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생일,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이다

2016.03.08 11:57:00

결혼한 지 몇 십 년 된 부부도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있을까? 아내를 만난 지 올해로 26년째다. 부부 맞벌이라 시간을 핑계대고 서로가 서로를 챙겨 주지 못한다.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아내는 남편을 챙겨주지만 남편은 아내로부터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고 있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이었다. 어떻게 지냈을까? 그 전에 있었던 남편의 생일, 아내는 어떻게 챙겨주었을까? 아침 식사는 따끈한 미역국에 몇 가지 반찬이 더 차려졌다. 그 전날에는 아들이 케이크를 사 가지고 와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아내의 생일과 내 생일은 약 한 달 간격이다. 내 생일이 먼저고 그 다음이 아내 생일이다. 지금까지 아내는 내 생일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미리 미역과 쇠고기 안심 부위를 준비하여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자식들은 용돈을 아껴서 케이크를 준비한다. 그것이 고마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내의 생일을 어떻게 챙기고 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 생일을 앞두고 카드사에서 전화가 온다. 그들의 판매 전략인데 남편의 심성을 자극하여 상품을 파는 것이다. 아마도 몇 차례 주문하여 머플러 등을 선물했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나의 마음을 전달한다.

아내의 자기 생일 챙기게 하기 전략을 살펴본다. 냉장고 위 달력에 조그맣게 ‘내 생일’이라고 표시를 해 둔다. 약 일주일 전부터 남편에게 묻는다. “내 생일 아침, 당신이 미역국 끓여 줄 거지?” 거부할 수가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내가 아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준 적은 없다.

퇴직 후 시간 여유가 있다. 아내의 생일 전날, 내가 마트에서 장을 보아야 하는데 미동도 없자 냉동실에 보관한 미역을 꺼내 식탁 위에 놓는다. ‘이래도 미역국 안 끓여 줄 거야!‘ 하는 무언의 압력이다. 그래도 ’나 몰라라‘하면 남편도 아니다. 행동에 옮겨야 하는 순간이다.

아내의 생일 전날, 아들과 딸 그리고 막내처제, 조카들이 잠시 우리 집에 모였다. 케이크 촛불을 불을 붙이고 축하 노래도 합창했다. 딸은 그 장면을 동영상에 담는다. 장모님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는 처남, 처형, 조카 등 형제자매가 모여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아내는 답례로 점심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생일 아침, 6시 경에 기상했다.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친다. 전날 물에 불려 둔 미역을 끓인다. 마늘을 절구에 빻아 적당량을 넣는다. 간은 간장으로 맞추었다. 고기를 삶아 국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맛을 보니 맹탕이다. 밋밋한 미역맛이다. 국물 색깔은 간장색이다. 아내가 늘 끓여주던 그런 미역국이 아니다.

아내는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미역국은 건더기만 건져 먹었다. 나는 국물까지 다 먹었다. 내가 끓인 미역국은 맛이 없어도 소중하다. 아들은 미역국 냄새를 맡더니 건더기만 남긴다. 이게 나의 요리 실력이다. 한마디로 실패작이다. 어머니나 아내가 요리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아만 왔지 실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아내 생일을 계기로 다짐을 해 본다. 이왕 미역국 끓이는 것, 요리 레시피를 보고 제대로, 맛있게 끓이자. 그러려면 최소한 하루 전에는 미역국물을 준비해야 한다. 해산물로 하던 쇠고기로 하던 국물 만들기를 하자. 아내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딸과 아들 생일에 연습 삼아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아내의 3백만 원짜리 명품 핸드백 제안은 정중히 사절했다. “실속 없는 여자들이 값비싼 물건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돈이면 공직생활 40년 퇴직자 한 달 보수인데 아직 보수는 받지도 않았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불만족으로 내년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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