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영원한 스승!

2011.04.25 09:04:00

얼마 전 EBS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일요일 12:30~13:00) 다큐멘터리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승의 날 프로그램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 준다. 주인공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는데 필자가 작년에 한국교육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어 그 후보의 하나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인터뷰 대상은 스승이 아니라 제자라며 제자들 연락처를 알려달란다. 34년 전 초임지 제자 4명을 소개하였다.

전화를 받고 보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만약에 방송이 된다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스승이라 불리기가 참으로 멋쩍다. 필자 스스로 그냥 학생을 가르치는 평범한 선생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득 머릿속 필름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학군단 짧은 머리의 햇병아리 교사의 언행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어린이, 학교, 교직, 학부모, 교직선배, 지역사회의 실정이 어떠한지 모른 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철부지 선머슴아였던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초임지에서의 어린이, 학부모, 선배 선생님, 지역사회가 나를 가르치며 성장시켰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은 44살로 학부모가 된 그들.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귀공자 타입으로 공부도 잘하고 늘 반장을 맡았던 김○○. 조부모님의 번듯한 가정교육 덕분으로 그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찐고구마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연시간 시냇물에서 개인행동 때문에 내게 뺨을 맞았던 최○○. 그 다음날 등교했을 때 퍼렇게 멍든 얼굴을 보니 자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전화 항의 한 말씀 없으신 그 부모님은 필자의 교직생활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었다. 구멍가게를 하는 부모님의 경제관념이 그대로 나타난 빡빡머리의 이○○. 그는 소풍 후 귀가 때면 배낭에 빈 음료수병을 가득 채워 부모님께 갖다드렸다. 빈 병이 돈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그였다. 부모님이 젖소목장을 하던 얌전한 어린이 김○○은 2008년 신부가 되었다. 그 부모님은 학년 초 주전자, 컵 등 학급비품을 채워주셨다. 학교가 어려울 때 늘 힘이 되어 주신 분이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담임하면서 30여명과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여름철 토요일 오후 개울에서 천렵국 끓여먹은 일, 공부시간에 산불을 발견하고 공비 토벌하듯 달려가 진화 작업한 일, 장의(葬儀)차 타고 군(郡) 체육대회 입장식에 참가하여 1등 수상한 일, 여자배구 창단하여 맹훈련한 일, 싸리비 재료인 싸리나무 베어온 일, 난로 불쏘시개로 솔방울 모은 일, 방학 때 동네 방문하여 영사기로 영화 상영한 일 등.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30여년 전 어린이, 학부모, 지역사회가 학교와 교사, 교육에 보내는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한국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확신한다. 교육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불신할 때 교육의 설 자리는 없다. 교육청 등 교육행정 기관이 학교와 교장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담임교사 시절, 집에서 싸 온 점심 도시락을 교실 책상위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먹으며 반찬도 나누어 먹고 담소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거기에는 제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 선생님에 대한 순수한 존경이 남아 있었다.

지금의 학교 현장, 막나가는 학생들을 교사들이 지도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들에게 얻어맞는 경우도 생긴다. 교육을 앞세워 체벌을 하다간 교사 신분이 위태로워진다. 세상이 너무도 변했다. 이렇게 나가다간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올바른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힘을 합쳐 교육입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교육이 실종되다시피 하였다. 교사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교육은 정치판화 되어가고 있다.

초임지 젊은 교사의 설익은 교육열정을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주고 교직에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 주위 여러 사람들이 고맙기만 하다. 지금 생각하니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교단 30년을 축하해주고 부부동반으로 시상식에 달려와 준 그들. 제자가 스승이다. 제자들이 세상살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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