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품다

2013.11.11 12:05:00

울산 시내를 관통하는 14번 국도를 따라 애마는 신나게 달린다. 때마침 가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흑갈색의 아스팔트길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나는 지금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외고산리 옹기마을을 찾아가는 중이다. 들판에는 벼들이 누릿누릿 익어가고, 야트막한 산 능선에 자리한 과목들은 가지마다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탐스럽게 여물어가고 있다. 아, 싱싱하다. 울산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이렇듯 깔끔한 형용사로 시작되고 있었다.

문득 산비탈의 위태로운 나무들을 보노라니 스무 살에 농촌을 떠나 그동안 척박한 도시의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동안의 과거가 떠오른다. 저 나무들도 나처럼 처절한 생명의 고독을 느낀 후에야 뿌리를 내린 것이라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외고산리 옹기마을은 제14호 국도변에 위치해 있었다. 동해남부선과 접해 있고 교통 또한 사통팔달 편리해서 이곳에서 생산된 수많은 옹기들이 전국으로 반출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제일 먼저 차가 멈춘 곳은 길가에 아늑하게 자리한 허진규 옹기장님의 요업장이었다. 집 주변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각종 옹기들을 첩첩으로 쌓아놓아서 한눈에 보아도 이곳이 옹기장이 집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거기에다 흩뿌리는 가을비를 뒤집어 쓴 옹기들은 마치 참기름이라도 바른 듯이 반짝반짝 도광을 발산하고 있다.

허진규 옹기장님은 바쁜 중에도 틈틈이 손을 들어

“저건 중옹이고 이건 통옹 또 이건 반옹입니다. 저어기 보이는 저 옹기는 머쎄기라는 항아리인데 주로 식수를 담아둘 때 쓰지요.”

옹기들은 크기와 모양 및 쓰임새에 따라 그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옹기장님은 이어서 옹기의 특징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특히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과는 달리 우리의 옹기는 숨을 쉬는 무공해 생명체로 김치 같은 발효음식에는 반드시 필요한 그릇이에요. 물도 항아리에 담아두면 오래 되어도 잘 썩지 않습니다.”

말이 끝나자 옆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한 마디 거들었다.

“옹기를 쌀독으로 사용하면 쌀벌레가 생기지 않아 일 년 내내 햅쌀 같은 맛을 낸답니다.”

부부의 설명을 경청하다 보니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슬기로움에 연신 감탄사만 나왔다.


아침까지만 해도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이제는 점점 굵어져 장대비로 변해 있었다. 가을비 치고는 제법 내리는 강수량이다. 처마 밑에 쌓아놓은 장독대 위에는 어느새 빗물이 고여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접시웅덩이는 퐁, 퐁, 퐁 소리를 내며 가녀린 파문을 일으킨다.

수많은 파문들이 나타났다 없어지고 없어졌다 다시 나타나는 모습이 흡사 우리의 옹기문화를 보는 듯하다. 한때 옹기는 무겁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그릇들에 밀려 그 명맥마저 위태로웠으나, 지금은 옹기의 우수성이 널리 입증되면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으니 말이다. 옹기는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까지 수출되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알리고 있다니 새삼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동안 우리는 어리석게도 편리함에만 취해 옹기의 장점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옹기장님의 설명을 듣는 사이 가을비는 어느새 말끔하게 그쳐 햇살까지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안내인을 따라 본격적인 옹기마을 탐사에 나섰다. 일행은 우선 옹기를 빗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면서 안내인은 관광객들에게 옹기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옹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대질(흙)을 채취하는 일입니다. 이 흙을 물과 잘 섞어 각종 잡티를 제거한 뒤 물에 가라앉혀 옹기의 원료로 씁니다.”

일행이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젊은 옹기장이 한 분이 잘 이긴 흙을 틀에 막 올려놓고 있었다. 일행은 옹기 만드는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장인은 발로는 물레를 돌리고 일변 손으로는 조마귀를 이용해 옹기를 늘리고 부채마치로는 맞두드리며 멋지게 중옹 한 기를 완성해 갔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가 생각났다. 평생을 옹기장이로 살던 노인은 젊은 아내가 갓 들어온 조수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자 치솟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독을 지을 때도 이따금씩 젊은 조수와 뒤엉켜 있는 아내가 생각나 그만 독을 짓이기고 만다. 그러다 자기가 지은 독과 젊은 조수가 지은 독을 나란히 같은 가마에서 굽는데 자기가 지은 독만이 터지는 것을 보고 끝내 가마 속으로 들어가 타죽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잠시 고교시절을 회상하는 동안 옹기장이는 어느새 완성한 독을 말리기 위해 건조장으로 옮기고 있었다. 옹기를 말릴 때는 햇볕이 쨍쨍한 날보다는 오히려 오늘처럼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줘야 최상이란다. 갑자기 해가 쨍쨍 내리쬐면 독들이 이내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옛말에 옹기를 말리는 일을 ‘바람쐬기’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옹기를 말리는 일과 우리 인생살이는 참 많이 닮았다. 옹기가 맑은 날보다는 흐리고 바람이 불어야 단단하게 마르듯, 우리 인생살이 역시 날선 바람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야 강해지니 말이다. 옹기를 말리는 장면을 보며 우리 인생에도 가끔은 시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시련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빛내줄 것이니 말이다.

다음 행선지인 가마터로 가기위해 일행은 도로에 나섰다. 그때 흰 양산을 받쳐 든 아리따운 여인이 옹기로 만든 마을의 전통담장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한 곳에 초점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정적이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거의 첫사랑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옛 애인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반추하고 있을까.


나는 그런 상상들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가마터로 향했다. 가마터로 가는 거리에는 길가에 말린 붉은 고추와 가을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옹기들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전국 대부분의 가마들은 편리한 현대식 가스가마나 전기가마를 사용하는데 이곳 외고산리 옹기마을은 아직도 전통 가마를 그대로 사용하는 집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 가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질이라고 한다. 결국 이 불질이 독을 쓰게도 못 쓰게도 만드는 것이다. 또 지은 독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세게 때야 할 때와 약하게 때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세게 때도 또는 지나치게 약하게 때도 독은 이내 터져버린다니 새삼 불질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짐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슬슬 때다가 점점 세게 때기 시작하여 서너 시간이 지나면 하얗던 독들이 흑색으로 변한다. 거기서 또 너댓 시간이 지나면 독들은 처음의 하얗던 대로 되고, 다음엔 적색으로 됐다가 이번에는 아주 새빨갛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쇠가 불에 녹았다가 다시 굳어가는 과정과도 흡사하므로 절대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불때기에 사활이 걸린 셈이다.


도대체 이 작은 항아리 하나를 생산하는데 몇 백번의 사람 손길이 가는지 정말 경이로운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항아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이런 복잡다단한 과정과 노심초사를 거친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나도 이곳에 오기까지는 문외한이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나는 우아하게 완성된 항아리만 좋아했지 그 항아리가 어떠한 과정과 노력 속에서 탄생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갑자기 옹기장이님께 경외감마저 들었다.

가마터를 구경한 뒤 한 떼의 일행들에 섞여 옹기판매점에 들렀다. 평소 항아리화분을 간절히 사고 싶었어도 내가 사는 서산은 항아리를 생산하는 곳이 드물어 구하지 못했던 차에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수많은 항아리들 중 내 맘에 쏙 드는 멋진 항아리화분 하나를 샀다. 지금쯤 베란다 플라스틱화분에서 힘겹게 자라고 있을 우리 예쁜 아기 염좌를 옮겨 심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바람이 절로 난다. 문득 옹기와 아기 염좌처럼 서로가 잘 어울리는 사물이 만났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우리 민족과 옹기와의 관계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저물고 또 그냥 떠나기가 너무나 아쉬워 외고산리 옹기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옹기만들기 체험학습을 실시해도 상당히 좋은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력을 조절하기 위해 며칠씩 가마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노력하는 옹기장이.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많은 땀방울로 빚어내는 전통옹기. 섬세한 손길로 옹기 하나하나에 개성과 영혼을 불어넣은 집념들.

아,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로서 옹기장이의 그런 투철한 장인 정신을 본받아 우리 학생들 하나하나를 명품 옹기로 빚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외고산리 옹기마을을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ㅇ 울산공항에서 (23km, 95분 소요)
- 울산공항(452) → 월마트(225, 507 환승) → 고산마을 버스정류장(하차)
- 울산공항(452) → 성남동(715 환승) → 고산마을 버스정류장(하차)
- 울산공항(122, 432, 412, 722, 402) → 병영사거리(225 환승) → 고산마을 버스정류장(하차)
ㅇ 태화강역에서 (17km, 56분 소요)
- 태화강역(517) → 고산마을 버스정류장(하차)
ㅇ 시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6km, 60분 소요)
- 시외고속버스터미널(507, 715, 1705) → 고산마을 버스정류장(하차)

렌터카/자가용
ㅇ 울산공항에서 (21km, 31분 소요)
- 울산공항 → 산업로 → 태화강역 삼거리 → 여천 오거리 → 외고산 삼거리 → 외고산 옹기마을
ㅇ 무거로터리에서 (17km, 24분 소요)
- 무거로터리 → 옥현 사거리 → 남부순환로 → 감나무진 삼거리 → 두왕사거리 → 국도14호선 → 외고산 삼거리 → 외고산 옹기마을

김동수 교사/수필가/여행작가/시민기자/EBS Q&A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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