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 만나는 보길도 산행

2011.05.06 22:36:00

지난 4월 24일,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보길도를 다녀왔다. 출발시간이 새벽 1시라 처음이 아닌데도 뜬눈으로 밤을 보내다 몽벨 서청주산악회원들을 만났다. 차가 청주를 출발한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둠을 헤치고 먼 거리를 달려온 차가 땅 끝에 도착했다. 땅 끝에 솟은 사자봉 정상의 전망대를 바라보며 차안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갈두마을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돌아보는데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물위로 고개를 내민다. 뒤늦게 맴섬으로 가 두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6시 40분경 장보고호가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된 노화도를 향해 땅끝선착장을 출항했다.


노화도의 산양선착장까지는 배로 30여분 거리다. 차가 노화도의 소재지 이목리를 지나고 보길대교를 건넜다. 보길도에 들어선 후 서쪽해안도로를 달려 선창리와 망끝전망대를 지나자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어 뾰족산과 뾰쪽산으로도 불리는 보죽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에서 내려 배낭을 정리하고 준비운동을 하며 산행준비를 마친 후 길게 늘어서 보죽산 산행을 시작했다. 낮은 산이지만 가파른 동백나무 숲이 한참 이어져 힘이 들었다. 숲을 빠져나가니 전망이 좋은 암벽이 등반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30여분 오르면 나무들이 조망을 가린 정상이다. 정상에서 조금만가면 여러 명이 쉬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끄트머리에 조그마한 돌탑 3기가 세워져 있는 너럭바위 반석지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보옥리 마을과 좌우의 해변 풍경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보이고, 망월봉 봉우리와 격자봉(적자봉)의 산줄기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보죽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보길도 최고의 전망이다.

산에서 내려와 보옥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공룡알 해변으로 갔다. 이곳은 해변가득 널려있는 크고 둥글둥글한 청명석 갯돌 때문에 공룡알 해변으로 불린다. 바로 옆에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 숲이 있어 여름철 쉼터로도 좋다. 일행들과 바닷바람을 쐬며 음식을 나눠먹었다.


보길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숨은 진주이고, 붉은색과 보라색 등 찬란한 노을빛을 볼 수 있는 격자봉(해발435m)은 보길도의 주봉이다. 이번 산행은 여러 기점 중 남서쪽 보옥리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을 지나며 만나는 보옥교에서 뽀래기재 1.6㎞, 뽀래기재에서 격자봉 1.5㎞, 격자봉에서 수리봉 0.9㎞, 수리봉에서 큰길재 0.9㎞, 큰길재에서 예송리 1㎞가 우리의 산행코스였다.

숲이 울창한 오솔길로 접어들며 산행이 시작되었다. 섬 산은 해발에 비해 산행이 어려운데 격자봉은 등산로나 능선이 완만하고 밋밋해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초입부터 다리에 쥐가 난 회원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정상적인 산행을 하도록 신광복 등반대장은 슬기롭게 진행했다. 뽀래기재와 격자봉 사이에 전망이 좋은 누룩바위가 있다. 누룩바위는 높이 10여m의 커다란 바위로 암반 위에 큰 바위들이 포개진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보옥리 마을과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격자봉 정상은 표지석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나무들이 조망을 가린다. 이곳에서 짐을 풀었다. 땀 흘린 후 먹는 점심이 맛있다. 입담 좋은 일행이 여흥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식후에는 웃음이 소화제다.




큰길재에서 내려서면 암반위에 쌓은 돌탑을 만난다. 이곳에서 보면 예작도, 당사도, 갈마섬, 기도(사자바위) 등 예송리 앞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냥 편히 앉아 쉬면 산행의 피로가 다 풀릴 만큼 풍경이 아름답다. 낮은 돌담과 보리밭 등 예송리 마을의 풍경을 둘러보고 해수욕장으로 갔다.

활처럼 휘어진 해변에 검은 조약돌이 깔려 있는 흑자갈해수욕장이다. 낮에 달구어진 조약돌 때문에 초저녁까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뒤편은 후박나무, 소나무 등 상록수 방풍림(천연기념물 40호)이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다. 예송리에서 서쪽의 보옥리까지 조성중인 보길도 올레에서 헤매는 바람에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에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세연정으로 갔다.


보길도를 대표하는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든 별서정원이다.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며 기분이 상쾌해 지는 정자 세연정은 윤선도가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던 장소라 아름답다.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 자연에 있던 것을 그냥 사용한 연못안의 바위 등 현재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 당시의 풍경과 사람들이 연상된다. 세연정의 동대와 서대, 회수담, 비홍교, 사투암, 흑약암을 둘러본 후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 노화도의 산양선착장으로 갔다. 


배가 땅끝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 30여분 갑판위에서 바닷바람을 쐬었다. 일행들과 들린 땅끝마을 횟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살이를 얘기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같이 떠났던 즐거운 여행길이라 회도 더 맛있다. 올 때와 달리 차안에서 단잠을 자며 청주로 향했다. 몽벨산악회원들과 헤어져 집에 도착하니 시계가 자정을 가리킨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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