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여행 <2>

2011.01.19 11:21:00

약속 시간인 8시보다 호텔 출발이 35분 늦어졌다. 전날 가이드에게 10분 전까지 로비로 내려오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전달과정에 혼선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여행은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늦는 게 무슨 대수냐'는 듯 우리 일행은 싱글벙글 웃으며 북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더라도 자주 보면 식상한다. 페더데일 야생동물원으로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어제 지났던 블루마운틴 고갯길을 오랫동안 달린다. 가이드는 지루함을 달래주려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전날 시드니에 도착하기 바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광을 했던 터라 아침부터 단잠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건국기념일이 영국의 죄수인단이 도착한 날이고, 대부분의 직장이 12월 23일부터 1월 5일까지 휴가에 들어간다. 올림픽 후 영연방 국가대항 경기가 열리기에 람볼링, 크라켓 등 영국에서 시작된 공으로 하는 경기를 즐긴다. 전철, 버스비 등 기본 물가가 무척 비싸고 모든 농산물을 자급자족한다. 기름 값이 조금 저렴하지만 동에서 서쪽 끝까지 비행기로 5시간 걸릴 만큼 땅이 커 실질적으로는 연료비가 많이 든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남섬이 비행기로 3시간 거리지만 최소 2주 이상의 여행경비 때문에 우리나라 교민 중 이웃나라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교민들이 시드니에 7만여 명, 호주 전역에 12만여 명 살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특히 부족한 직업군(헤어디자이너, 제빵사) 이민 허용 불발로 많은 돈 투자하며 열심히 공부한 몇 만 명의 사람들이 허탈해하나 일본 등과 대조적으로 한국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서운해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오가는 차안에서 듣고,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다. 가이드의 얘기에 귀기울이다보니 동물원에 도착했다.


페더데일 야생동물원은 날지 못하는 새 에뮤, 식물을 통해 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이름이 물이 없다는 뜻인 코알라, 육아낭에서 새끼를 기르고 두 발로 깡충깡충 뛰는 캥거루 등 호주의 희귀동물을 관람하는 곳이다. 야생동물의 생활과 함께 관목림과 나무그늘이 만든 자연 생태계의 모습도 볼만하다.

입구의 풍경이 동물원임을 알린다. 이곳에도 오리너구리가 있는데 나무 뒤에 숨어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잠든 코알라는 기념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만지고 떠들어도 반응이 없다. 코알라는 등을 만져야 하는데 먹이를 제공하는 유칼립투스 나무에 1마리씩만 올라가 생활한다. 잔뜩 겁먹은 표정의 캥거루가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닌다. 늙은 거북이가 있는 파충류관과 옆에서 느리게 걸어 다니는 에뮤도 구경한다. 한국은 영하 13도라는데 이곳은 영상 30도를 오르내려 동물원을 돌아보는 동안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동물원을 나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북부 휴양지 포트스테판으로 이동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포트스테판지역의 아나베이에 위치한 스톡턴비치는 바다와 해변, 모래사막이 만든 풍경이 이국적이다. 거대한 양떼처럼 남태평양이 만들어내는 파도와 포말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끝의 고운 모래 해변이 웅장한 사막으로 이어진다.


스톡턴비치는 바다와 사막과 산이 공존하는 진행형 모래사막이다. 입장료를 내면 자기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지만 관광객들은 전용차량인 지프를 타고 사막을 실감하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해풍에 따라 수시로 옮겨 다니는 모래언덕을 찾아간다. 뜨거운 태양에 데워진 모래 때문에 맨발이 고통스럽지만 30여m 높이의 모래언덕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고, 모래에서 타는 썰매타기가 이색적인 경험이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모래썰매를 타고난 후 바닷가로 내려가면 해수욕을 즐기거나 햇볕에 몸을 태우는 사람들이 많다. 눈길이 쏠리는 이방인이지만 비키니 차림이 아니면 어떤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닷물에 발목만 담가도 더위가 싹 달아난다. 남태평양이 만든 수평선을 바라보며 해변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앞에 꽤 규모가 큰 람볼링장이 있다. 람볼링을 즐기는 노인들의 인상이 모두 인자하고 여유롭다. 여유로움이 하도 부러워 여행지에서 불현듯 앞에 닥칠 노후를 생각해봤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살이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갈고 닦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포트스테판의 넬슨베이는 돌고래와 펠리컨 서식지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남태평양의 야생 돌고래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타고 있는 배 주위를 맴돌다가 물 위로 뛰어오르고, 가까이까지 배를 따라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날씨가 좋은데 고래가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단다. 그래서 넬슨베이에서 고래 구경하는 것은 고래마음이라는 말이 생겨났나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딜 가나 깨끗한 하늘, 깨끗한 공기, 깨끗한 바다를 만난다. 배위에서 바라보면 넓은 바다와 접하고 있는 주변 마을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휴가와 주말을 맞은 도시인들이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오는 이유를 알게 한다.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대형 독수리만한 펠리컨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모래사막과 돌고래 관광 등의 사업권을 주며 지역민들을 우대한다. 암까지 무료로 치료해 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복지정책이 자식에게 유산을 상속하지 않고 기부를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직업선택은 일찍 고등학교에서 결정하고 타일, 목수, 용접 등 한국인이 손재주를 발휘할 수 있는 힘든 일에 보상이 크다.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유명대학이 5곳이나 되고 졸업정원제라 수료자가 많다. 학자금 대여제도가 잘 되어있고 취업 시 전공을 살린 졸업자만 인정한다. 교민들은 혈연과 지연이 작용하는 서류전형이라 취업에 어려움이 많고 의사, 변호사 등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져도 손님이 없다.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언어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지는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많다. 출산율이 낮아 아기가 태어나면 1만 불씩 지원하고, 상점들이 5시면 문을 닫아 생활이 불편하다. 서서 먹는 문화라 안주를 필요로 하지 않고, 술 취한 사람에게 술을 팔 수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달리는 차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가 많이 이해되었다.


입구에 청포도가 달려있는 포도밭이 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나무들이 탐나는 와인농장을 방문하여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저녁은 호텔근처의 수모(SUMO)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교민이 운영하는 한식과 스시 전문식당으로 돼지불고기와 된장국이 맛있다. 상추와 쌈장을 여러 번 추가 주문해도 웃으며 갖다 주는 친절서비스가 돋보였다. 여행사에서 추진하는 해외여행은 관광객이 식당과 음식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더라도 이렇게 서비스가 좋은 식당을 추천하는 가이드가 신망 받는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나니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냇가 양옆의 잔디밭은 2010년 마지막 밤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리를 건너 부모님과 함께 나온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족부터 생각하는 게 나이 먹는 증거이고 성인이 된 자식 잘못될까 늘 조바심하는 게 부모마음이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났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내의 밤거리를 돌아본 후 맥주와 콜라를 사가지고 호텔로 들어왔다. 소인수인 동행자 19명의 주거지가 전주, 용인, 부산, 수원, 청주로 전국구였다. 이번 여행에 7명이나 동참하신 전주 분들이 초대를 했다. 와인과 소주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니 더 다정해진다. 때로는 이렇게 맺은 인간관계가 활력소가 된다.


방으로 돌아와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시드니 중심가에서 열리고 있는 새해맞이 행사가 TV에 나왔다. 이곳은 새로운 2011년을 맞이했다고 길거리에서 폭죽을 쏘며 축하하는 시간이지만 한국의 새해맞이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피곤에 지친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혼자 여행내용을 정리하며 새해를 열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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