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 날 아들의 편지를 보며

2012.02.11 14:35:00

지난 2월 6일 아들이 입영하였으니 오늘로 닷새가 된다. 육군훈련소에서 건강하게 하루 세끼 잘 먹고 훈련 잘 받고 있는지 그게 궁금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적응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맞벌이 부부 모두 개학일이라 동행하지 못하고 논산에 있는 부대까지 아들 친구 두 명이 환송하였다. 아빠로서 아침 송별 인사말은 "건강하게 훈련 잘 받고 병역 마치기 바란다" 더 이상 긴 얘기가 필요 없다. 대한민국의 사나이로서 병역의 의무 수행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아들방을 둘러 보았다. 책상 위 편지 하나. 단 네 줄이다.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음! 편지 하겠음! -상훈-' 이것을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마음이 허전하기만 하다. 이게 대학 1학년 학생의 현주소다. 아니다. 우리가 자식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이다.


직장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아들이 이공계라 그렇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다녔는데 벌써 전공 티가 난단 말인가? 아무래도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 단절, 소통 부재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아니면 군대식 편지를 미리 흉내낸 것이지도 모르고.

편지 종이는 엄마가 쓴 '입영 준비사항' 4가지에 대한 답이다. 아내는 입영 준비물 3가지, 휴대전화 정지, 대학 휴학 처리, 입영 여비 찾기를 부탁하였다. 그 중 2가지만 처리한 상태다. 나머지는 부모가 해야 한다.

책상 위에는 신용카드, 학생증이 놓여 있고 돈도 있다.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과 현금 2만 9천원. 아마도 친척들이 준 용돈 같다. 입영 주의사항에 만원 미만으로 지참하라는 것을 보았다. 평소 입었던 옷은 방에 흩어져 있고 이부자리도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옷장은 열려 있고. 이게 우리 아들의 생활습관이다. 

이부자리를 개고 옷장을 정리한다. 빨래할 옷은 따로 모은다. 현관입구에 놓인 아들 신발은 베란다에 모아 두었다. 현관이 휑하다. 옛말에 드는 사람은 몰라도 나는 사람은 표가 난다고. 식구 하나가 비었는데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부부 교원이라 자식 교육 잘 시킬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딸과 아들이 알아서 공부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가정교육 부실이다. 부모와 대화하려 들지 않는다. 하루에 한 마디 대화 나누기도 힘들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엄마에게 달라는 것이 고작이다.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따로 한다.

입영 전의 생활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자유로운 생활이 아니라 불규칙한 생활 그 자체다. 밤새도록 게임하고 늦게 일어나고 친구와 1주일 간 여행 떠나고. 한 때의 일탈이려니 하고 잔소리 하지 않고 그냥 넘긴다. '군대 갔다오면 철들겠지' 하고 기대도 하여 본다.

늦게 결혼해서 그런지 요즘 가족 해산을 경험하고 있다. 딸은 서울서 자취하고 아들은 군대가고 아내는 직장 따라 가고. 외로움 이겨내기 연습 중이다. 노년에 쓸쓸하지 않으려면 아내와 자식들과 정을 쌓고 추억만들기를 많이 해 두어야 한다는데 맞벌이는 그게 어렵다.

얼마 전 우리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중학교 졸업생이 305명인데 한 가정에서 부모 자식 등 3-4명이 온 것 같다. 그러니까 학부모만 1,000 여 명에 이른다. 우리 자식 졸업식을 떠 올려 본다. 중학교 졸업식 때 부모 모두 참석 못하였다. 아내는 직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필자는 학교 졸업식과 겹쳤을 것이다. 쓸쓸한 졸업식을 맞게 했으니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목석 같은 아비를 닮아서 그런가? 아들의 편지는 지나친 것 같다. 아마도 마음 속에 맺힌 그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교 3학년 때인가 아들의 말, "내가 얼마나 언행에 조심하는지 알아? 조금만 잘못하면 쟤 부모가 선생님인데…."라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미리 조심하다 보니 학창시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는 뜻이다.

아들의 편지를 보며 아빠로서 반성한다. 학비만 대는 것이 아빠의 역할은 아니다. 자식을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직장생활을 핑계로 따뜻한 정을 주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자식의 독립정신을 키운다고 자위하였다. 입영날 직장에서 하루 연가도 낼 수 있으련만 개학을 핑계로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명목으로 어차피 헤어질 걸 미리 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22개월 뒤, 아들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도 자식과 친해지는 방법을 익히고 부모 자식간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하겠다. '인생 얼마나 살겠다고 자식에게마저 그렇게 쌀쌀하게 대하나?' 혼자 중얼거려 본다. 아들의 그 짧막한 편지는 부모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가정교육이 그 만치 중요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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