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방학인데도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한다.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에 있는데 집에서 편히 자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다. 아직도 밤이 길게 느껴진다. 몸은 감기 기운이 있다. 새벽 3시가 좀 넘었는데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책을 가까이하는 길밖에 없다. 책은 나의 친구다. 나의 스승이다. 나의 도움이 된다.
어느 글을 읽다가 오늘은 스승의 날도 아닌데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다 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머물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선생님은 임금님과 부모님과의 은혜만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자세, 위치, 역할도 같다는 생각에 젖게 된다.
선생님은 왕이다. ‘왕’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높은 보좌이다. 군림하는 자세가 떠오른다. 백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병자들, 약한 자들,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자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무서운 분이라는 것으로 느낀다.
선생님은 이런 왕이 아니다. 왕은 주인이다. 선생님도 주인이다. 학교에서 주인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학교시설을 관리하는 책임이 있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책임이 있다. 병든 학생, 약한 학생, 문제 있는 학생, 선생님에게 도전적인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인이다.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도적으로 교육을 잘해 나갈 수 있다.
선생님은 거리감이 있는 분이 아니라 따뜻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이다. 학생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냉정하고 거리감 있는 분으로 느껴지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꺼려한다.
“1996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왕족들이 평소에 얼마나 평민들과 거리감 있게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왕실의 반응에 불만을 품은 소위 ‘평민’들의 왕실을 향한 분노는 대단했었다. 따뜻했고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다이애나와는 대조적으로 왕실에 속한 사람들은 냉정하게 거리감이 있었다. 일반인들의 고통에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으로 보여졌다.” 다애애나와 같은 자세가 우리 선생님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다.
우리 선생님들은 부모님과 같은 자세가 또 필요하다. 부모님은 언제나 따스함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관심이 있다. 사랑이 떠나지 않는다.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 외면하지 않는다. 아파도, 약해도, 비정상적일 때도, 화를 낼 때도, 무리한 행동을 할 때도 항상 그 곁에 지켜보고 있는 분이 부모님이다. 그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런 마음이 우리 선생님들에게 요구된다. “다이애나가 죽었던 주간에 세상을 또 다른 여인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캘커타에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던 테레사 수녀가 죽은 것이다. 테레사 수녀와 같이 매우 가난한 사람들, 병들고 찌든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테레사 수녀는 어머니와 같은 삶은 사신 분이다. 사랑을 모든 분에게 듬뿍 주신 분이시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우리 선생님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올해는 나에게 맡겨진 모든 학생들에게 두루 관심을 갖고 사랑하되 특히 소외되고 힘들고 어렵고 문제가 많은 학생들에게 관심과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보여야 하겠다.
왕 같은 선생님, 부모님 같은 선생님, 특히 어머님 같은 선생님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 따스하고 친근감 있고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선생님은 어디를 가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어려우면 선생님을 찾는다. 나라가 어려워도 선생님에게 기댄다. 선생님을 선생님답게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선생님이 이 땅에 없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