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을 알리는 입춘도 지났다. 겨울은 마감되고 봄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장난이 아니었다. 서울, 수도권에는 폭설로 힘들었고 따뜻한 남부지방인 울산에서는 비온 후의 안개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따뜻한 봄을 막을 수는 없다.
정몽주 시인의 ‘春興(춘흥)’이란 한시를 접하게 되었다.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터니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이라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하니 草芽多小生(초아다소생)이라” ‘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밤 되니 작은 소리 들리네 눈 녹아 남쪽 시냇물이 불어나니, 풀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
이 시야말로 입춘을 알리는 시, 봄을 알리는 시였다. 봄을 세우는 시, 봄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시였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밤새 봄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많은 비가 아니었다. 細不滴(세부적)하였다. 즉 방울지지 않았다. 밤중에 소리도 비 소리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봄을 알리는 비로 인해 흙은 부드러워졌다.
우리 선생님들은 春雨(춘우)와 같은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을 녹여주는 역할을 하는 춘우 같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그 완악하고 거칠고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역할을 우리 선생님들이 하면 학생들은 거칠고 딱딱한 마음도 녹아지지 않을까 싶다. 눈이 녹듯 녹아져서 계곡에 물이 흐르듯이 신선한 대화의 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딱딱한 흙을 녹여서 부드럽게 하는 것은 봄을 알리는 비였다. 우리 선생님들은 봄비, 봄비, 봄비 같은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보배로 여긴다. 대표적인 것인 흰 옥(玉)이다. 흰 옥이 더러운 흙에 묻혀 있어도 언제나 흰 옥이지 돌이 아니다. 숨겨져 있어도 더러워져 있어도 언제나 흰 옥이다. 때가 되면 발견되어지고 때가 되면 더러움을 털어내게 된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은 조급할 필요가 없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답답해 할 필요가 없다.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조급할 필요가 없다. 때를 기다리면 된다. 흙 속에서 안달을 내는 草芽(초아)들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때를 기다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다가 춘우를 만나 위험을 무릅쓰고 살며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다. 우리 선생님들은 흙 속에 묻힌 草芽(초아)인지도 모른다. 속앓이를 하고 갈등 속에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낙심할 필요가 없다. 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생명을 지닌 푸른 싹처럼 희망을 볼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희망을 심어주는 선생님이다. 꿈을 심어주는 선생님이다. 행복을 심어주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값이 있다. 가치가 있다. 더러운 흙에 묻혀 발견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과 꿈과 행복을 심어주는 역할이기에 참 보람된 일이다. 선생님을 보람을 먹고 산다. 보람이 있으면 신나게 된다. 행복해진다.
이제 2012학년도를 마무리를 한다고 선생님들은 다들 바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출발, 힘찬 전진, 새로운 도전, 계속된 전진이 필요하다.
춘우, 흰 옥, 초아와 같은 자부심을 갖고 2013년을 준비하면 좋겠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하니 ‘草芽多小生(초아다소생)이라. 눈이 다 녹고 남쪽 계곡에 물이 넘쳐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푸른 싹이 돋아나려고 분주하게 준비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가? ‘多小生(다소생)이라’이라 얼마나(多小) 돋아났을까? 시인은 상상해 본다.
우리 선생님들은 입춘을 알리는 봄비와 같이 성품을 변화시키는 선생님임을 알고 기뻐하면 살기를 바란다. 또 초아와 같이 희망과 꿈과 행복을 심어주는 선생님임을 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