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기부 잘하는 세계 제일의 낙농국가

2011.08.09 23:00:00

피곤한 몸이 나이 먹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도 흥겨워 떠난 여행지에서는 힘이 난다.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해 뜨는 나라에서 잠만 잘 수 없잖은가. 둬 시간 자고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옆에 공항만 있는 변두리라 갈만한 곳이 없다.


우리의 장승을 닮은 조형물과 현대자동차 선전물을 구경하고 남극의 관문인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배낭을 짊어진 채 자전거를 끌고 공항에 들어서는 젊은이 등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활기차다. 공항의 구석진 곳에서 침낭 하나로 숙박을 해결하는 두 명의 연인은 우리나라 배낭여행객이다.


오늘도 이른 아침을 먹어 아내는 피곤해 했다. 차에 오르자 뉴질랜드 남섬 여행 1700㎞ 거리를 운전할 기사님이 뉴질랜드에 온 것을 환영했다. 남섬을 3일 만에 여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차타는 시간이 많다. 준비하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흥미로운 게 여행이다.

남북내륙코스 여행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남섬의 수도 크라이스트처치, 오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만나는 낙농산업 현장, 대양주의 제일 높은 곳에서 태고의 아름다움을 갖춘 마운틴 쿡, 여왕의 도시로 불리는 물이 깨끗한 호반도시 퀸스타운, 약 1만 2천 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된 피요르드 국립공원을 만난다. 차가 퀸스타운으로 향하면서 뉴질랜드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인구의 80%가 백인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2200㎞ 거리이며, 남위 43도에 위치한다. 면적이 우리나라와 같은 북섬의 인구는 30만명이고, 우리나라의 1.5배인 남섬은 인구 100만명 중 96만명이 동해안 항구에 산다. 해양성 기후라 10개월은 녹색이고 2개월만 마른 풀밭이다. 우리와 반대로 해가 북쪽에 있고 지형이 서고동저다.

영국의 식민지였고 원주민은 폴리네시안(마오리)이다. 세계 제일의 낙농국가로 공중에서 보면 나라 전체가 목장이다. 원주민이 개와 돼지, 백인이 양과 소와 말, 그 후 외부에서 토끼와 사슴을 들여왔을 뿐 뱀 등 사람을 해치는 동물이 없다. 맹수가 없어 날지 못하는 국조 키위가 먹이를 구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 폭우가 내리면 만년설에서 암반가루가 흘러와 물 색깔이 흐리다. 아카데미 13개 부문 수상한 반지의 제왕 등 영상 디자인 산업 발달했다. 병원에서 최대한 항생제를 억제하고 땅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게 환경을 중요시한다. 특히 6.25사변에 참전한 우방국으로 어려운 시절 뉴질랜드에서 빌려준 외화가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끝없이 펼쳐진 목장과 열심히 풀을 뜯는 소떼를 실컷 구경하며 휴게소가 있는 마을에 들렸다. 마을과 마을사이가 차로 2시간여 거리라 이렇게 형성된 작은 도시들이 낙농인의 위락지구 역할을 한다.

마을이 형성되면 박물관부터 지어 공동생활의 의미를 찾는 풍습이 세계 최고의 기부 문화를 만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인 이 마을에도 작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내부를 구경해보니 기부를 많이 했던 사람들의 기록물이 진열되어 있다. 입구의 잘 보이는 곳에 이 마을에서 정한 모금액 중 현재까지의 기부금액을 눈금으로 나타낸 성금온도계가 있다.

커피를 마시며 18세가 되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스스로 독립하고 유산 상속대신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곳 사람들의 기부문화에 대해 들었더니 작고 아담한 마을이 더 아름답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고, 남이 잘못되었는데 행복하다면 삶에 문제가 있다. 남을 기쁘게 하면 내가 행복한 게 기부라는 생각을 했다.


뉴질랜드의 대표적 농목축지 캔터베리 평원은 여름철 서던 알프스의 만년설이 아름답고 길 좌우로 목초지대가 이어진다. 빙하기 빙퇴석 층이 퇴적되어 형성된 캔터베리 평원에서는 줄지어선 나무들이 목장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전원생활이 뭐 별건가. 저런 곳에서 1주일만 생활하면 마음의 묵은 때 다 씻어낼 것 같은데 2000만평이 넘는 목장에 골프장까지 소유한 사람들이 많단다.

뉴질랜드의 목축업은 최대한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 구역을 돌아 4~6개월 후 제자리에 오도록 소가 풀 뜯는 구역과 풀 키우는 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풀만 먹인 소 한 마리 키우는데 2900평의 목초지가 필요해 경제성을 맞추려면 한 가구당 25만평의 목초지가 있어야 한다. 살충제 뿌릴 필요 없게 유기물 분해시간을 충분히 주고, 타이머가 직선거리 2㎞의 스프링클러를 움직이고 분만도 자연 속에서 스스로 하는 시스템이라 목동과 축사가 없다. 빨리 키워내려는 욕심과 경쟁이 구제역 사태를 부른 우리의 목축업과 대조적이다.


맥킨지 분지의 북단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3개의 호수 중 최대 호수인 테카포 호수에 도착했다. 빙하에 깎인 암석의 분말이 청록색을 만든 호수에 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이곳에 개척시대의 양치기들을 위해 맥킨지 분지에서 두 번째로 세워지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다는 선한목자교회가 있다. 20여명이면 자리가 찰 만큼 작지만 지금까지 예배를 보고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높은 걸 보면 신이 사랑하는 교회가 틀림없다. 선한목자교회는 규모에 의존하는 현대의 교회들에게 이만큼이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아서 더 아름다운 교회다.

호숫가에서 사진촬영 중인 신랑, 신부의 모습이 예쁘다. '개가 없었다면 목장을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콜리개 동상은 호숫가에 있는데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개척시대 양몰이를 하고, 도둑에게서 양을 지키고, 위기에 처한 주인의 목숨을 구한 콜리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운 동상이다. 양 도둑놈 마을에서 양치기 목동 마을이 된 작고 아담한 마을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차가 한참을 달리더니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발 520m에 위치한 푸카키 호수다. 날씨 좋은 날이 드물다더니 하필 우리가 호수에 도착하던 시간에도 날씨가 흐리다. 고산 호수 중에서 두 번째로 큰 푸카키 호수도 빙하에서 잘게 부서진 암석 가루 때문에 청색을 띠고 있다. 작은 화장실이 소박해 보이는 휴게소 옆에 마운틴 쿡을 전망하는 장소가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운트 쿡을 바라봤지만 만년설을 구름이 가려 구름인지 흰 눈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마운트 쿡(쿡산)은 해발 3754m로 뉴질랜드의 최고봉이다. 정식 명칭 아오라키 마운트 쿡의 아오라키는 원주민이 구름 봉우리를 뜻하는 말이고, 쿡은 뉴질랜드를 탐험한 영국 장교 제임스 쿡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마운트 쿡은 정식 허가를 가진 산악 가이드를 따라 등정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우유, 꿀, 빙하연어, 흑소불고기란다. 이 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한국인의 집 푸카키 가든에서 1인당 10불을 추가로 지불하고 오메가 쓰리가 많이 들어있다는 연어회를 먹었다. 소주 한 병에 20불이나 되지만 약방에 감초를 빼놓을 수 있는가. '대중음식점 방문자는 대중음식점 지역에서 체재한다.' 가든에 들리는 우리 관광객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지 가든 앞 기다란 연립 주택 입구에 개인재산을 알리는 문구가 한글로 써있다.

이곳에서는 빙하의 물이 수자원이다. 40년 전의 수로공사 현장이 마을로 변해 간이식 건물이 많다. 자연 속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물길 위에서 자라며 정화수 역할을 하는 나무가 계곡을 따라가며 띠를 이룬 모습도 이채롭다.

길은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듯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싶으면 옆으로 또 길을 내어주면서 우리를 태운 자동차가 남부내륙을 향해 고갯길을 넘는다. 물이 없는 계곡을 부지런히 달리는 모습이 태곳적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모두들 식곤증으로 잠들어 차안이 조용하다.


퀸스타운이 가까워지며 길가에 체리 농장이 많다. 비가 많이 와 당도가 떨어지고 수분이 많은 첼리가 터져 70%에 달하던 수출을 할 수 없게 되자 10불을 받고 직접 밭에 들어가 체리를 한 봉지 가득 따게 하는 체험이 생겼다. 무료함도 달래고 밭 안에서 크고 과즙이 풍부한 체리를 실컷 먹을 수 있어 가게에서 사먹는 것보다 실용적이다. 체리나무는 30여 그루 심어 놓으면 노후가 보장될 만큼 소득이 높다.


퀸스타운 못미처에 옛날 금을 캐던 광산이 있다. 옛날 사용했던 물품들이 몇 가지 남아있어 금광임을 알게 한다. 금광 옆 낭떠러지 아래의 계곡을 흐르는 급류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관심을 끈다. 이곳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퀸스타운의 비오는 날 풍경은 100점 만점에 15점짜리라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비가 내리는 호수를 돌아봤다. 각자의 느낌이 다른 게 여행이다. 비오는 날의 호수 풍경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영국을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분이 빅토리아여왕이다. 그래서 빅토리아 이름이 들어있는 지명이 많다. 그런 곳 중 하나인 퀸스타운은 빅토리아 여왕이 와서 보면 반했을 만큼 아름답다.


실미도 출연진의 사인이 많이 걸려있는 한국식당에서 양고기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레포츠 도시 퀸스타운은 관광지대와 주택단지가 구별되고 밤 문화가 없어 조용하다. 비가 내리니 마땅히 갈 곳도 없어 호텔로 향했다. 


백야현상으로 흐린 날도 9시 30분이 넘어 어두워졌다. 호텔 주변을 돌아본 후 비가 주룩주룩 내려 별 볼일 없는 밤에 소주를 마시며 여행일정을 뒤돌아봤다. 별 볼일 없는 밤과 별 볼일 있는 밤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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