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사는 길로 초대받은 교사

2006.04.01 09:00:00

보통 교육에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문제아를 위해 끝까지 희생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교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린 온 미> 속 주인공인 조 클락은 다르다. '미친 조'란 별명답게 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극단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으로 학교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폐쇄 직전의 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그의 행동은 결국 진실한 마음은 통한다는 평범하고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문화평론가


무례한 애정으로 변화 이끈 클락
영화 는 영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거칠고 과격한 어느 교사의 이야기이다. 미국 뉴저지 페터슨에 위치한 이스트 고교 교사인 '조 클락'은 학생은 물론 교사들 사이에 별명이 '미친 조'로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광기에 대한 성급한 상상은 금물이다. 클락의 '미침'은 오직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내·외적인 억압과 압력들과의 몸을 사리지 않는 저항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안위보다 학생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클락은 결국 노조의 미움을 받아 초등학교로 좌천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다. 지나간 시간 속에 이스트 고교는 지역의 몰락과 더불어 쇠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고, 이제 학생들의 만연된 폭력과 마약거래, 무분별한 섹스로 황폐화된 학교는 교육 당국에 의해 폐쇄가 논의되는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교육위원회는 최후의 수단으로 '미친 조' 클락을 교장으로 임명한다.

폐해로 변해버린 학교로 돌아온 클락의 처방은 그의 별명처럼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워 보인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모든 학생들을 강당에 모이게 하고 각 반의 심각한 문제아들을 무대 위에 오르게 한 후 이들을 퇴학 조치한 것이다. 대개의 교육에 관련된 영화 속에서 교사들이 어떻게든 문제 학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클락의 극단적인 '격리' 조치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의 돌출 행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클락은 늘 확성기를 손에 들고 규칙을 위반하는 학생들은 물론 무사안일에 빠진 동료 교사들에게 독설과 엄격한 시정명령을 발한다. 심지어 교가를 우습게 여기고 다만 자신의 예술세계에 빠져 모차르트의 음악만을 고집하는 음악교사의 수업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언쟁을 벌이다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하는가 하면, 사소한 지시를 어기고 자신에게 대든 교사에게는 정직처분을 내린다. 또한 퇴학당한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 출입구로 드나들며 말썽을 일으키자 정문을 제외한 모든 문에 쇠사슬을 묶도록 명령하고 보안요원들을 배치한다.

외견상 클락의 이 모든 결정은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무례하고 독선적인 모습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의 전제가 되는 클락의 '분노'는 오직 방치된 채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자기중심적인 무분별한 성냄과는 궤를 달리한다. 거리의 폭력과 마약에 깊이 빠진 300여 학생들이 나머지 2700여 명의 학생들마저 같은 길로 빠지게 하고 있는 그악스런 학교의 현실은 생사를 가르는 극약처방 없이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클락은 '격리'를 남발하는 교사가 아니었다. 이후 남은 학생들 가운데 문제를 야기하는 아이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은 앞서의 결정이 최후의 선택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시에 교사들에 대한 거친 행동은 아이들을 이 지경이 될 정도로 무책임하게 방치한 채, 그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뿐인 무기력한 동료 교사들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분노로 인한 것이었고, 예의 강한 도전과 지시는 그런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들을 새롭게 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클락은 예의바르고 평화로운 무관심으로 가득 찬 세상보다는 무례해 보일지 몰라도 상대방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가득 찬 삶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되는 순수한 감성의 아이들
겉으로는 거칠고 엄격하지만 그 따뜻한 이면의 사랑을 먼저 감지한 것은 동료 교사들보다는 감각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이었다. 청소년기의 민감성은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이에 반항적인 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진실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게 하는 예민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학교 안팎의 일상에서 그저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은 클락 선생의 끊임없는 참견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버려진 자신들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지도에 점차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신뢰의 근저에는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동정이 아니라,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고 마는 클락의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삶의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점차 정상화 되어 가는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클락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떻게든 물의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정치가, 행정가들은 골치 덩어리인 그를 제거하려 하고, 클락은 문에 쇠사슬을 걸었다는 이유로 소방법에 의해 구속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이제 학교는 다시 참담했던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고, 이를 결정하기 위한 교육 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깊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클락과 학교를 구원한 손길은 뜻밖에도 학생들이었다. 회의장 밖 광장은 자발적으로 모인 이스트 고교 학생들로 가득 차고, 아이들은 클락의 조치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기에 속히 교장 선생님을 석방해 달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한 때 학업은 고사하고 거의 인생을 포기한 채 습관처럼 학교에 나가 사고를 치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도왔던 클락 선생을 돌려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방법이 아닌 진실로 통해
모두가 포기했던 학교와 아이들을 이처럼 변화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헌신'이다. 이제는 다소 생경한 단어가 되어버린 듯한 말 '헌신'을 달리 말하면 곧 어떤 일이나 대상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가 끝이 난 후에도 여전히 클락의 행동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 하나는 그가 아이들을 위해 완전히 미쳐 있다는 것, '헌신'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교육은 엄격하거나 부드러운, 이러저러한 방법론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실화를 토대로 한 조 클락이 보여주는 것은 그 방법이 어떠하든 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품고 있는 진득한 사랑의 마음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기만 한다면, 결국 진심은 통하고 만다는 생의 진리, 그 한 편린이다. '우리 인생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지만, 우리는 똑똑하니까 내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약해질 땐 내게 기대요. 내가 친구가 되어 도와줄게요. 나도 곧 누군가가 필요할 거예요. 도움이 필요할 땐 나를 불러요. 우린 모두 기댈 사람이 필요해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가인 'Lean on Me'와 함께 졸업모를 쓴 채 환히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빛나는 영화 <린 온 미>이다.

* 영화정보
제목 : 고독한 스승 (Lean on me)
감독 : 존 아빌드슨
배우 : 모건 프리먼 / 비벌리 토드 / 로버트 길롬
제작년도 : 1995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DVD, VIDEO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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