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은 이상한 표현

2011.01.25 08:12:00

2010년 뉴스의 중심에는 애플의 스티브 폴 잡스(Steven Paul Jobs)가 있었다. 그는 1955년생 동갑이며 오랜 경쟁자였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회장이 이끌었던 MS를 올해 완전히 따돌렸다. 지난 5월 시가총액에서 앞선 뒤 3분기 매출에선 무려 40억 달러나 앞지르며 세계 IT업계의 황제가 됐다.

애플은 비단 IT기업뿐 아니라 세계적 전자회사, 휴대폰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 올해는 아이폰 성공에 이어 태블릿PC를 선보이며 스마트 혁명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IT업체들은 애플을 뒤쫓아 가기에 바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잡스를 선정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그를 ‘아메리칸 드림(미국인의 꿈)’의 전형으로 꼽았다.

잡스는 2010년에 이어 2011년 벽두에도 여전히 언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갑자기 병가를 냈다는 소식이다. 이로 인해 미국 IT업계와 주식시장이 요동을 쳤다는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의 병가 소식과 함께 애플의 미래까지 전망하는 기사가 실리고 있다. 그런데 그의 병을 두고 ‘희귀병’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잡스, 희귀병”, 의사들은 잡스의 질환이 매우 희귀한 형태인 신경내분비계 암으로서 발전 속도가 느리고 치료가 가능한 것이며, 간 이식에 따른 부작용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조선일보, 2011년 1월 20일).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잡스는 2004년 미국에서 연간 3000명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 희귀병인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도 크게 고통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아시아투데이, 2011년 1월 19일).
○ 췌장암 재발·간이식 부작용 추측, 美 포천지 “희귀병 가능성 높다”-스티브 잡스는 17일(현지시간) 병가를 냈다. 하지만 그 이유와 기간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동아일보, 2011년 1월 21일).

언론 매체는 모두 ‘희귀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용어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희귀(稀貴)’는 ‘드물 희(稀)’와 ‘귀할 귀(貴)’로 구성된 한자어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것’을 뜻한다. ‘희귀 금속/희귀 동물/희귀 자료’ 등을 생각하면 ‘희귀’는 자구의 의미대로 드물어서 귀한 것이다.



‘희귀병’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는 데는 사전이 한몫을 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희귀한 병’이라는 예문을 두고 있다. 이는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희귀병’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이 ‘희소병’이 있다. ‘희소(稀少)’는 매우 드물고 적음을 뜻한다. ‘인구 희소 지역’, ‘희소 상품’ 등처럼 쓰인다. 따라서 드물게 발견되는 병이라면 ‘희소병’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단어 역시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합의되지 않은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와 관련된 용어는 ‘난치병’과 ‘불치병’이 사전에 있다.

‘난치병(難治病)’
고치기 어려운 병. ≒난병03().
- 난치병을 앓다.
- 그는 난치병에 걸렸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불치병(不治病)’
고치지 못하는 병.
- 불치병으로 죽은 아내
- 불치병을 치료하다.
- 불치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남편은 자포자기 하였다.

‘난치병’과 ‘불치병’은 단어의 의미가 너무 잔인하다. 환자에게 희망을 자르는 사형 선고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단어는 ‘희소병’이다. 이 단어는 어떤 현상의 많고 적음만을 나타낸다. 병의 성격을 적절하게 표현하면서, 가치중립적이라는 데서 매력이 있는 단어다.

잡스는 애플의 CEO로, 현재 컴퓨터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입양, 가난, 암 수술 등 인생사에서 험난한 고개를 넘어왔다.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경영 분쟁으로 퇴출당하고, 다시 애플에 돌아가 기업 혁신과 시장에서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동갑내기 경쟁자인 빌 게이츠는 은퇴를 해 사회복지사업을 하며 안락한 생활을 할 때도 그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제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특히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바짝 마른 몸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는 이미 내년 상반기에는 화상전화, 신형 카메라가 장착된 아이패드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나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I want to put a ding in the universe).”는 말을 했던 것처럼 또 다시 일어나 흔적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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