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시각, 착각

2013.02.21 21:58:00

복도를 지나는데 남녀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순간 당황해서 두 학생을 불렀다. 그리고 점잖게 타일렀다.
“학교에서 반듯하게 걸어 다녀야지?”

그 말에 녀석들이 “저희 친구인데요.”라고 맹랑하게 말한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완곡하게 말했더니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학교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
이 말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저희 친구라니까요?”하면서 되레 볼멘소리를 한다.

내심 이 놈들을 말로 타일러서는 안 되겠구나 하면서 다른 지도 방법을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남학생이라고 여겼던 학생이 바지만 입었지 여학생이었다. 순간 입을 닫았다. 그 여학생도 자신이 잠시 남자로 대접받은 것을 눈치 챈 듯 떨떠름하게 기분을 털어내고 있다.

우리는 잘못된 판단의 잣대로 현상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닌 기억, 지식, 경험 등의 울타리 안에서 사물이나 사실을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실제와 다른 착각의 덫에 걸린다. 요즘 교복으로 바지를 입는 여학생이 부쩍 많아졌다. 게다가 선머슴 아처럼 하고 다니는 여학생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만으로 남자로 착각했다.

우리는 사실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한다. 부모는 인생을 더 살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사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법을 실천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이것이 착각이다. 아이는 그것이 간섭이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이의 선택을 사랑해야 한다.

명품을 좋아하는 심리도 착각과 맞닿아 있다. 명품을 가지게 되면 자신도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착각이 시작된다. 명품으로 심리적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경향은 최근 소비문화까지 훼손하고 있다. 합리적 소비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왜곡된 사회 인식까지 낳고 있다.

나도 착각을 많이 한다. 올해도 나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서 지난 해 아이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했다. 그리고 올해 아이들이 작년 아이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이 생각은 작년해도 했고, 그 전 해도 했다. 즉 나는 객관적 기준도 없이 매년 아이들을 굴절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원인을 찾고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설명할 때는 타인의 행동에서 요인을 찾는 편향성을 둔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나도 내가 힘든 이유는 모두 어린아이들 때문이라고 믿었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볼 때 문제만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 웅숭깊은 마음으로 시각을 현명하게 발효시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변하는 만큼 나도 변해야 할 때다.

교육부 장관 출신 교육감이 선거에서 시험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시험으로 지나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다. 이것도 착각이다. 여기서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학생들이 힘들어 한다. 오히려 시험은 교육과정에 아주 중요한 영역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경쟁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데 이것도 착각이다. 경쟁의 사다리가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았나.

장관 출신의 교육감도 착각을 하듯, 우리는 누구나 착각의 짐승을 키우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과 성향에 따라 변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착각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혼자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가 좁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착각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대화도 불가능하게 해 대인관계도 어렵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바로잡아 주고 싶은 착각이 있다. 착한 사람이 험한 세상에 낙오자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젊은 부모들은 아예 아이들이 약고 때로는 적당히 권모술수를 쓸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을 내비친다. 물론 착한 사람은 치열한 경쟁에서 제몫을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착한 것은 인생에 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착한 아이들은 삶에 진지함이 있고, 성실하다. 그들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펼쳐가고 행복한 여정을 살아간다. 그리고 풍부한 인격을 지니고 있어 남에게도 감화를 준다. 착한 사람들은 그 빛깔과 몸짓으로 험한 세상에 빛나는 존재가 된다.
윤재열 초지고 수석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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