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떼가 앉아있는 조도와 환상의 섬 관매도 여행|

2012.05.29 09:30:00

몽벨서청주 산악회원들이 19일부터 이틀간 진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관매도와 조도를 다녀왔다.

자정을 막 넘긴 1시에 청주를 출발한 관광버스가 어둠을 뚫고 남쪽으로 달린다.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겨야 한다. 과속방지턱을 넘던 버스가 굉음을 내 잠결에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가 어스름이 떠오르는 시간에 진도가 섬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는 첫 번째 관문 진도대교를 건넜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을 해남의 우수영관광지와 진도의 해변공원이 마주하고 있다. 새벽녘이지만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해변공원에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게 했던 울돌목의 빠른 물길을 바라보고 있다. 해변공원 뒤편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이른 시간이라 입안이 깔깔한 게 밥맛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 진도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토종의 '진도개(천연기념물 제53호)', 발효와 증류ㆍ지초의 용출과정을 거친 선홍색의 '진도홍주(전라남도지정문화재 제26호)', 남도석성ㆍ용장산성 등 '삼별초의 항몽유적지',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의 바닷길', 육자배기 서정민요 '진도아리랑' 등 특별한 것이 많다. 오죽하면 진도에서는 글씨, 그림, 노래 가락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국도 18호선을 타고 서남쪽 끝으로 가면 관문 연안항으로 조도를 비롯한 근해의 섬들을 진도와 연결하는 팽목항이 있다. 팽목항에서 조도, 관매도 등으로 가는 배편은 관매도명품마을홈페이지(http://www.gwanmaedo.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팽목항 선착장에 인근의 섬으로 가는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섰다. 돌아가신 이가 고향을 찾는지 영구차와 상주들이 보인다. 7시가 되자 관매도로 가는 정기여객선 한림페리 3호가 출항한다.

진도 앞바다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지역이다. 섬 하나를 지나면 뒤편에서 기다리던 또 다른 섬이 나타난다. 가까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먼 곳에서 몸집을 줄인 섬들이 구름이 많은 날씨ㆍ희뿌연 안개와 어우러지며 바다 가득 흑백의 수묵화를 그려놓아 배위에서 조용한 아침을 맞이한다.

다도해의 많은 섬 중에서 조도군도는 좀 특별하다. 154개(유인도 35개, 무인도 119개)의 섬이 바다위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새떼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여 지명에 새조(鳥)자가 들어있다.

조도가 가까워지자 어렴풋이 조도 등대, 신금산, 돈대봉, 도리산 전망대가 왼편에서부터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7시 40분경 하조도의 어류포항에 도착해 승객과 승용차를 내도려준 여객선이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1997년 개통) 아래를 지나며 관매도로 향한다.

휴일이라 관매도로 가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다. 뱃전에서 조도대교 아래편의 양식장, 바닷가 마을, 도리산 전망대, 돈대봉, 신금산, 해변과 해안절벽을 구경하다보니 8시 45분경 관매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여객선에서 내리면 관매마을과 관호마을을 알리는 표석과 '걷고 싶은 매화의 섬 관매도' 글자가 맞이한다. 


관매도는 진도 연안의 끝자락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가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을 촬영하며 세상에 널리 알려진 환상의 섬이다. 관매도라는 지명은 새가 입에 먹이를 물고 잠깐 쉬어간다는 볼매에서 한자식으로 고쳤다거나 제주도로 귀양 가던 선비가 해변에 매화가 무성하게 핀 것을 보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관매도의 3개 마을이 국립공원 최초의 명품마을로 지정되어 친환경 순찰차가 운행되고 있다.

왼쪽으로 가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관매8경의 제1경인 관매해수욕장이다. 맑은 물과 고운 모래가 길게 펼쳐진 해수욕장 뒤편으로 아름드리 해송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사림에서 솔 향이 불어오는데 그 뒤편에 수령 800여년의 후박나무(천연기념물 212)가 있는 관매마을과 자그마한 장산편마을이다.

해변과 송림을 지난 후 왼편의 바닷가를 따라 방아섬 탐방로를 걸으면 독립문바위와 방아섬 가는 길을 구분하는 이정표가 서있다. 왼쪽 산길을 걸으면 멀리 바다 건너편으로 관호마을이 바라보이고 산길을 내려서면 일몰이 아름답다는 독립문바위가 나타난다. 기암절벽이 막아 해식동굴의 입구인 독립문바위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관매도를 이어주는 마실길은 대부분 산책을 하듯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독립문바위를 보고 방아섬 쪽으로 걷다보면 산길 중간에 '바닷가 가는 길'이 여러 곳 있다. 해발 35m 가량의 제2경 방아섬 위에 우뚝 솟은 남근바위(높이 10m)는 바닷가로 내려서야 잘 보인다. 옛날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전설과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정성껏 기도하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위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여 버섯, 비행접시 등 다양하게 이름을 붙여본다.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방아섬 아래편의 해안 풍경이 멋지다.

왔던 길을 되돌아 산길을 내려선 후 돌담이 아름다운 장산편마을을 둘러본다. 2010년 11월 관매도에 도착했던 중국의 밀입국 어선을 전시한 마실길을 지나면 바닷가에 일출장소인 셋배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11시 10분경 이른 점심을 먹고 최고봉인 돈대산 산행을 시작했다. 


셋배에서 돈대산 정상까지는 1.9㎞ 거리이다. '높이 오르는 새가 멀리 본다.'고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흐린 날씨가 조망을 가리지만 이런 날은 역광이 없어 사방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좋다. 뒤돌아보면 나타나는 멋진 풍경과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일행들의 꽁무니에서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 대신 '돈대산 330.8m'가 써있는 종이가 나무에 매달린 정상의 풍경이 초라하다. 330.8m보다 219m로 소개된 곳이 많은 돈대산의 정확한 높이도 궁금하다.

1박 2일 코스를 하루에 다 돌아보는데 무리가 있다. 꽁돌과 하늘다리까지 다녀오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초행길의 나그네가 이것저것 다 구경하려고 욕심을 냈다. 반은 뛰다시피 양덕기미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 바다, 녹색 들판과 산, 관호마을의 빨간색 지붕, 길게 이어진 해안절벽이 산 아래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남쪽바닷가 언덕에서 만나는 돌담이 관호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우실'이다. 민속신앙 등 삶의 집합인 우실에서 해변으로 200여m 내려서면 제3경인 꽁돌과 돌묘가 있다. 옥황상제가 가지고 놀던 꽁돌을 두 왕자가 장난치다 지상으로 떨어뜨렸고, 하늘에서 내려와 꽁돌을 가져가려던 장사들이 거문고 소리에 매료되어 올라가지 않자 옥황상제가 모두 돌무덤으로 만들어 그곳에 가두어 버렸다는 전설대로 꽁돌에 왼손으로 받쳐 들었던 손가락자국이 선명하고 꽁돌 옆에 돌무덤이 있다.

꽁돌에서 제5경인 하늘다리까지 1㎞ 거리는 숨을 헐떡여야 한다.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갈라진 두 바위섬 사이에 20여m 길이의 하늘다리가 놓여있다. 짧은 거리지만 바다에서 50여m 높이의 다리라 하늘을 걷는 느낌이다. 다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갈라진 틈새를 내려다보며 바다 쪽에서 바라본 하늘다리의 멋진 풍경을 상상해본다.

여행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더 많이 보인다. 되돌아오는 길에 제6경 서들바굴폭포 주변의 해안과 뒤편의 돈대산을 자세히 바라보고 일행과 두런두런 대화도 나눴다. 배를 타고 바다에서 접근해야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제4경 할미중드랭이굴, 제6경 서들바굴폭포, 제7경 다리여, 제8경 하늘담(벼락바위)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천천히 관호마을의 풍경을 둘러보며 선착장으로 갔다.


2시 30분에 관매도선착장을 출항한 여객선이 우리나라 대마도, 모도, 소마도, 관사도, 나배도를 차례로 들리고 조도대교 밑을 지나 3시 50분경 하조도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어류포항에 도착했다. 현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뱃전에서 섬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직선으로 500m 거리인 나배도와 조도 사이에 다리가 놓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도는 관매도보다 열 배 이상 큰 섬으로 초ㆍ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까지 있어 주변 섬사람들의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조도의 중심지인 창리마을이 고개 너머에 있어 어류포항이 한산하다. 선착장 앞에 바닷가를 바라본 관광안내판이 있는데 좌우가 바뀌어 알아보기 어렵다. 지도의 좌우를 바꾸거나 안내판을 바닷가 쪽에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타고 남쪽해변으로 가니 신전해수욕장과 가까운 신전리에 최근에 건축한 한옥마을이 있다. 뒷산의 멋진 풍경과 잘 어울리는 한옥에 짐을 풀었다. 일행들이 마당에 모두 모여 숯불을 피우고 청주에서 준비해간 소갈비살과 현지에서 조달해 싱싱한 전복으로 멋진 파티를 했다. 이날 내가 좋아하는 전복 내장을 실컷 먹었다.

밤바다를 구경하기 위해 아내와 해변으로 나갔다. 가로등과 등대의 불빛 때문에 바다는 외롭지 않다. 철썩, 차르르…. 고요한 밤바다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숙소로 오니 일행들이 기다린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술잔을 비우고 느낌이 포근한 한옥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한옥마을 주변은 새들의 천국이다.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산에서 온갖 새소리가 다 들려온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어민들이 새롭게 아침을 맞이하는 바닷가로 나갔다. 해변을 거닐며 풍경이 아름다운 신전리 앞바다를 실컷 바라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일행들이 끓여 더 맛있는 전복죽을 3그릇이나 비우고 7시에 한옥마을을 떠났다. 손가락바위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무리하지 않기 위해 돈대봉(높이 230m) 산행을 생략하기로 했다. 7시 30분경 유토마을에서 신금산(높이 220m)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초입에서 신금산 정상까지는 1㎞, 최종 목적지인 등대까지는 5㎞ 거리이다. 섬 산행에서 산의 높이가 낮다고 깔보면 고생한다. 신금산 산행은 초입에서 힘이 들지만 사방이 다 바라보이는 능선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하는 암벽이 이어져 재미있다.

여행은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것을 많이 보는 3박자를 갖춰야 즐겁다. 전날부터 몸이 아팠던 남자분이 고생을 많이 하며 나무 팻말이 표석을 대신하는 신금산 정상에 섰다. 삶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동행이다. 남편을 걱정하며 힘이 되어준 동반자가 옆에 있어 더 아름다웠다.

조도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길을 걸으며 조도대교로 연결된 상조도와 하조도, 바닷길을 오가는 소형어선과 등대, 작아서 더 평화로워 보이는 어촌마을, 굽잇길에 아름다운 풍경들이 숨어있는 해안도로를 수시로 만난다. 조도의 산길은 주변의 다도해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다. 


하조도 산행의 클라이맥스는 최종 목적지인 하조도 등대다. 1909년 건립한 하얀 등대가 가파른 절벽 위에서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든다. 바닷가의 멋진 공원에 조형물 '세계를 향하여'를 설치하고, 옛날에 사용했던 '무종ㆍ에어 사이렌 나팔ㆍ전기혼'을 전시하고 있다. 맞은편 절벽 위의 정자에서 진도와 관매도 방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 절벽 아래 해변은 기암괴석이 모여 있는 만물상이다.

등대를 출발한 45인승 버스가 북쪽 해안도로를 달려 조도대교로 간다. 매일 저녁 자율학습이 끝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해줘 '제1회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한 조연주 교사가 근무하는 조도고등학교를 지나고, 임신부를 닮은 돈대봉 줄기도 차창 밖으로 보인다. 대교를 건너 상조도로 가며 바라본 바닷가 풍경과 작은 마을이 한적하고 평화롭다.

여행지를 제대로 알려면 그 지역의 높은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봐야 한다. 섬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상조도의 도리산(210m)에 있다.

도리산 전망대는 바로 아래까지 시멘트 길이 나있어 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높이에 비해 조망이 좋은 전망대에서 주변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조도군도에서 가장 큰 하조도와 상조도를 작은 섬들이 둘러싸고,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놓인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조도라는 지명을 만들었다. 멋진 풍광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매력적이다.


정원초과로 오랫동안 승객들을 고생시킨 여객선이 2시 40분경 팽목항을 향해 출항한다. 멀어져가는 조도를 바라본 후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뱃전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들여다볼수록 볼거리가 지천이다. 수천 년 이어온 맛과 멋, 흥과 가락이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인정이 오간다. 소박한 우리 땅에서 순박하게 사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여행길이 늘 즐겁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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