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 안중근 의사 기념일로 바꾸자” 는 여론이 인터넷, SNS 상에서 확산되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여론 형성이다. 내용인즉, 2월14일은 연인들에 특별한 날로 특정 상인들, 특정 제품의 거품 상술로 변질이 되었는데 이것에 이용 당하지 말고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과 같으므로 순국선열을 기리자는 것이다.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1879∼1910)
안중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한 분이다. 바로 우리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다. 우리의 독립을 위해 동양평화를 위해서다. 또 떠오르는 것은 하얼빈 역에서 거사에 성공하고도 당당하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는 사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기에 도망갈 필요가 없었던 것.또 거사에 대한 결연한 의지 표시로 넷째 손가락 하나를 자른 것. 그의 사진이나 손바닥을 찍은 것을 보면 넷째 손가락이 새끼손가락과 길이가 같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배울 때 안 의사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대어보며 그의 애국심을 생각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또 한가지는 그의 어록.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필자는 교육자로서 보훈교육연구원에서 2005년 초·중등 교감을 대상으로 한 민족정기 선양 직무연수를, 2010년 교장 때에는 나라사랑 선양 직무연수를 받았다. 현장 탐방으로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둘러보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안 의사가 갇혔던 여순 감옥과 사형을 선고받은 여순 지방법원도 방문하였다.
저격사건의 현장인 하얼빈 역도 찾았으나 그 당시 중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플랫홈에 입장할 수 없었다. 지난 1월 중국에서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설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 중국도 이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를 보고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듯 싶다.
안중근 의사! 그의 연보를 살펴본다.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과 조마리아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 1894년(16세) 김아래와 결혼, 1897년(19세) 천주교에 입교 1906년(28세) 돈의학교와 삼흥학교 운영 1908년(30세) 국외 의병부대인 대한의군 조직, 참모중장 맡음 1909년(31세) 3알 단지동맹으로 동의 단지회 조직.
1909년(31세)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침략이 운흉이며 동양평화를 파괴한 이등방문(이토오 히로부미)을 사살 응징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한 후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다. 10월 30일 일본 검찰관의 심문에서 이토오 히로부니의 죄악상을 15개 항목으로 열거하다. 11월 3일 여순감옥에 수감되다. 1910년(32세) 여순 관동도둑부 지방법원 공관에서 사형이 선고되다.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다. 미완성의 '동양평화론' 남기다.
얼마 전 수원교육지원청에서는 유·초·중·특·교장과 행정실장을 대상으로 한 '나라사랑 독도교육 역사 바로 알기' 연수가 있었다.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도 모자라 왜곡한 역사를 교과서에 사실인 양 기록하고 있다. 독도가 일본 땅인데 한국이 불법지배하고 있다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트위터 상에 나타난 “지금부터라도 2월 14일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는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 아닌 안중근 의사를 기리자”고 말하는 등 이 같은 종류의 의견이 하루동안만 1천건을 넘어섰다는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경기도교육청도 때맞추어 홈페이지에 ‘2월14일 밸런타인데이….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서른 살 청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 받은 날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생각한다면 그의 탄생일 9월 2일, 사형선고를 받은 날 2월 14일, 여순감옥에서 순국일 3월 26일 정도는 기억하면서 그의 구국정신을 기리어 보았으면 한다. 나라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에서도 올바른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