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화장지 문화

2011.08.23 09:56:00

예전에는 신학년에 담임을 맡으면 가장 먼저는 아니어도 앞순위에 넣어서 하던 것이 있다. 손걸래 하나씩 준비해오기, 화장지 하나씩 가져오기였다. 교실에 화장지 걸이를 가져올 학생을 정하기도 했다. 교탁 아래에 화장지를 넣어두고 하루에 하나씩 화장지 걸이에 걸어 두었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화장지가 떨어지면 아껴쓰지 않았으니, 오늘은 화장지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었다. 옆반에 남아있는 화장지가 있으면 얻어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화장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시건장치가 되어있는 곳에 화장지를 넣어 두기도 했었다.

화장지를 모아서 학급마다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는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학교에도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가 등장했다. 아마도 2002년 월드컵과 때를 맞춰 그랬던 것 같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엄청나게 변했다. 화장실에서 금연하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실마다 화장지가 비치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고속도로 휴게소, 기차역, 지하철역 등 공공 화장실이 깨끗해 졌고 화장지가 비치됐었다.

학교도 그때쯤 화장지가 비치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들어가야 화장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장실 입구에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가 걸리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사용해야 하는 곳이 학교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화장지는 클수록 좋았다. 그렇게 학교 화장실에 화장지가 등장했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학교 화장실에서 화장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년의 공방이 벌어지다가 최근 들어 다시 화장지가 등장하고 있다.

화장지가 학교 화장실에서 사라진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학생들 때문이었다. 화장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 의해 화장지가 사라진 것이다. 왜 그런지 예측이 될 것이다. 어쩌면 화장지를 사용할 준비가 덜 되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2년 이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그때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화장실은 화장지 천국이었다. 작은 두루마리 화장지에서 큰 두루마리 화장지도 변해가던 시기가 200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풍부한 화장지가 나타나니 원래 용도로만 화장지가 사용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땀을 씻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경우는 원래 용도에서 크게 벋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장난기 있는 학생들 때문에 발생했다. 화장실 벽과 화장실 문이 마치 눈싸움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학교마다 발생했다. 반쯤 사용하고 버려진 화장지가 화장실 바닥을 덮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화장지를 물에 적신 다음 벽이나 문에 던지면 그렇게 잘 붙을수가 없더라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화장지는 그렇게 사용되는 경우가 원래 용도로 사용되는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눈을 피해 계속해서 재밌는 장난을 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니 학교에서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었다.

학생회를 열어 화장지 사용에 대한 계도를 했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학생들의 장난끼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리 없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밖으로 선생님 몰래 날리면 그렇게 재밌었다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보다 더 재밌는 것이 화장지 장난이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학교에서 화장실에 화장지 비치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불편을 겪었다. 학생들의 건의로 다시 비치, 또 다시 회수 이렇게 몇 년을 보냈던 것 같다.

이제는 화장지가 학생들의 소지품이 아니다. 학교의 화장실에는 당연히 화장지가 비치 되어야 한다. 화장실 청소도 학생들이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화장실을 사용할 뿐 청소는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는 용역업체에 맡기거나 별도의 예산을 들여서 하고 있을 것이다. 몇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화장실의 화장지 미비치를 학생들 탓만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화장지 비치를 막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화장지 문제로 불편해진 학생들이 교무실로 몰려들어 교사들에게 화장지를 얻어가는 일이 흔히 있는 광경이 되어갔다. 교육청의 권고로 서울시내 초·중·고에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화장실에 화장지를 비치하고 있다. 교육감이 바뀌고 바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직도 학생들의 화장지 사용문화는 남아있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 들었다. 화장실에 화장지가 지저분하게 돌아다니긴 해도 정도는 줄어 들었다. 학생들의 인식이 그만큼 개선된 것으로 보고 싶다. 몇몇 학생들만 제대로 화장지를 사용하면 화장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교육청관내 학교의 90%가 화장지 미비치 학교라고 한다. 지금의 시기에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도 교육청 관계자의 이야기대로 학생들이 장난을 치는등 화장지를 낭비하여 학교별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에 공감을 한다. 학부모들의 주장처럼 화장지 구입비용이 많이 들어서 미비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서울보다 장난끼 있는 학생들의 화장지 문화가 뒤늦게 경기도에 착륙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화장지 문화를 개선해 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학생들의 화장지 사용 문화를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학교에서 이유 없이 화장지를 비치하지 않았다면 분통이 터지겠지만 그런 학교보다는 화장지 사용문화를 개선해 보려는 학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창희 서울상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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