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른 날보다 바쁜 아침이다. 우리 반 6학년 국어 시간에 면담의 대상이 되어줘야 하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 복장에 신경이 쓰였다. 장래에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하여 면담 계획을 세워 질문지를 작성하고 기록, 편집, 발표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나누어 면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장래의 직업으로 선생님을 원하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담임이 취재의 대상이니 나도 긴장해서 답변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선생님이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곳은 아이들이 있는 교실이라는 나름의 지론에도 불구하고 분교장에 온 이후로 차츰 편한 복장에 길들여진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 곁에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복장을 좋아하다 보니 바지 차림이 출근복이 된지 오래다.
어쩌다 치마를 입고 출근하면, "선생님, 오늘은 출장가세요? 아니면, 학교에 손님이 오시나요?" 라고 묻곤 한다. 그 때마다 반성을 하며 초임 시절을 되돌아보곤 한다. 아이들 앞에서 긴장된 모습을 보이며 몸과 마음이 더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했던 처녀 시절의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밝은 색, 아기자기한 복장을 보면 참 좋아하곤 한다. 3학년을 가르칠 때는 살색 스타킹을 신고 출근하면 개구쟁이 남학생들이 달려와 다리를 만져보기도 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챙길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선물을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서는 6명을 3개 모둠으로 나누어서 경쟁을 시키고 있다. 한 달 동안 여러 분야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보인 모둠에게는 고전이나 명작을 사서 주고 가장 부진한 모둠에게는 화장실 대청소를 시키며 마음 청소를 하게 한다. 학생 수가 적다고 선의의 경쟁조차 시키지 않으면 발전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 더 착한 행동, 작은 배려, 아름다운 행동을 유도하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체벌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름처럼, 아이들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끄는 것은 꾸지람보다는 칭찬이 더 효과적이었다. 야단치는 데는 칭찬보다 더 많은 주의와 조심성이 요구된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 충분한 인간관계의 친밀감이 유지된 상태가 아니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감정이 실리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뼈아픈 충고를 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꾸지람을 해야 될 상황까지 기피하는 건 참으로 위험한 일이지만.
형진이에게는, 나폴레옹과 괴테도 감동했다던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위인들처럼 웅대한 희망과 불굴의 용기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글을 잘 쓰는 다운이에게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닌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의 세계를 거닐게 하고 싶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에 바쁘다.
일기를 더 많이, 내용도 다양하게 쓰며 점심 식사도 깨 한 톨 남기지 않고 잘 먹는다. 발표도 더 많이, 아침 독서 시간도 남보다 더 일찍 더 열심히, 형성평가도 만점을 향해 수업 시간에 귀를 기울인다.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규칙을 지키고 후배들에게 본을 보이는 작은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
그리하여 나와 우리 아이들의 삶이 《마음을 다스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나오는 바바 하리다스의 말처럼 되기를 소망한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기 위하여!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행동을 다스릴 수 있다.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진실하고 영원한 깨달음의 빛으로 들어간다.`
<2003년 10월 20일 구례토지초등학교연곡분교장에서 쓴 교단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