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이 틀린 시를 읽으며

2011.05.03 09:03:00

며칠 전 문학 신문을 읽었다. 문단의 소소한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자주 만나지 못하던 문인의 작품도 읽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시 한편에 맞춤법이 틀린 것이 두 개나 보인다. 하나는 부제로 ‘4.19 51주년에 붙혀’가 보이고, 그리고 어미로 ‘-읍니다’이다.

여기서 ‘붙히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어떤 행사나 특별한 날에 즈음하여 어떤 의견을 나타내거나, 주로 글의 제목이나 부제(副題)에 쓰는 말’은 ‘붙이다’를 써야 한다.

참고로 한글 맞춤법 제22항에 보면, 용언의 어간에 ‘-기-, -리-, -이-, -히-, -구-, -우-, -추-, -으키-, -이키-, -이키-, -애-’가 붙어 이루어진 단어는 원칙적으로 구별하여 적는다는 규정이 있다. 그 예가 ‘맡기다/뚫리다/낚이다/굳히다/돋구다/돋우다/갖추다/일으키다/돌이키다/없애다’이다. 이는 어간에 피동화 접미사나 사동화 접미사가 붙어서 피동사와 사동사로 파생된 단어다. 이때 피동화, 사동화 접미사는 어간의 뜻과 분명히 구분된다. 즉, 어간은 실질 형태소로서 어휘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피동, 사동 접미사는 형식 형태소로서 문법적인 뜻을 나타낸다. 그리고 어간과 접미사의 경계도 대체로 분명하게 구분되므로 어간과 접사의 꼴을 구분하여 어간과 접사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

다만, 원래의 뜻에서 멀어진 사동사와 피동사를 적을 때는 소리대로 적는다. ‘들다[入], 곧다[直], 받다[受], 걷다[撤], 밀다[推], 일다[起]’ 등에 접사가 붙어서 ‘드리다[獻], 고치다[改], 바치다[納], 거두다[收], 미루다[轉], 이루다[成]’가 된 것이다. 이들은 각각 접미사가 붙어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원래의 어근이 가졌던 뜻과 접미사가 붙어서 된 새 말의 뜻과 거리가 멀다.

‘부치다’와 ‘붙이다’는 음운은 다르지만, 어원은 ‘붙다’로 같다. 따라서 이 규정에 따라 ‘붙다’의 의미가 살아 있으면 ‘붙이다’로 적고, 그렇지 않으면 ‘부치다’로 적는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다./담뱃불을 붙이다./계약에 조건을 붙이다./땅에 뿌리를 붙이다./본문에 주석을 붙이다./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웠다.’ 등은 모두 ‘붙다’의 의미가 살아 있다. 그러나 ‘편지를 부치다./안건을 표결에 부치다./회의 내용을 극비에 부치다./밥은 주인집에다 부쳐 먹기로 했다./한글날에 부쳐’는 ‘붙다’의 의미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소리대로 표기한 것이다.



‘-습니다’의 자리에 아직도 ‘-읍니다’라고 쓰는 경우가 있다. 이는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다. 당시 ‘-읍니다/-습니다’로 쓰던 종결 어미를 ‘-습니다’로 통일했다. 이 변화에 대해 ‘-읍니다’보다 ‘-습니다’ 쪽이 더 깍듯한 표현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 사이는 그러한 의미 차이가 확연하지 않고 일반 구어 상황에서 ‘-습니다’가 훨씬 널리 쓰인다고 판단하여 이를 쓰기로 한 것이다.

이런 잘못을 지적해주면 가끔 ‘한글맞춤법이 자주 바꿔서 혼란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우리나라 어문규정이 제정된 것은 1933년도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처음이다. 그리고 1988년에 개정되었으니, 20년이 지난 일이다. 그렇다면 자주 바뀐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다.

시인은 문법을 파괴하는 권한이 있기도 하다. 이를 시적허용이라고 한다. 시인은 시를 쓸 때 특별한 표현을 위해 정상적인 어순을 이탈하거나 신조어, 또는 고어체 단어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시의 운율을 살리기 위해서 단어를 늘여서, 혹은 줄여서 쓰기도 하는데 이도 시적허용 혹은 시적자유라고 한다. 신석정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ㄹ’ 불규칙 동사다. 따라서 ‘아십니까’가 바른 표현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이렇게 한 것은 언어의 음악성이나 어감의 차이에 의해 섬세한 정서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앞의 시에 ‘4.19 51주년에 붙혀’ 어미 ‘-읍니다’는 시적허용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노(老) 시인의 오류로 보인다. 연로하신 분들이 맞춤법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일반이이 어려움을 보이는 것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다. 자신이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맞춤법을 해결해야 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