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일본식 한자어

2012.07.22 18:54:00

우리는 오천년이 넘는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역사의 힘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국가 시절에 제국주의의 탐욕에 걸려 불행을 겪었다.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유구한 역사로 볼 때 그 시기는 오랜 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난 지도 어느덧 6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그때 쓰던 일본어 투 용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광복 직후부터 ‘국어 정화’ 작업을 해서 ‘벤또’, ‘다마네기’ 등 일본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본어 투 용어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가 많다. 물론 이들 말 가운데에는 이미 우리말 속에 녹아들어 굳이 다른 말로 바꿀 필요가 없는 말도 많이 있지만,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어렵고 생소한 일본식 한자어도 많다.

‘고수부지(高水敷地)’는 그 중 대표적이다. 이 말은 큰물이 날 때에만 물에 잠기는 강가의 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맞는 우리말은 ‘둔치’다. 이 ‘둔치’가 ‘고수부지’를 순화한 말이다. 그런데 한강은 둔치를 잘 다듬어 그곳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놀이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단순히 ‘둔치’라는 말만으로는 그와 같은 특성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 그래서 ‘마당’이라는 말을 덧붙여 ‘둔치 마당’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강 고수부지’는 ‘한강 둔치 마당’ 또는 줄여서 ‘한강 둔치’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중제’도 일본어 투 용어다. 과거 여의도는 섬이라기보다는 홍수가 나면 물에 잠기는 큰 모래밭에 가까웠다. 여의도 개발계획에 의거 섬을 두르는 강둑을 쌓는 공사가 있었다. 이 강둑이 ‘윤중제’디. 그리고 강둑을 따라 뻗은 도로가 ‘윤중로’이다.



그러나 ‘윤중제(輪中堤)’는 일본말인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의 한자 표기를 우리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즉 ‘윤중제(輪中堤)’는 강섬을 둘러쌓은 제방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이렇게 해서 여의도가 본격 개발되고 윤중로에 벚나무를 심고, 여의도 벚꽃 잔치를 ‘여의 윤중제(윤중로) 벚꽃 잔치’라고 부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윤중로’라는 길이 만들어지고, ‘윤중 초등학교’, ‘윤중 중학교’가 생겼다.

다행히 86년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여의 윤중제’를 ‘여의 방죽’으로, ‘윤중로’는 각각 ‘여의도 서로’, ‘여의도 동로’, ‘국회 뒷길’ 등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이름은 아직도 있다.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쓰는 ‘간지 나다’도 일본어 투 용어다. 이는 일본어의 ‘간지(かんじ=感じ)’와 우리말 ‘나다’를 결합하여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멋지다’, ‘멋있다’, ‘느낌이 좋다’ 정도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 참고로 우리말 형용사인 ‘간지다’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의미상 거리도 있고, 형용사의 어간이 그대로 명사화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간지 나다’의 ‘간지’가 형용사 ‘간지다’에서 온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반인은 어느 단어가 일본식 한자어인지 알기 어렵다. 국립국어원 누리집 자료실에는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올려놓고 있다. 이 자료에는 반드시 순화어만 써야 하는 경우와 되도록 순화어를 써야 하는 경우, 순화 대상 용어와 순화어를 함께 쓸 수 있는 경우로 나누었다. 이 중에 ‘견출지 → 찾아보기 표 찾음표/결석계 → 결석신고(서)/고참 → 선임(자), 선참(자)/구인 → 끌어감/기라성 → 빛나는 별/나대지 → 빈 집터/노견 → 갓길/마대 → 포대, 자루/매물 → 팔 물건/수입(手入) → 손질/수타국수 → 손국수/수확고 → 수확량/숙박계 → 숙박장부/십팔번 → 단골 장기, 단골 노래/운전수 → 운전 기사, 운전사/전향적 → 적극적, 진취적, 앞서감/제전 → 축전, 잔치/중매인 → 거간, 거간꾼/축제 → 축전, 잔치/취입 → 녹음/취조 → 문초/택배 → 집 배달, 문 앞 배달/호열자 → 괴질, 콜레라’ 등은 반드시 순화어만 써야 하는 예로 들고 있다.

이 자료를 보면, 무심코 사용하고 있던 단어가 일본식 한자어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 올바른 단어를 써야겠다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단어도 보인다. ‘택배’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굳어진 단어인데, 순화되어 바르게 쓰일지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나라인가. 지금 지구촌 젊은이들이 K-POP에 열광한다. 우리의 어린 가수들을 보기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유럽청년들도 한국의 문화에 감동하여 코리아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국인을 우습게보던 일본도 ‘겨울연가’라는 드라마 한편에 빠져 이제 한류 문화의 단골이 되었다.

광복 후 전쟁을 치르고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세계 강국이 되지 않았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대국으로도 자리 잡았다. 포기하지 말고 우리 언어를 찾으려고 한다면 찬란하고 우수한 우리말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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