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만난 봄기운

2011.02.28 09:36:00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가수 송창식의 노래로 대중에게 더욱 알려진 선운사. 그러나 나는 이번 아내와의 방문(2.25~26)이 처음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교직생활에 바쁘다보니 이제서야 찾았다. 선운사의 동백꽃이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한 번 보고 싶은 것이다.

여행 분위기를 만끽하고자 수원에서 정읍까지는 철도로, 정읍에서 고창, 고창에서 선운사까지 버스를 이용하였다. 자가용보다는 자유로운 여행 스케줄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주(1915~2000) 시비가 눈에 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선운사 동주'라는 시다. 그는 현대인들이 난해하여 접근하기 어렵다는 시를 쉽게도 쓴다. 아니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쓰고 있다. 시를 우리의 생활에 가까이 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이 정도의 시라면 몇 번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외울 수도 있겠다.

동백꽃을 먼저 보려는 욕심에 절 구경은 하는 둥 마는 둥, 절 뒤 동백꽃숲을 보았다. 너무 일찍 찾은 것일까? 꽃의 붉은 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붉은꽃 위에 잔설까지 기대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2000여 그루의 동백숲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울창하다. 바닥에는 작년 것으로 보이는 동백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고 아직도 나무에 작년 열매가 매달려 있다. 가지치기로 떨어진 썩은 나무에는 이름 모를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국립산림연구원에서 수목생태 연구차 번호를 메긴 683번 나무는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 밑동이 굵다. 몇 나무에는 담쟁이 덩굴이 기어 오르고 있다. 그들을 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가 말한다. "여보, 서정주가 선운사를 찾은 시기가 지금 쯤인 것 같네" 맞다. 동백꽃을 보러 왔는데 시기가 일러 꽃을 볼 수 없다. 아마도 흐드러진 꽃을 보려면 3월 하순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운사는 '동백'이 아니라 '춘백'이 맞는 말일 것 같다.

동백숲을 벗어나 옆 숲길로 접어들었다. 동백꽃을 못 본 아쉬움이 너무 컷던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이 보인다. 필자는 작년 낙회된 것이 수분만 증발되고 꽃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된 것처럼 착각하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그대로 으스러진다. 동백꽃이  아니라 잣나무 열매의 일종이다.

꽃은 못 보고 등산으로 대신 한다. 능선을 따라 가니 도솔산 수리봉, 포갠 바위, 참당암, 소리재, 낙조대, 용문굴, 천마봉, 도솔암으로 이어진다. 다시 선운사에 도착하니 어두컴컴하다. 무려 5시간의 긴 등반이다.

남도지방에 이런 절벽과 기암괴석의 장관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처음이라 그런지 등산 코스도 신선하고 마치 설악산의 어느 계곡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창 시내를 나와 풍천장어로 저녁을 먹었다. 고창하면 음식으로 복분자술, 수박, 장어구이의 3가지가 유명하다는데 본고장에서의 맛을 보는 것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였다. 이튿날에는 고창읍성을 답사하고 내소사와 채석강을 방문한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비록 못 보았지만 천연기념물 송악, 서정주 시와의 만남, 동백 열매와 잣 열매, 낙조대의 바위, 천마봉의 절벽, 도솔암의 마애불 등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뜻 깊은 1박 2일 여행이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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