내가 지금까지 잘했던 네가 이렇게 엉터리없는 짓을 하는데 대해 화가 났었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여기 꿇어앉아 있거라. 이 시간 공부가 끝나고 이야기하자.”
하시고서는 영길이를 들여보내고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영길이는 그렇게 맞고 혼이 났는데도, 공부 시간 내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꿋꿋하게 공부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저렇게 맞았는데 아프지도 않나?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이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을 하며 힐끔힐끔 영길이의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엄살을 부리고 엉엉 울거나 지금까지도 훌쩍거리고 있을 것인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영길이를 보면서
‘정말 지독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영길이는 한 시간 반 정도를 그냥 꿇어앉아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공부 시간이 끝나고 화장실에를 다녀오라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이걸 보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저 영길이를 좀 부축해 줘라. 다리에 피가 안 돌아 좀 힘들 거다. 교실만 나가면 괜찮을 것이니 붙잡아 주어라.”
하셨습니다. 앞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영길이를 부축하여 나갔다. 몇 걸음을 걷던 영길이는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혼자 걸었다. 정말 몇 걸음 걷는 사이에 다리가 괜찮아진 것인가 봅니다.
“야 ! 엉덩이 괜찮냐?”
선생님이 안 보이는 다음 교실 복도쯤에 가서 철이가 물었습니다.
“아프긴 해도 괜찮아. 소리만 요란하지 별로야.”
영길이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곧은 자세로 걸어 나갔습니다.
“와 ! 우리 선생님 지독하다. 그걸로 10대를 때리시다니......”
“그 까짓게 별거냐? 지금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우리하고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자면 책을 읽으시더라.”
“뭐 ? 그게 정말이냐? 난 자라는 말만 들으면 그냥 잠이 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 영길이는
“너희들이 자는 지 살피신 다음에 일기를 쓰시고 나서 책을 읽으시다가 주무신단 다. 그러고서도 하루도 우리보다 늦게 일어나신 거 봤니? 그런 분이야.”
지독히 매를 맞은 영길이는 아주 선생님의 자랑을 하려고만 덤볐습니다.
“야 ! 영길이 넌 그렇게 맞고도 선생님 편이니?”
말썽꾸러기 규철이가 비꼬듯 말합니다. 그러자 영길이는
“그래, 난 선생님이 내가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 밉지 않아. 왜 미울 수 있니 ? 나를 잘 되라고 가르치려고 그러시는 것인데 뭘....”
하자, 다른 아이들은 더 이상 무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를 맞은 영길이가 도리어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이 밉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상하다고 말을 하니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바라본 들판은 벌써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은 들판에 보리 이삭이 저렇게 익기도 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자기 시작한지 한 달쯤 되어서 농번기라고 모내기철에 잠시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기간에도 우리는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제 학교 공부를 시작한지 백일하고도 20일이 넘었고, 이제 마지막 한 달쯤이 지나면 중학교 시험을 보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날마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11월이 되니까 날씨가 추워서 교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까운 마을의 아이들 몇 명은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가기로 하고 먼 아이들은 학교 사택에서 방을 빌어 여자들은 작은 방에서 남자들은 선생님과 함께 잡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날마다 보는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가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 버린 것입니다.
잠시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 되는가 싶었는데
“어서 들어와라. 얼른 끝내고 가야지?”
하시는 말씀이 들려 와서 우리들은 바삐 교실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지막 시간은 지금껏 공부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이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 주시면서 그 이유를 일일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고 집에 가야할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 얼른 가서 저녁을 먹고 오너라. 나머지 아이들은 저녁 먹고 저기 숙직실에 주전 자에 물 끓여 놓았으니 먹도록 하고...”
하시고는 무척 피곤해 하시면서 잠시 자리에 앉으시더니
“영길아, 이리로 와.”
하시면서 영길이를 데리고 숙직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영길이가 울고 나올 시간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시험지를 받아든 영길이는 낯빛이 변하였습니다. 자기 시험지를 보니까 자기는 75점이 아니라 95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시험이어서 선생님이 일일이 채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단 저 분단이 바꾸어서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가끔은 내 시험지를 네가 채점하고, 시험지는 내가하는 경우가 생겨서 눈짓을 하여서 서로 적당히 비슷하기만 하면 동그라미를 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이걸 눈치 채신 선생님은 분단끼리 바꾸어서 앞뒤로 한두 번 바꾸게 만들어서 누가 누구 것을 채점하는지 일일이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채점을 잘 못하여서 맞는 것을 틀리게, 또는 틀린 것을 맞다고 하는 경우가 생겨서 채점을 한 사람의 이름을 시험지의 윗칸에 적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길이가 채점을 한 경식이의 시험지가 75점인데 그만 선생님이 이걸 잘 못 보시고 영길이가 75점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영길이는 자기가 75점을 맞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번 실수 때문에 선생님께 매를 맞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 않고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시고서는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매질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영길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였지만, 영길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잘 못해서 2등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자신의 실수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면서
“내가 너무 감정을 앞세워서 잘 못 본 게 죄이구나.”
하셨습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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