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씨앗, 말의 씨앗

2007.05.01 09:00:00

이제 이 나이가 되니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의 뜻을 어렴풋 알 것 같다. 어린 사람들은 인생의 경륜이 풍부한 어른의 말을 경청하면 삶의 지혜와 이로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의 참뜻일 것이다. 자식을 기르면서 새삼 이 말의 뜻을 절감할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길을 막무가내로 가려는 아이들을 간곡히 계도해야 하는, 선생의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도 이 말은 일종의 묵시록처럼 마음에 자리 잡는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듣던 말들이 그때는 그저 평범하고 무덤덤했는데,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볼수록, ‘참으로 신통방통 맞는 말씀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예닐곱 살 되던 무렵, 할머니께서는 무언가 칭얼대는 나를 달래시며,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말로 철부지 나를 달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럼 이제 자면 떡 줘야 돼” 이렇게 억지를 부렸던 생각이 난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는 이 말의 뜻을 어렴풋 알 것 같다. 어린 사람들은 인생의 경륜이 풍부한 어른의 말을 경청하면 삶의 지혜와 이로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의 참뜻일 것이다. 자식을 기르면서 새삼 이 말의 뜻을 절감할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길을 막무가내로 가려는 아이들을 간곡히 계도해야 하는, 선생의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도 이 말은 일종의 묵시록처럼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런데 이 말보다도 훨씬 더 울림이 크게, 훨씬 더 강하게, 훨씬 더 깊이 각인되어 온 말이 있다. 그것은 ‘말이 씨 된다.’라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분별없이 촐싹거리면서 덕스럽지 못한 말을 하면, 어른들은 점잖게 나무라는 어조로 “말이 씨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주의를 주셨다.
함부로 방정맞은 말을 하다가 ‘말이 씨가 되느니라’하고 주의를 받으면 왠지 무서움 같은 것이 스스로 들었다. “네가 말한 대로 되리라” 하는 소리가 하늘 저 높은 곳 어디에서 들려 올 것 같았다. ‘말이 씨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주술적인 힘이 작동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말이 씨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말도 씨앗과 같다는 것이다. 한번 뱉어 놓은 말은, 마치 밭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처럼, 싹이 트고 자라서 줄기가 벋고 잎이 달리고 꽃이 핀다는 것이다. 말이란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원을 비는 주문(呪文)이나 진언(眞言)은 한결같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야말로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그 말의 씨앗을 심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굿판이나 의식에서 무당이나 제관이 무어라 주문을 외는 것을 본다. 나는 그 주문의 말이 그냥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의 씨앗을 촘촘히 그리고 아주 꼭꼭 심는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된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이 주문이나 진언의 내적 구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씨앗이란 무엇인가. 식물을 그 종자의 특성대로 그대로 싹 틔워 자라게 하는 원천이지 않은가. 사과나무의 씨앗은 사과나무를 싹 틔워서 자라게 하고, 배추 씨앗은 배추를 자라게 한다. 말의 씨앗 또한 마찬가지이다. 좋은 말은 좋은 일을 생기게 하고, 나쁜 말은 나쁜 일을 생기게 한다. 생각 없이 불쑥 부덕(不德)한 나쁜 말을 뱉어 놓고는 “아이고! 요놈의 입이 방정이다” 하고 제가 제 입을 쥐어박는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지 않던가.
그래서 말은 그냥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인간적 면모를 여실히 반영한다. 말을 꺼내는 순간 그가 지닌 도덕과 세계관과 윤리가 싹을 틔운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존재론적 가치와 정체성은 누군가를 향하여 벋어 나간다. 기능(skill)만을 강조하는 국어교육에 ‘말은 씨앗이다’는 인식론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언어관 속에는 참으로 훌륭한 삶의 지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다분히 금기의 영역에서 강조하여 왔던 것 같다. 경솔하게 말하지 말라. 너무 앞서서 예단하지 말라. 함부로 남을 험담하지 말라. 부정한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 이처럼 금기의 항목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하면서,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쪽으로 언어문화를 이끌어 온 면이 강했다. 나쁜 말에서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쪽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강화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말은 좋은 일을 이루어지게 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부정적 강화와 자기 절제의 미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발산하여 어떤 강화를 하게 되는 것은 말과 삶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좋은 말로 씨를 뿌리자. 모든 이루어지는 꿈에는 그 꿈을 말소리로 내어 본 최초의 말이 있었으므로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의 씨가 먼저 뿌려졌으므로 마침내 꿈의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꿈이 소중하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것이 소중하기 위해서는 강한 현실의 뿌리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꿈꾸기 위해서 꿈꾸는 것은 일종의 자기 속임수인지도 모른다. 꽃으로 치면 조화(造花)이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고 현실을 꿈 쪽으로 추동해 나가는 것이 생화(生花)와 같은 꿈이다. 혹자는 꿈이란 가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루어지 않을 것을 너무도 번연히 알고 있는 꿈은 그야말로 하룻밤 꿈처럼 허망하다. 이런 꿈은 현실의 어려움을 피해가려는 사람이 그저 나약하게 도피하는 관념의 동굴일 뿐이다. 일종의 진통제에 불과한 것이다. 꿈이란 이루어진다는 역동적 기대와 현실적 의지를 바탕으로 할 때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 꿈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실천’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의 씨앗’, 즉 ‘씨가 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향하여 부단히 던지고 있는 말이 꿈을 이루게 한다. 스스로의 다짐을 불변의 실천으로 굳히기 위하여, 그것을 다시 남에게 약속으로 묶어 두게 하는 말이 꿈을 이루게 한다.
말 가운데는 글로 쓰는 말이 때로는 큰 힘을 발휘한다. 존 맥스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중 약 95%의 사람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글로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글로 기록한 적이 있는 5%의 사람들 중 95%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맥스웰의 말에 사족(蛇足)을 덧붙여 본다.
“나의 꿈이 멀어질 때, 내가 나를 돕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꿈이 흐려질 때일수록 글을 써 보십시오. 그렇게 쓴 글은 서랍 속에 감추어 두지 마십시오. 어디엔가 내어 놓고 발표하여 소통시켜 보십시오. 그러면 이상한 마력이 생겨납니다. 마치 그 어떤 신령한 존재가 나에게 영험 있는 마술을 걸듯이, 내가 나에게 마술을 걸게 되는 효과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것이 말의 힘, 글쓰기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힘이 모여서 꿈을 이루게 합니다.”| 경인교대 교수
말이 씨가 된다는 언어관 속에는 참으로 훌륭한 삶의 지혜가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경솔하게 말하지 말며, 부정한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는 등 금기의 항목들이 많다. 즉, 말이 씨가 된다고 하면서,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쪽으로 언어문화를 이끌어 온 면이 강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강화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말은 좋은 일을 이루어지게 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좋은 말로 씨를 뿌려 마침내 꿈의 꽃이 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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