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되지 말자
“야 ! 원석이 ,또 장난이야.”
“선생님, 원석이가 여자아이들을 괴롭혀요.”
“왜 또 어떻게 귀찮게 한 거야 ?”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뒤에서 슬며시 엿듣다가 우리를 밀어버려요.”
“전원석!”
“예”
"너 왜 그리 짓궂게 노는 거야. 남자답지 못하게 여자들 궁둥이만 따라 다닐거야? 이리 나와 약속대로 군밤 세 알!"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자, 원석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앞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조금치도 두렵다거나 속이 상하는 기색도 없이 그냥 싱글벙글하면서 그래도 미안한 생각은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옵니다. 그때 약삭빠른 종현이가 걸어가는 원석이의 발을 슬쩍 걸어 버렸습니다. 원석이는 거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몹시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일어섰습니다.
“발건건 누구야, 왜들 이리 장난이 심해!”
꾸지람을 하자 원석이는 뒤를 돌아보며, 종현이를 향해 빨리 나오라고 검지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합니다.꾸러기 원석이가 또 한 사람을 더불어 나오려고 합니다. 언제나 한 시간에 두세 번씩 주의 받지 않고 지나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단골손님인 원석이의 모습에 아이들은 그만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래도 원석이는 아이들을 향하여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 보이며 혼내주겠다는 표시를 합니다.
“자, 이번엔 세 알이지?”
선생님이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불쑥 내밀자, 원석이가 스스로 그 주먹에다가 박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 둘, 셋.”
학급의 아이들도 신이 나서 숫자를 헤아립니다. 원석이는 이마를 감싸 쥐고서 몹시 아픈 척을 하지만 입으로는 혀를 날름거리며 생글생글 웃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원석이를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이들에게 “앞으로 원석이는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하여 어디에서나 미움을 사지 않고 잘 지낼 것이다. 오히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성질이 까다로워서 직장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여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하고, 원석이의 그런 점을 칭찬을 해주십니다. 다른 선생님 같으면 건방지게 선생님을 놀리려고 한다고 혼줄이 났을텐데,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면서, 원석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원석이는 그런 좋은 점이 있는데 자꾸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아이들이 싫어하는 무섭거나, 더러운 이야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는 일을 스스로 만드는 짓만 하지 않으면 잘 어울려 사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이에요.”
슬쩍 칭찬과 함께 고칠 점을 얘기 해주자 원석이는 뒤돌아 서서 들어오면서 두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서 흔들며 들어갔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주 큰 학교여서 각 학년이 13에서 15반까지 있는 전교가 80학급도 넘는 학교입니다. 그 중에서 5학년 4반, 우리 반은 한때 유행했던 청개구리 반은 아니지만 좀 별난데가 있는 학급입니다. 선생님의 처음 말씀이 이 학급을 무척 생기 있는 학급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기 저 높은 산을 보아라. 저 산은 산봉우리 하나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옹기종기 모여서 하나의 큰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할 일을 찾아서 자기의 능력에 맞게 해나갈 때.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그 작은 봉우리가 야무지고 충실하여 여럿이 모이면 큰산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니냐 ? 그렇듯이 우리는 공부를 하러 학교에 왔지만 모두가 공부만 잘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우리 나라의 공장은 누가 돌리고, 농사는 누가 지으며,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남이 싫어하는 일은 누가 할 것이냐? 모두가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며, 그 일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바로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아서 평생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우리 학급은 서로 헐뜯고 욕하고 시기하는 일이 없이 각자가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며, 또 분단별 활동으로 학급신문이나 조사발표 등을 해서 협동이 잘되고 서로 돕는 그런 학급이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학급 아이들은 협동심을 북돋우기 위해서 놀이를 함께 하는 것이 퍽 많습니다, 시간만 끝나면 10분간의 쉬는 시간 동안에 빙둘러 앉아서 '시장에 갔더니' '나는 누구 좋아' 등등의 놀이를 하도록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공연히 모여서 남의 흉이나 보거나, 남자들이 뛰거나 싸움질을 하지 않도록 함께 하는 놀이를 개발하고 배워다가 퍼뜨리게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놀이를 할 줄 모른다. 어른들은 시간이 있으면 술이나 마시고, 그냥 모이면 화투놀이로 세월을 보낸다.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사람 여가를 즐겁고 보람있게 보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미국에는 여가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장관을 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을 늘 즐거운 학급을 만들어 주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이 자꾸만 여자아이들에게 추근거린다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연습이 한창인 어느 날, 선생님은 남자들만 데리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금 너희들은 날마다 혼란에 빠져 있을 때다. 동생하고 싸우면 다 큰 녀석이 뭐냐고 꾸중을 듣고나서 이번에 어른들이 하시는 일에 아는 척을 하면 쪼끄만 게 뭘 안다고 끼어드느냐고 꾸중을 듣는 시기이다. 다 큰 녀석인지, 쪼끄만 녀석인지 모르는 때이란다. 지금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꾸 귀찮게 하는 것은 사실은 ‘나 너에게 관심이 있는데 나하고 친하게 지내주지 않을래’하는 말인데, 그렇게 표현을 한다는 게 마치 3학년 때처럼 공연히 툭 쳐본다든지, 놀려본다든지 하는 것이란다. 이제 너희들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었으니, 여자애들을 귀찮게 하는 3학년 같은 짓은 하지 말자”
이렇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우리 학급에서는 새로운 말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공부가 끝나고 하교인사를 하면서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사람조심 차 조심, 안전하게 갑시다”하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한가지가 붙은 것입니다. 누구에게서 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사람조심, 차 조심, 안전하게 갑시다. 3학년이 되지 말자”하는 새로운 꼬리가 더 붙은 것입니다.
이 말이 사흘째 계속되자 여자아이들은 그 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아이를 붙들고 물어도 그 소리가 무슨 말이지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궁금증을 못이긴 여자아이들은 결국에는 남자아이 하나를 붙잡아다가 여럿이 마구 꼬집어대면서 “3학년이 되지 말자가 무슨 말이야. 얼른 가르쳐 주라. 안 가르쳐 주면 가르쳐 주도록 까지 계속 꼬집어 뜯을 거야”하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아니 정말 꼬집어 뜯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명훈이는 그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이튿날부터 여자아이들이 또 하나의 토를 달았습니다.
“(남)3학년이 되지 말자.<여>1학년이나 되라.”
온 학급은 그만 까르르 한바탕 웃음 바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