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실 풍경 하나
요즘 아이들은 럭비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하며, 감성과 표현력이 강한 영상 세대, 인터넷의 가상 세계에 탐닉하는 N세대의 특성을 보인다. 최근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한자녀 가정의 확대, 핵가족화에 따른 자녀이기주의, 과도한 교육열에 기초한 학부모의 치맛바람 등 학교교육현장에서 교사의 교육권 보장이 위축되는 요인도 병존하고 있다.
실제 학교현장의 한 풍경을 지켜보자.
열정적으로 교사는 수업을 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와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저만큼 교실 뒤편에서 책상 위에 머리를 뉘인 채 잠을 자는 학생이 있다. 교사는 그것이 신경 쓰였고 학생 곁으로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A야, 이제 그만 자고 수업에 집중하면 좋겠다. 오늘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란다. 자 그만 자고 일어나라. 자세 바로 하자!”
“아, 선생님, 공부하기 싫어요. 그리고 지금 너무 피곤해요. 제가 조용히 자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한 것도 아니잖아요. 상관마세요.”
“A야, 너 참 문제로구나, 지금은 수업시간이잖니? 선생님의 말씀을 왜 안 듣는 거니? 더구나 이 교실에서 다른 학생은 지난번에 선생님이 과제를 낸 것을 모두 열심히 풀어오고 훌륭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너는 왜 숙제를 안 해왔니?”
“선생님,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과목만 공부하거든요. 그리고 저 어젯밤 학원 공부하느라 엄청 피곤해요. 말시키지 마세요. (혼잣말로) 아, 재수 없어.”
자 이런 경우에 교사는 참으로 맥이 빠지고 난감하며 수업분위기를 다잡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요즘 말하는 간접체벌(학생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체벌을 하지 않고 대신 반성문 쓰기 등을 시키는 것 등)을 명해야 하나.
그리고 교사는 ‘내 수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들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또한 학생 인권이 교권을 옥죄는 것은 아닌가, 수업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앞의 학생은 교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가, 선생님의 교권을 회복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학생의 인권과 교원의 교권은 조화될 수 있는가 등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앞의 상황에서 학생은 소극적으로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교사들의 정성어린 교육의 힘으로 자신들의 자녀가 올바른 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하는 인격과 직업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므로 학부모부터 적극 교권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교육의 확립을 지향하고 학생 및 교원의 권리를 신장시켜 행복한 학교의 실현을 지원하기 위한 교권보호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육권에 대한 법학적 고찰
교육권에 관한 헌법적 근거 규정은 ‘행복추구권’이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명문규정을 들 수 있다. 특히 헌법 제3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받을 권리’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학권(修學權)을 규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보호 하에 있는 자녀에게 적절한 교육기회를 제공해 주도록 요구하는 교육기회제공 청구권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교원의 교육권’은 흔히 ‘교권’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법학적 개념이기 보다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즉, 교권은 교육에 대한 권리라는 의미보다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학부모 등 외부로부터의 관여에 대해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취지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교육권의 1차적 책임은 미성년자를 양육시키고 책임지는 친권자에게 있다. 다만 학부모는 생업에 종사하고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기능이 부족해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권한을 공교육의 주체자인 국가에게 위임 내지 포괄적으로 신탁하게 된 것이다. 국가는 학교설립, 교육 행정구역 설정 등 교육기반을 확립한 다음, 실정법상의 자격증 제도와 교사채용 등의 법 · 제도를 통해 이를 다시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교사에게 신탁 · 위임하게 된다.
결국 ‘교원(혹은 교사)의 교육권’은 학부모들로부터 국가를 통해 간접적으로 위탁받은 권한(loco parentice)인 것이다.
교육의 인간적 주체성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사, 학생 모두 인간으로서의 주체성, 자주성을 구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적 주체성’이란 진리를 탐구하거나 인격수양과정 또는 이들 간의 교수학습의 장에서 외적인 간섭이나 명령지배에 교육권이 제한당하거나 침해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교사에 의해 주체적 자율적 인간이 육성될 수 없는 것이며, 개성 있고 자유로운 인격의 형성은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유지될 때 가능하다. 또한 교육의 주체와 객체가 타율적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 있어야만 주체적 인간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교육의 자유성
교육의 제1의 요건은 진리만이 교수된다는 것이며, 공권력에 의거 설치되는 교육기관이라도 정치적 권위나 부당한 행정적 통제 · 간섭 등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교사의 교육권의 근거 · 기초가 진리이며, 진리를 탐구하는 교사에게는 인위적이고 물리적인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진리가 왜곡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교육의 전문적 자율성
아동 · 학생의 발달에 적응하고자 하는 교육의 전문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교육활동의 계획과 실천에 따른 자율적인 교육권의 행사와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즉 교육의 객체인 아동과 학생의 성장 발달법칙을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교육방법은 인간적 접촉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또 학생들의 심리적 · 육체적 발달과정에 대한 진실성과 예술적 가치(인간성)를 추구하는 교육전문가로서 교사는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학생의 지성 · 감성의 발달을 고려해 교재배열과 학습 내용의 선정 및 지도, 상담 등을 우월적 위치에서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즉, 교사 교육의 자유는 개인적 권익인 동시에 학생들의 자아실현을 용이하게 해주는 권익보호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교육의 자주적 책임성
교육의 주체로서 국민 국가로부터의 교육업무에 대한 신탁을 받아 교육실천에 종사하는 교원은 국민 일반에 대해 직접 책임을 부담할 것이 요청된다.
교사가 학생과 부모로부터 교육 요구에 스스로 전문성을 갖고 응해간다고 할 때(즉 학부모의 교원에 대한 교육 요구권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적 책임, 교육정책의 편성이나 실천에 대한 능동적 참여 등) 교육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 교육활동에 대한 자주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로부터 교육권의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교원 학문의 자유
교원이 학습 내용 및 교육방법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와 연수를 해야 하는 것은 전문직 특성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이때 수반되어야 할 것은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유가 헌법이나 도덕률에 위반되지 않는 한 법적인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교원은 기본적 인권의 향유주체로서 국민 자유권의 하나인 학문의 자유를 절대적 자유로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교육 실천의 과정을 보면 교사와 학생 간의 인격적 접촉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올바르고 공정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때 교사의 교육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교사 교육의 자유는 문화를 국민에게 계승시키거나 진리교육을 통해 아동의 지적 성장발달을 지켜보는 전문적 교육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보며, 개인 또는 집단에 있어서 교원 교육의 자유는 아동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의 보장을 이루는 일환으로서 공교육 내에서의 자치적 권한 또는 교육권한이다.
교육권은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만 발생되는 것이다. 이는 아동과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 학습권, 발달권의 구체적 조장을 위해 파생된 권리라는 측면도 있으나, 교사의 전문적 업무수행과 관련한 교육 자율성의 신장, 전문성의 발휘라는 의미에서 헌법적 권리라는 측면으로 이해해 가야 할 것이다.
교육권의 구체적 내용과 교육의 자유
교원의 교육권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교육권은 교육 내용과 교육방법에 대한 교원의 전문적이고 자주적인 선택권한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교과교육에 대한 수업내용 편성권, 교재선택권, 수업방법의 결정권, 성적평가권, 생활지도권, 학생징계권 등이 있다.
그러면 교사에게 ‘교육의 자유’ 혹은 ‘수업의 자유’는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한정 인정되는 것인가, 제한된다면 어떤 법리에 의해 제한되어야 하는가?
대학에서의 수업은 교수가 기존의 학문적 통설을 과감히 비판하고 자신만의 독자적 학설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초 · 중 · 고교 단계에서도 그렇게 과감하게 보편화된 일반이론을 뒤엎는 교실수업에서 할 수 있는가. 초 · 중등 교사에게도 대학의 교수처럼 자신이 탐구한 학문적 내용을 가르칠 자유, 즉 ‘수업의 자유’가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달리 말해질 수 있다. 교육과정의 정신과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사도 학문적 자유를 가지며, 진리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교육의 대상이 아직은 미성숙하고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는 자율적 제한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초 · 중등교육법」 제23조에 근거해 초 · 중등교육이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현행 교육법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기초로 교사가 수업설계를 해서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교육권 주체 간의 충돌과 조화
교사의 교육권은 종종 다른 권리의 주체들과 상충하는 경우가 있다. 아동학생의 권리, 학부모의 권리, 학교법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갖는 권리와의 충돌이 그것이다. 먼저, 아동 학생들의 권리와 충돌되는 경우를 보자.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교육권 행사가 학생이 가지는 헌법적 권리와 갈등을 빚는다든가(예 : 체벌, 소지품 검사, 용의 복장 및 두발 단속, 학생의 프라이버시(Privacy)권의 행사에 대한 억압 등), 학부모의 교육권과의 법적인 갈등(예 : 학교 사고에 대한 책임의 한계, 교육과정편성 및 참여권, 학교 선택권,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도 조언 요구권, 성적 평가에 대한 이의 신청권 등)이나 충돌을 예견할 수 있으므로 교원의 교육자유권은 교육조리 및 교육본질에 근거한 법적 조화와 보완적 관계를 부단히 모색해가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 같은 학생의 권리나 자유 등은 학생인권조례라는 이름으로 지자체별로 제정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 있으며, 교사의 교육권과의 갈등을 학교현장에서 야기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학생과 교사의 권리나 교육권이 충돌을 일으키고 서로가 상대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 사이의 관계는 교육을 통한 인격 완성이나 교육성과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교사의 교육권은 권리 자체가 아동학생의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학습권이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권도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정 · 제한되어야 한다.
교사의 교육권은 또한 학부모의 교육권과 충돌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의 어느 학부모는 아파트에 망원경을 설치해 놓고 교사의 수업장면을 감시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학교에 찾아가 자녀를 체벌하는 교사를 폭행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교육법의 취지로 볼 때, 학교교육의 일차적인 담당자는 교사이다. 교사가 가지는 교육권에는 수업내용의 결정, 교육방법과 교재의 선정, 성적평가 등의 전문적 사항을 정하는 권리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 학부모가 부당한 간섭을 하는 것은 월권이다.
학부모와 교사의 교육권이 충돌하는 경우 학교 내에서 학부모와 교사가 자체적으로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학부모가 자기 자녀 중심의 개별 사안에 대해 이른바 치맛바람으로 교육활동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수업에 관한 권리는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우리의 학교 현실에서는 학교경영의 관리 및 책임자로서의 교장, 교감의 직무명령에 의해 간섭이나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학교장 및 교감의 직무명령에 의해 교사의 교육권은 얼마나 제한 받을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초 · 중등교육법」 제20조에는 ‘교장 또는 원장은 교무 또는 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휘, 감독하며 학생 또는 원아를 교육한다.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 또는 원아를 교육한다’ 등이 규정되어 있다.
교사의 교육행위가 학생이라는 인격체를 상대로 고도의 자율성을 발휘해야 하는 창조적 행위임을 인정하고 있다. 교사는 법령에 정하는 바에 따라 전문적이고 자율성 있는 교육활동을 할 수 있으나 교육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과 비례해 교육의 책무성을 더 크게 부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교원의 교육권에 대한 의식제고
언론 보도에 의하면 참으로 다양한 교권침해 사례를 접할 수 있다. 교사의 수업 지도 불응이나 불손행동을 보여 정당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사례부터, 선생님에 대한 폭언, 욕설, 심지어 성희롱과 폭행 등에 이르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건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학생 인권에 무릎 꿇은 교권’, ‘학부모로부터 폭행당하는 선생님’이란 낯뜨거운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공교육의 추락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이에 대응해 각 시 · 도 교육청, 의회마다 교권보호헌장이나 교권보호 조례 등을 만들고 선생님의 정당한 교육활동의 보장과 스승의 권위에 대한 사회적 제도나 장치를 만들어 가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교원의 교육권, 교권, 권위 등에 대한 새로운 탐구나 제도적 보호는 공교육의 정상적 추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선생님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 선생님의 교직 전문성을 보장하고 공교육을 살리는 핵심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사회를 살아갈 주역인 학습자를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시키고 국가백년 대계 교육의 책무성을 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범사회적 인식의 제고와 학교교육의 삼위일체 구성원인 학생, 교사 및 학부모가 연계해 다시 한 번 교원의 교육권에 대한 의식제고와 분위기 형성, 새로운 학교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교사 스스로 교육권에 대한 법리적 인식과 법의식을 지니고 학생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실력과 열정,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학생의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신장시키면서 교권을 바르게 세워나가려는 선생님들의 ‘창조적 지혜’가 요청된다.
교원 스스로 자신과 학생의 인권, 권리 등에 대한 민감한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교직 전문성을 발휘할 때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스승 존경의 캠페인을 학생회 스스로 벌여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가정교육 차원에서는 학부모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를 솔선해 보이고 이를 자녀 앞에서 실행해야 한다.
아이들의 롤모델은 학부모이며, 학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있어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