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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따끔하게 지적하거나 야단치면 그걸로 끝이지, 뒤에 그걸 다시 꺼내서 계속 뒷말을 일삼지 않는 것을 두고 ‘뒤끝이 없다’고 한다. 또 그런 사람을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상대의 과오를 심심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서 재탕, 삼탕 해가며 무어라 장황하게 떠벌리는 사람은 분명 주책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뒤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뒤끝이 없는 상사를 한번 코끝 찡하게 느끼고 보면 감동과 존경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된다. 처음 야단치실 때는 너무 야속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뒤끝이 없으신 분이어서 내가 오해한 것이 송구스러웠다. 이쯤 되는 고백을 부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다. 드물지만 아주 없지는 않는 일이다. 그런 존경을 얻기까지는 자신에 대한 (성질 못됐다는)오해를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뒤끝이 없다는 것을 상대가 제대로 이해해 주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아마도 성질 급한 사람은 자신의 뒤끝 없음을 상대가 쉽사리 이해해 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조급함으로, 다시 한 번 따끔한 직격탄을 날릴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자로서는 응당 뒤끝이 없어야 한다. 잘못을 범한 학생을 한번 꾸짖은 후, 그 학생을 볼 때마다 이전 잘못을 또 끄집어내어 이야기한다면 훈육은커녕 반발심만 불러 올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부부들이 질색을 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이 한번 지나간 잘못을 새롭게 끄집어내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뒤끝이 없다는 것은 요즘 말로 한다면 ‘쿨(cool)하다’는 것에 속할 수 있겠다. 그런데 쿨한 척하기는 쉬워도, 진짜로 쿨하기는 어렵다. 뒤끝이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어려움과 모순을 가진다. 뒤끝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뒤끝이 없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의 성향을 밝힌다. 자기는 잘못된 것을 보고는 속에 담아 두고 견디지 못하는 정의파라는 점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으로 자기는 직설적으로 화끈하게 말하지만 그걸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즉, 자신은 기분이나 감정에 이끌려서, 누굴 두고두고 미워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구질구질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질구질하게 감정을 연장시키고, 그 자리에서는 말 못하고 뒤에 다른 자리에서 뒷말이 많은 사람들과는 자신은 부류가 다른 사람임을 강조한다.
뒤끝 없는 사람!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뒤끝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말 그대로 온전하게 뒤끝 없는 사람은 아마도 사전에나 있을 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는 원래 뒤끝 없는 사람이야!’를 무슨 선전 문구처럼 남발한다. 그것도 항상 자기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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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있다. 그는 여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자기 다스림이 모자란 탓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법을 물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무시하는 겁니다. 내 기분에 마땅치 않은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후련하게 내뱉어 버리는 겁니다. 왜 억압된 심리상태로 삽니까? 내가 용납 못하는 것은 한번 따끔하게 쏘아 붙이면 후련합니다, 그뿐입니다. 나 원래 뒤끝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남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자신과 똑같은 사람과 만나서 함께 살거나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 매일 울화통 터지는 싸움으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폭발 직전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뒤끝 없다는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자신의 뒤끝 없는 성격을 주변의 사람들이 상당히 좋아하고 있을 것이란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좋아하기는커녕 경계심과 긴장감을 숨겨가며 그를 대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뒤끝 없다는 전제 아래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비판의 직격탄에 맞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다. 되도록이면 뒤끝 없다는 사람을 피해가려고도 하는 이도 있다. 그 뒤끝 없다는 사람이, 뒤끝이 없다는 전제를 두고, 마음 놓고 퍼붓는 날카로운 심판의 언어에 깊은 상처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말을 꺼낼 때, 굳이 ‘나는 뒤끝이 없다’는 전제를 다는 것은 무슨 심리를 드러내는 것일까. 거기에는 ‘나는 정당한 심판자이다’는 의식이 투사되어 있다. 또 나는 감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논리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최면이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적이나 추궁은 내용으로나 심리적 맥락으로나 잘못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상황에 따라 정당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논리로 포장하거나 문제의 총체적 인식을 놓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대화적 관계와 분위기를 구성하는 데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식의 밑바탕에는 ‘나는 언제나 정당한 심판자’라는 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의식을 ‘I am big’의식, 또는 ‘I am god’의식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취약하고, 인간 존재가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모르는 동안에 빠질 수 있는 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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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언어생활 속에서 뒤끝이 없다는 선언은 훨씬 더 고약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원래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이렇게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자기가 상대방을 얼마나 따끔하게 혼내 주었는지를 무슨 무용담(武勇談)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든 무용담의 기저 심리는 자랑하고 싶은 심리이다. 속물근성의 전형이다. 누구를 따끔하게 혼내 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다시 꺼내는 것 자체가, 이미 구질구질하게 뒷이야기로 즐기고 있음을, 즉 뒤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혼이 났던 당사자가 없는 자리이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자기가 따끔하고 매몰차게 야단쳐서 상처를 준 사람을, 다시 제3자에게 공공연하게 소문내어 알려 그 과오를 광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차라리 상대를 그 자리에 두고 다시 그 과오를 거론하는 것이 덜 비겁하다. 뒤끝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누군가의 잘못을 따끔하게 혼내었던 일을 다시 제3자에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거든 물색없이 맞장구치지 말 일이다. 아울러 그 뒤끝 없다는 말에 대한 믿음도 거두어들일 일이다.
뒤끝 없다는 사람들은 달리 공박을 받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이 그와 굳이 부딪치기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왕왕 뒤끝 없는 자신의 행태가 옳기만 한 것으로 알 수도 있다. 반면 상대의 과오를 심심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서, 무어라 뒤끝을 장황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은 대체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같은 이야기를 자꾸 자꾸 거론하는 동안에 무언가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란 것이 그렇다. 불필요한 말을 반복하다보면 헛갈린 기억을 혼동해서 말하거나, 분위기 따라서 과장되거나, 내 의도 따라서 왜곡되거나 하는 것이 말이다. 수사관들이 용의자를 심문할 때, 한 가지 일에 대해서 계속 반복 진술하도록 하는 것은, 무언가 일치되지 않은 진술을 찾아냄으로써 범행의 단서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을 혼내어 주었던 일을 시시때때로 거론하며 여기저기 입에 올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해서 오히려 당사자로부터 역공을 당하게 된다. 과오의 사실 자체가 왜곡되거나 과장되었을 때는 영락없는 거짓말쟁이로 되몰리게 되고, 중상모략의 악인으로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래서 뒤끝을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상 사과와 변명을 입에 달고 다닌다. 달리 주책이 아니라 그래서 주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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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이 없는 사람은 없다. 뒤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정말 뒤끝이 없는 사람은 뒤끝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진정 뒤끝이 없는 수준에 오른다면,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상 말 뒤끝을 오만 군데 펼쳐놓고 감당하지 못하여 사과와 변명을 입에 달고 다니는 주책없는 사람에게서 인간의 체취를 더 물씬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뒤끝이 없고 있고는 개인의 기질과 개성에도 연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뒤끝이 있든 없든, 내가 나를 얼마나 잘 아는지에 관련되는 수양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단점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한 사람, 어린애처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의 단점만 알고 있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반성감과 열등의식 속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주기는 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 편이다.
자신의 장점만 알고 있는 사람은 당당하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구분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경우가 바르고 빈틈이 없다.
자신의 장점이 곧 자신의 단점인 줄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뒤끝이 없음을 말로 앞세우는 사람들은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