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회상하는 50년 교단일기(29)

2011.02.08 10:22:00

염소 장학금

“아빠 ! 얼른 좀 와 봐요. 우리 염소가 죽었어요.”

나미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울먹이면서 말을 합니다. 나미 아빠는 이 말에 마치 스프링이 튕겨지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미의 손을 잡고 뛰어 나갑니다. 집까지 불과 300여m 아빠는 나미를 끌다시피 하면서 집으로 달려 들어갑니다.

“여보, 이거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저 건너 산에다 매어 놓은 것을 동네에서 커다란 새퍼트가 물어 죽였다는데, 개 주인도 알 수 없고 언제 그랬는지 이미 다 죽어 가는 것을 끌고 왔지만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엄마의 얘기를 듣는 동안에 염소는 마지막 숨을 거두어 가고 있었습니다. 목 부분에서 흘러 나오는 피는 마당을 적시고 흘러내리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가냘픈 비명을 지르지만 이미 그 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게에에, 게에에에에” 목구멍에서 사라질 듯 사라질 듯 가냘픈 소리를 냅니다. 우는 소리인지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나오는 소린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리다가 점점 그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우선 달려가서 그곳을 좀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집을 나와서 오늘 아침에 염소를 가져다 매어 두었던 곳으로 가봅니다. 어제 내린 비로 길은 약간 미끄럽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미끄러지기도 하였지만,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그런 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어오르듯 언덕배기를 오르자 풀들이 누워있고 많은 발자국이 젖은 땅을 짓이겨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염소를 매어 두었던 자리는 개와 염소가 엉켰던 자리가 피가 흘러 있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데, 개의 발자국이 큼직한 것이 아마도 상당히 큰 개인 듯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어디서 무슨 흔적을 찾는다든지 단서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새 뒤따라온 나미는 눈물이 흘러 얼굴은 온통 얼룩이 져있고, 흘러내린 머릿카락이 엉긴 채 엉망인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어느 집 개인지 알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집 개인지 알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어린 딸에게 무슨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글쎄, 아무래도 여기서는 무슨 흔적을 찾을 수가 없구나. 만약에 누구 개인지 안다고 하더라도 염소 값을 물릴 수는 없을 거다.”




“오늘은 이번 달 월말고사에서 1등을 한 어린이들에게 조 선생님께서 장학금을 전달하겠습니다. 이 장학금은 선생님이 너무 열심히 하셨다고 대통령으로부터 상금을 받았는데, 그 상금을 가지고 염소를 사 가지고, 1·2학년, 3·4학년, 5·6학년에서 각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어린이에게 상으로 염소를 한 마리씩 상으로 주기로 합니다. 이 상을 받은 어린이는 이 염소를 잘 길러서 새끼 한 마리를 다시 학교에 가져오면, 다음부터는 그 새끼를 상으로 주게 될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교무주임이신 조 선생님이 장학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얼마 동안이 계속 될는지는 몰라도 이 돈이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장학금을 줄 것이며, 장학금을 받은 어린이들이 염소를 잘 길러서 새끼를 낳아 잘 되돌려 준다며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서 어린이들은 이제 모두 열심히 공부를 하여 염소 장학금을 타 보아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특히 공부를 조금 잘하는 어린이들은 더욱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다. 이번 달에는 그것은 내 차지다. 두고 봐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모두들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전교생이 일제 고사를 보는 날을 모두들 기다릴 만큼 염소장학금은 학교에서 큰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향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나 봅니다. 아이들은 모두 염소장학금을 누가 타게 될까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노려보지만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적어도 학급에서 1,2등을 하는 어린이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경쟁을 하였습니다.

이런 아이들 중에 나미는 이제 1학년인데도 욕심이 많아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염소를 타 보겠다고 자신이 덤볐습니다. 아빠와 엄마도 이런 나미를 위해 부지런히 가르쳐 주고 열심히 공부를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두 주일 동안을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였는지 나미는 그냥 모든 문제를 줄줄 외우고 말았습니다.

벌 써 한 달 전의 일입니다. 나미는 일제고사에서 1학년 전체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학년 언니와 같은 점수가 되어서 누가 염소를 타게 될는지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두 개 학년의 최고 점수가 동점이 되었을 때에는 아래 학년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정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미는 지난 6월 말일에 전교생 중에서 세 사람이 타는 염소 장학금을 탔습니다.

아주 귀엽게 생긴 새까만 염소를 타고 아빠, 엄마와 함께 장학금을 주시는 선생님과 사진도 찍고, 가족끼리 축하 파티도 하였습니다. 아빠가 아침마다 귀여운 염소를 끌고 나가서 풀이 많은 곳에 매어 놓으면 나미도 따라 가서 풀을 뜯어다 먹여 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오후에는 염소를 끌고 오는 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졸라서 고삐를 맡겼더니 어찌나 내달리는지 넘어져서 무릎을 깨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염소가 귀엽고 자기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도 밉지 않았습니다. 과일을 먹으면 껍질을 염소에게 먹으라고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디서 크게 자란 풀이 있으면 뽑아다가 염소에게 주기도 하였습니다.

깜순이 염소가 우리 집에 온지 벌써 석 주가 지났습니다. 이제는 끌고 나가려고 고삐를 풀기만 하여도 앞장을 서서 달려나갈 만큼 익숙해지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나미네 식구들은 이 염소를 잘 길러서 새끼를 낳으면 꼭 한 마리 돌려 드리기로 약속을 하였고, 그래서 더 정성을 들여서 길렀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큰 아이인 나미가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탄 상이고, 더구나 장학금이라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자랑스런 염소가 이렇게 남의 집 개에게 물려 죽어버린 것입니다. 죽은 깜순이 염소가 너무 불쌍해서 저녁 내내 식구들이 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죽은 염소를 가져다가 깨끗이 잡아 고기로 만들어서 나미네 집에 가져 왔지만, 도저히 그 고길 먹을 수가 없어서 그냥 아저씨나 가져다 잡수시라고 드리고 말았습니다. 나미는 자기가 탄 장학금이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늘 아쉽고 섭섭합니다.

나미는 한 동안 염소만 보면 자기 염소 생각이 나는지 “우리 깜순이도 저만큼 자랐을 건데”하고 섭섭해 합니다.

벌써 깜순이가 죽은 지 석 달이 지나 가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미에게는 깜순이가 개에게 물려 죽어가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가 봅니다. 가끔 그날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깜순이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이 그렁거립니다. 피를 흘리면서 애처로운 소리를 내던 새끼염소 깜순이가 너무너무 불쌍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탄 장학금이었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늘 깜순이를 생각하게 하는 가 봅니다.
김선태 한국아동문학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노년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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