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동안 평균 194.3회…욕설의 저연령화 · 평준화
지난 9월 필자는 EBS와 함께 학생들의 언어문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현장조사를 기획했다. 우선 중 · 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 공부를 못하는 학생, 가정형편이 보통인 학생, 가정형편이 특별히 좋거나 나쁜 학생을 한 명씩 선정했다. 이들에게 보이스레코더를 장착하고 이들이 등교 이후 점심시간까지 말하고 듣는 모든 것을 녹음해서 그 말들 속에 욕설이 등장하는 맥락과 빈도를 분석해 보았다. 원래는 남녀 학생을 모두 조사하려 했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결국 남자 중학생 2명과 남자 고등학생 2명만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주요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다. 이 4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4시간 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욕설은 평균 194.3회가 등장했다. 시간당 48.3회, 대략 75초에 한 번씩 욕을 한 셈이었다. 이들이 그 사이에 싸움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와 농담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물론 중학생들이 고등학생보다는 욕설의 빈도가 적었고, 욕설의 강도도 약했다. 보통 학생보다는 욕을 많이 한다고 지목받은 학생은 욕설의 빈도가 40.5% 더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111회와 156회의 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십보 백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분석해보니, 초등학생들에서는 부모의 학력이 높으면 욕설을 하는 빈도가 낮았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오히려 반대였다. 대졸 부모를 둔 학생들이 고졸 부모를 둔 학생들보다 욕설을 더 많이 했다. 이런 결과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현재 청소년들에게 욕설은 언어생활의 필수요소로 스며 들어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언어문화 실태에서 가장 많이 부각되는 것이 욕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욕설을 많이 사용하는 시기이다. 60년대에 태어난 필자도 걸쭉한 욕설을 주고받던 중 ·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빈도나 심각성은 지금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요즘 학생들의 언어문제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욕설의 저연령화와 평준화때문이다. 예전에는 청소년의 연령과 계층에 따라서 생활영역이 서로 구분돼 있어 사용하는 어휘들이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정보가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이나 쓰는 험한 욕설을 초등학생들은 그 뜻도 모르고 쓰게 된다. 특정 지역에서만 쓰던 욕설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특정 집단에서만 통용되던 어휘가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확산된다. 그 결과 욕설이 평준화된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이나 쓰던 험한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욕설이 청소년들의 흥미 끌어
하지만 인터넷만을 탓할 수는 없다. 청소년 어휘에서 욕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간다는 것은 청소년 언어 생태계에서 기존의 표준어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어휘든 사용자인 청소년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밀려난다. 고로 청소년들이 정상적인 단어보다는 욕설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욕설이 주류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 원인은 공급과 수요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공급의 측면에서 보자면 청소년들의 어휘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새로운 단어들을 소개하는 쪽이 욕설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현재 청소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욕설들은 최근 2~3년 사이에 새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뭐든 새로운 것은 청소년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끌기 마련이다. 반면에 어른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표준어는 그 정의에 걸맞게 표준에서 벗어난 새로운 단어들을 공급하지 못한다. 물론 표준어도 꾸준히 진화한다. 단지 그 속도가 21세기 기준으로는 너무 느리다는 점이 문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증가한 정보량보다 앞으로 1년간 증가할 정보량이 훨씬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5년 전의 정보도 이미 낡은 정보가 된다.
어휘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보를 수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의 언어들은 정체되어 있는데 욕설들만 계속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다면 욕설이 언어의 유행을 선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달리 말해서 청소년 언어 생태계를 순화시키려면 욕설이 아니면서도 참신하고 매력적인 단어들을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떨어진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욕설과 친숙
그러나 단지 욕설이 새롭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욕설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수요를 만드는 것일까? 욕설은 존중하는 언어가 아니다. 비하하는 언어다.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욕설을 많이 교환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비하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런 비하의 언어가 자신들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65.98점으로 OECD 23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스페인의 113.6점보다 47점 정도가 낮고, OECD 평균보다도 34점이나 모자란 수치였다. 특히 아시아권인 일본과 중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도는 크게 낮았다. 어째서일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많은 학습시간과 지나치게 열악한 여가생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행복도가 낮은 이유가 단지 현재 삶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행복과 직결된 심리적 요인은 자존감이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며 앞으로 지금보다 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때,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지고 행복을 느낀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좌절하고 위축되고 힘든 삶에 맞설 용기도 잃어버린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도 낮아져 있다는 뜻이다. 현재 존중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희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욕설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들의 심리상태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현재 욕설은 청소년들끼리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서로를 위안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2010년 손봉희(계명대, 석사 논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욕설을 아주 적게 사용하는 집단과 아주 많이 사용하는 집단은 자아존중감이 낮고, 중간 정도로 사용하는 집단이 가장 자아존중감이 높았다. 욕설을 적게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또래들과 잘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나치게 욕설을 많이 사용하는 집단은 또래문화에서 통용되는 것 이상으로 욕설에 의존해야 할 만큼 자존감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들의 욕설금지는 변형된 욕설로 진화시킬 뿐
욕설의 또 다른 기능은 차별화이다. 욕설을 포함한 언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위치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식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로부터 어휘들을 배우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말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어휘들을 주로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알 수 있다. 교양 있는 언어를 써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좀 더 수준 높은 문화집단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기능이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청소년들의 욕설은 자기들이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혹은 자기가 조금은 나이 먹은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혹은 같은 또래끼리라도 좀 더 잘나가는 집단에 속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된다. 여학생들이 교복치마를 줄여 입고, 남학생들이 특정 브랜드의 점퍼를 고집하는 것이 특정 하위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처럼, 어떤 욕설을 하느냐가 그 청소년이 어떤 집단에 속하고, 어떤 집단에는 속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욕설을 금지하려 들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어른들이 뭔가를 못하게 하려 들수록 그것은 더욱 더 멋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참신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어른들의 금지 때문이다.
대개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어른들이 욕설이나 비속어를 입력 못하게 막아놓았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들을 발명하게 된다. ‘가슴’이라는 단어를 못쓰게 하니까 ‘슴가’로 쓰고, ‘병신’ 이라는 말을 못 쓰게 하니까 ‘ㅂㅅ’ 이라고 쓴다. 결국 어른들의 금지는 욕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 못할 방향으로 변형하고 진화하게 만들 뿐이다.
청소년들의 삶의 질 개선 없이는 욕설 안 줄어
물론 욕설 자체의 문제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단어에 많이 노출되는 상황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욕설은 청소년들의 인지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욕설은 의미를 전달하는 주제어가 아니다. 단지 전달하려는 뜻을 강조하거나 조금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기능, 다시 말해서 장식의 기능을 한다. 평범한 물건에도 적절한 장식을 덧붙임으로써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한 문장에도 욕설을 섞으면 뭔가 특별한 문장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청소년들이 욕설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문제는 그런 특별함은 너무 손쉽게 얻어지는 겉모양뿐인 특별함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표준어들과는 달리 욕설은 대개 범용적이다. 어떤 맥락이든, 어떤 단어에 덧붙이든 욕설은 무난하게 장식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자기가 전하려는 뜻에 가장 적합한 어휘와 문장구조를 고안하기 위해서 고심을 하는 동안 우리는 생각을 세련되게 다듬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런데 미숙한 어휘들로 구성된 거친 문장에다가 몇 개의 유행하는 욕설을 대충 섞어 씀으로써 자기 뜻을 전달하는 최적의 문장이라 착각하게 된다면 청소년들의 인지발달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다시 말해서 욕설에 의존하면 할수록 전체적인 어휘가 단순해지고 미분화상태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언어는 사고의 도구이다. 단순한 언어에 의존하는 것은 그만큼 사고도 단순해진다는 뜻이 된다. 즉, 욕설은 정서적인 악영향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지능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좀 더 건강한 어휘를 사용하고 건강한 사고력을 발달시키기를 원한다면 청소년들에게 언어감수성을 키우는 훈련이나 교육도 해야 할 것이고, 욕설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계몽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제공한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찬찬히 살펴보는 작업을 제외하면 이 모든 것은 별 소용이 없다.
청소년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욕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현실을 바꾸지 않고 욕설만 금지하려 들면 청소년들의 현실은 더 열악해질 것이다. 욕설로 범벅이 된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는 그 자체가 문제이기 이전에 청소년들의 열악한 삶을 반영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욕하는 청소년을 걱정하기보다는 욕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짜 책임 있는 어른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