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치명적인 부메랑

2008.12.01 09:00:00

말의 백태(百態)를 알면 사람의 백태를 아는 것이다. 인신공격은 말의 백태(百態) 중에 가장 질이 낮은 말이다. 인신공격을 하는 동안에는 가장 치열하게 말을 하고 가장 잘 공격한 것 같지만 그 피해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인신공격이 예외 없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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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논쟁사(論爭史)에 두고두고 뒷이야기를 남긴 것 중에 1963년도의 ‘사형제도 찬반’에 관한 논쟁이 있다. 당시 유력한 저널이었던 <동아춘추(東亞春秋)>를 통해서 찬성 반대 주장이 몇 번씩 오가면서, 지식인은 물론이고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논쟁이었다. 5·16 군사혁명 직후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에 대한 지성계의 암묵적 반발 정서가 일조를 한 탓일까. 논쟁은 상당한 활기를 띠었다. 이 논쟁 주제는 이후 논술시험의 과제로도 더러 출제되어 오늘의 우리에게는 상당히 진부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논쟁 주제 자체가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사형제도 찬성 주장을 편 사람이 천주교의 사제인 윤형중(尹亨重) 신부이고, 반대 주장을 편 사람이 현직 법관인 권순영(權純永) 판사였다는 점이다. 사회 일반의 통념으로 보면, 종교인인 신부는 사형제도의 존속을 반대할 것 같고, 법을 집행하는 법관은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할 것 같은데, 이 논쟁에서는 우리들의 통념에 반하여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두 분 논쟁 당사자들은 소신과 철학이 투철했다는 것을 엿보게도 한다. 논쟁은 윤 신부가 ‘처형대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흉악범에 대한 사형의 당위성을 <동아춘추> 1962년 12월호에 기고한 것에 대해서 권순영 판사가 반박의 글을 <동아춘추> 1963년 1월호에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이것을 다시 윤 신부가 반박하고, 그것을 다시 권 판사가 대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지성을 표상하는 존재였으므로 이 논쟁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았다. 이미 대한민국이 주시하는 논쟁이 되고 말았으므로 당사자들도 상대에게 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입가경의 경지가 펼쳐졌다. 반박을 당한 윤 신부가 권 판사를 재반박한다. 그는 매우 실감 나는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럴 법한 상황을 상정한다. 이래도 권 판사는 사형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셈이다. 그런데 그 상황 예시가 예사롭지 않다. 윤 신부가 쓴 글의 그 대목을 줄여서 인용해 본다.

권 판사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의 사형이 전폐되었다고 가정하자. 권 판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문제의 본모습이 더 잘 드러나고 더 실감 나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건을 상상해 본다.

권 판사의 아버지는 정의파에 속하는 양심적 인물이다. P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자는 불량한 인물이다. P는 남의 큰 재산을 가로채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권 판사 아버지의 협력이 필요하다. 여러 번 청해서 회유를 해 보지만 권 판사의 아버지는 끄떡도 않는다. P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면 권 판사 아버지의 협력이 있든지, 아니면 권 판사 아버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P는 권 판사 아버지를 죽여 버릴 결심을 하고 기회를 노린다. 독살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납치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P는 여러 차례 자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어느 무더운 여름 밤 일본도를 들고 담을 넘어 권 판사 아버지의 방에 들어섰다.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권 판사 아버지를 난자(亂刺)하여 죽여 버렸다.
P는 체포되어 무기형을 받아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무슨 고역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방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P는 돈을 많이 예치하여 놓고 날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청하여 먹는다. 그렇게 소일한다. P는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지도 않는다. 도리어 가끔 소리를 높여 말한다.
“내게 협력해 주지 않은 그놈(권 판사 아버지)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린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하하하, 나는 내 명대로 살 것이니 이것은 참 통쾌한 일이다. 나라에 경사라도 생기면 감형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출옥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말이 권 판사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교도소 옆을 지날 때 권 판사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 동아춘추 1963년 2월호 -

윤 신부의 상황 설정이 참으로 묘해서 권 판사의 반론 글이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권 판사가 <동아춘추> 편집장에게 보낸 글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참으로 심중했다. 권 판사가 보낸 글을 그대로 소개해 본다.

<편집장에게>
나는 윤 신부의 사형에 관한 글에 대하여 논평하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의 의견대립으로서의 논쟁이 본론(초점)을 떠나 인신공격으로 빠지는 예를 보아왔기 때문에 나와 윤 신부와의 논쟁도 또 그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하고 적이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불행하게도 적중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것은 공개토론 할 기회가 적었던 우리 민족의 비극입니다.
나는 윤 신부가 나의 소론(所論)을 반박한 글에 대해서 다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윤 신부의 저주를 받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을 자식으로서 다행하게 생각합니다.
- 1963년 2월 27일 권순영 -


2
위의 논쟁에서 누가 이긴 것으로 보아야 할까. 사람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승자를 판단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칼로 자르듯 ‘누구의 승리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가 이겼다고 보아야 할까? 상대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케 했으므로 윤 신부가 이긴 것으로 보아야 할까. 논쟁의 올바른 차원을 깨우치려 한 권 판사에게 승점을 더 주어야 할까? 그런데 이런 식의 질문이야말로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표현식으로 하면 그야말로 난센스(nonsense)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하나는, 논쟁의 판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합리적 주장을 펼치고 경청할 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씨름 경기에서 씨름판이 깨어졌는데 승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두 번째 사실, 즉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이기지 못했을뿐더러 두 사람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권 판사의 불편함은 쉽게 이해가 간다. 자신의 인격과 몸(인신)이 공격을 당했으니까. 그것도 육친의 아버지가 참혹하게 당하는 장면으로 끌려갔으니까. 윤 신부인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권 판사가 저렇게 속이 상했는데 희희낙락하는 마음이 될 수 없다.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이 논쟁에서는 이긴 사람이 없다. 논쟁을 지켜본 사람들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승자를 가리려고 한다. 아니 자신의 관점에 부합하는 사람을 승자로 만들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윤 신부의 글에나 권 판사의 글에 악성 댓글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갈 것이다. 논쟁이 게임의 논리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곳에 저급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그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인격이 바로 소영웅주의라 할 것이다. 포퓰리즘의 음습한 온상이 바로 우리들 안의 악마적 공격성에서 만들어진다. 포퓰리즘에 휩쓸리기 쉬움을 경계하는 지혜는 일찍부터 있어 왔다. 대중은 어리석다는 말도 있었다. 대중이 어리석다는 말을 압도하는 말로 일찍이 민심이 천심이라는 지혜로운 명제가 있음도 잘 알고 있지만, 그 민심이 악플을 통해야만 제대로 드러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3
부메랑(boomerang)이란 것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냥이나 전쟁을 할 때 쓰는 굽은 막대 모양의 무기를 일컫는 말이다. 부메랑을 던져서 짐승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나무에 쳐 놓은 그물에 새 떼를 몰아넣기 위해 매 대신 부메랑을 이용하기도 한다. 전쟁에서는 살상용 무기로 쓰이기도 하였다. 부메랑은 차차 발전하여 던진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이 생겨났다.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은 가벼우면서 얇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길이는 30~75㎝, 무게는 약 340g이다. 그래서 부메랑은 던진 사람에게로 되돌아오는 무기이다.

말의 백태(百態)를 알면 사람의 백태를 아는 것이다. 인신공격은 말의 백태(百態) 중에 가장 질이 낮은 말이다. 인신공격을 하는 동안에는 가장 치열하게 말을 하고 가장 잘 공격한 것 같지만 그 피해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모든 인신공격이 예외 없이 그러하다. 그것을 깨닫는 데도 세 부류의 심급이 있다.

첫째 부류는 그래도 교양과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한 못된 말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자기혐오에 휩싸인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마음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상처받는 것이다. 그다음 부류로는 인신공격으로 인해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망을 잃고 좋은 평판을 상실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자신의 인격에 실망하기보다는 주변의 인기를 잃었다는 데에 실망을 하는 부류들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부류는 인신공격 자체를 특기쯤으로 자랑스럽게 펼치고 다니다가 자기가 공격을 가한 상대로부터 열 배, 백 배의 통렬한 복수를 당하고 난 다음에 인신공격의 폐해를 아주 늦게야 깨닫는 사람이다. 물론 이렇게 평생을 살면서도 인신공격의 악마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자기가 던진 부메랑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쏜 독한 말의 부메랑이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리석기는 원주민들이 아니라, 문명시대 약삭빠른 말의 재주꾼들이다. 국정감사 장면에서도 인신공격의 말이 난무한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장면들이 속출한다. 저렇게 상처들을 양산해야만 국정이 감사되는가. 무릇 모든 상처들은 원혼처럼 떠다닌다. 그래서 부메랑이 되어 원래의 발신자에게로 돌아간다. 주술처럼 들리는가. 사실 주술의 본질이란 것이 자연의 섭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말의 부메랑이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치명적이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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