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명절 백중(百中)을 아시나요?

2013.08.20 15:05:00

농경사회에서 농민의 민속명절로 오랜 세월 전해오던 백중(百中)은 이제는 잊혀져가는 날이 돼 아쉽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농악놀이를 하며 씨름대회와 함께 잔치가 열렸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에 농경사회에서 세벌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휴한 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농민들의 여름철 축제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명절이었다.

백중놀이로는 씨름,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석(擧石)행위로서 소동(小童)들이 진쇠(成人)가 되는 관례의식인 들돌 들기, 호미걸이(경기도), 밀양백중놀이, 경상도 지방의 풋굿 등의 놀이가 있었다. 백중의 다른 이름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백종(百種)이란 명칭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백중(百衆), 머슴 날, 망혼일(亡魂日), 머슴의생일, 중원일(中元日), 호미 씻는 날, 햇곡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날이라는 축수한날, 청소년층이 두레패에서 장정 대접을 받게 되는 통과의례인 진세턱, 머슴명일(전주), 상놈명절(함안), 우물고사 등 다양하게 행사를 했다. 백중날에 머슴들에게는 백중 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장만해 주었으며, 모처럼의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그래서 ‘백중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됐다.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의 말이다.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 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 한다. 1월 15일을 상원(上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7월 15일을 중원(中元)이라 해 삼원(三元)에 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망혼일이라 하는 까닭은 이날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 · 음식 ·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을 했는데 요즘은 절에서 부모의 영혼에 망혼제(亡魂祭)를 올린다.

백중과 관련된 속담으로는 ‘백중날은 논두렁 보러 안 간다’, ‘백중 무수기에는 메밀농사 끝에 늘어진 불 보려고 구멍에 든 소라가 나온다’,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할 것 없다’, ‘백중에 바다 미역하면 물귀신 된다', ‘칠월 백중사리에 오리 다리 부러진다’ 등이 있는데 당시의 생활풍습을 엿볼 수 있다.

사찰에서 행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와 달리 민간에서는 망혼일이라 해 여염집에서 중원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 혼을 부른다고 했다. 백중에는 민간에서 망혼제(亡魂祭)를 지내고, 절에서는 스님들이 석 달 동안의 하안거(夏安居)를 끝내는 날이기도 하다. 즉 우란분재와 백중은 조상영혼의 천도, 참회와 중생제도, 나아가서 일꾼들이 즐기는 농촌축제의 날이었다. 충청도 풍속에 15일에는 노소가 저자로 나와 마시고 먹으며 즐길 뿐더러 씨름놀이도 하고, 경사대부(卿士大夫)집에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올벼(早生稻)를 사당에 천신했다고 한다.

공배술 풍습은 주로 충청도에서 많이 했다. 공배란 두레에서 심부름하는 청소년층을 일컬으며, 공배가 연령이 차서 두레성원이 되고자 할 때, 백중날 동이로 술을 내는 공배를 거쳐 허락을 얻는다. 농민들에게는 일 년에 두 차례 거대한 농민축제가 존재했다. 겨울철 휴한기인 정월대보름과 여름철 휴한기인 7월 백중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보름과 달리 7월 백중은 두레의 소멸과 더불어 거의 잊혀져가는 풍습이 되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밀양백중놀이 등이 남아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됐다. 백중이 되면 여러 행사가 있어왔다.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을 한 다음에 먹는 천신(薦新)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宗廟)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조상은 설 명절과 정월대보름에 민속놀이나 세시풍습이 가장 많았다. 윷놀이, 망월놀이를 시작으로 오월에는 창포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단오절, 음식을 장만해 산간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서늘하게 하루를 보낸 6월 '유두(流頭)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칠석, 머슴들까지 쉬게 하는 농민명절인 백중, 팔월한가위 명절, 9월 중양절(重陽節), 시월상달, 팥죽을 끓여먹는 동짓날 등 자연과 함께 삶을 풍요롭게 살아온 아름다운 세시풍속이 있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휩쓸려 민속전통이 이어지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을 보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찬재 (전)충주 달천초등학교 교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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