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제로에 도전한다

2012.03.01 09:00:00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졸업식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졸업식 노래. 줄줄이 이어지던 내빈들의 인사말이 때때로 허공을 맴돌던 기억이 난다. 30대 중반의 기자가 기억하는 졸업식의 풍경은 이렇다. 그런데 제천동중학교(교장 한승규)의 졸업식 풍경은 기자가 추억하는 장면들과는 사뭇 달랐다.
“오늘 졸업식은 좀 색다르게 준비했어요. 졸업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장이나 장학금 증여는 하루 전에 모두 해당 학생들에게 전달했어요. 몇몇 학생의 잔치가 아니라 졸업생 모두가 중심이 되는 졸업식, 선후배 간에, 사제 간에 소통하는 졸업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승규 교장의 설명이다.
제천동중학교 졸업식의 첫인상은 졸업식이 축제(?)같다는 것이다. 딱딱한 내빈들의 인사말 대신 노래와 춤이 있고 이 축제의 중심에는 선배와 후배의 정이 있고,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존재한다. 현악 3중주의 사제동행 연주를 비롯해 재학생과 졸업생이 펼치는 화려한 춤사위 등 풍성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이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한복을 곱게 맞춰 입은 3학년 담임교사들의 노래 공연. 노래는 실수 연발이었지만 부르는 선생님도 따라 흥얼거리는 학생들도 모두 하나였다. 3학년 교사들과 학생들은 그렇게 서로 벽을 허물고 있었다.

사제동행 소통으로 마음의 벽 허물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가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소통’을 시작하면서 제천동중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몇 년 전만해도 학생들 간의 다툼이 잦아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지만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면서 학생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고, 지난해에는 ‘학교폭력 예방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어 도교육감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 키워드는 ‘사제동행 소통’이다. 학생과 교사 간에 서로 대화로써 마음의 벽을 허물 때 신뢰도 생기고 변화도 일어난다고 믿는다. 학급별로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1박 2일 캠핑을 하며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텐트에서 밤을 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어느 순간 사제 간의 벽은 허물어진다.
2학년 임경빈 학생은 “선생님들을 심사위원으로 모시고 모둠별로 요리경연을 펼쳤는데, 맛은 별로였지만 정말 재미있었다”며 “캠핑을 다녀온 후 학급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고 친구들과도 친해졌다”고 말했다.
학교 부적응 학생에게는 더욱 섬세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학생’과 ‘교사’의 딱딱한 상담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콘서트를 보며 문화체험을 하고, 함께 산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다보면 사제 간에 유대감도 신뢰감도 커진다.
장호식 생활지도 교사는 “담임교사 추천으로 사제동행 등반에 참여하게 된 학생들이 처음에는 교사의 눈치를 살피며 피해 다니더군요. 그러나 대자연 속에서 등반을 하다보면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꼈던 아이들이 차츰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제 간의 벽도 사라지는 것을 느끼 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공동체 훈련이다. 공동체 훈련은 학교생활의 적응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과정으로 총 4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1단계는 상담을 통해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2단계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자아존중감을 높인다. 3단계는 학교 주변의 쓰레기 줍기 등 봉사활동을 통해 애교심을 키우는 과정이고, 마지막 4단계에서는 줄넘기, 등산 등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협동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다.

어려운 고민상담은 ‘소원 우체통’에
이 학교에서는 누구나 새 학년이 되면 학교폭력 예방 서약서를 쓰고 선서를 한다. 전교생이 “학교폭력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친구에게, 교사에게 엄숙하게 다짐을 하는 것이다. 장호식 교사는 “서약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학생들에게 인식시키는 과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생활지도부실 옆에는 ‘소원 우체통’이 있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민 상담을 해결해 준다. 괴롭힘을 호소하는 글에서부터 학교생활 중 바라는 일, 힘든 일, 고마운 일 등 사연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 ‘소원 우체통’이 생겼을 당시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100통이 넘는 편지가 전달되었다.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적어 이곳에 넣으면 생활지도 교사가 담임교사에게 전달하여 교우관계, 폭력문제, 가정문제를 함께 해결한다.
지난 연말 ‘소원 우체통’에 날아 든 편지 한 통.
‘수진(가명)이의 닳고 닳은 신발을 며칠 전에 보았습니다. 이 겨울도 버티기 힘들 만큼 추워 보이는 신발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신발을 사라고 할 때마다 수진이는 그저 웃을 뿐입니다. 이 추운 겨울, 조금이나마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실제 생활지도부에서는 이 편지를 접수한 후 교내 교육복지부와 협조하여 학용품을 지원해 주었고, 코레일봉사단체와 연계해 수진 학생의 주거환경(벽지, 장판, 싱크대, 전등, 가스레인지, 장롱 등)을 개선해 줄 수 있었다.

“믿어주는 선생님이 있어 든든해요”
순천 승평중학교(교장 정광태)는 맞춤형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학교폭력 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순천시 해룡면, 농촌마을에 위치한 이 학교는 교사 9명에 전교생이 40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다.
이 학교는 소규모라는 학교 특징을 최대의 장점으로 살렸다. 교사 1인과 성향이 비슷한 학생 5명이 멘토와 멘티로 결연하여 월 2회 정기적으로 학습, 진로, 교우관계 전반에 걸친 멘토링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3~4월경에는 학교에서 마련한 간식을 먹으며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5월경부터는 진로, 학업문제, 분노조절 훈련, 연극치료, 역할극 활동 등 본격적인 멘토링 상담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학교 분위기가 이전보다 많이 안정되었다.
더불어, 학교를 벗어나 교사와 학생이 ‘1촌 맺기’를 통해 친구처럼 지내며 다양한 체험학습을 경험하고 있다. 1박 2일간의 캠프, 고계산과 땅끝 전망대 등반, 친구에게 사과·감사편지 쓰기, 별자리 관측 등의 활동을 하면서 선후배·멘토 교사와 화합을 다지며 폭력 없는 학교 문화를 만들고 있다.
3학년 최락연 학생은 “캠프, 다양한 체험활동, 멘토링 상담활동을 진행하면서 친구들끼리 우정을 쌓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 믿어준다는 점, 학교에 가면 든든하게 의지할 선생님들이 있다는 점 때문에 학업성적도 오르고 학교생활이 즐거웠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애플데이’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준 경우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행사이다. 실제로 학생들은 예쁜 카드에 사과편지를 쓰고 포장한 사과와 함께 전달한다. 이는 학생들에게 사과와 우정의 의미를 되새겨 주고 학교폭력 예방 및 교우관계, 사제 간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계준 학생지도 교사는 “교사가 먼저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면 아이들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후에 멘토링 상담이 가능하다”며 “마음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스포츠 활동으로 스트레스 조절
경기 구리중학교(교장 양용순)는 분노조절(Control One’s Anger), 의사소통(Communication Based on Nonviolence), 배려(Considerate for each other)라는 3C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폭력 제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격성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심리검사와 더불어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한 결과 공격적인 부분이 많이 순화되고 있다.
도란도란 상담실에는 상담사가 상주하고 솔직하고 원만한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인 상담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상담실 내에는 휴게실을 마련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담실을 방문하고 쉼터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심리검사에서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는 고위험군 학생들에게는 주 1회 연극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을 진행한다. 다양한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분노의 원인, 스트레스 푸는 방법 등을 배우면서 감정조절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밖에도 남학교 특성을 고려해 학생들이 선호하는 스포츠 동아리를 운영, 건전한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15개팀 232명이 참가하는 교내 축구 리그전이 열리고, 180명의 학생이 참가하는 탁구왕 선발전도 진행한다. 학생들은 스포츠를 통해 성적, 가정, 교우문제 등 각종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고 있다.
제천동중학교의 사제동행 프로그램, 승평중학교의 맞춤형 멘토링 프로그램, 구리중학교 3C 프로젝트 등 학교마다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교폭력은 예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폭력 예방 대책의 중심에는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소통’이란 화두가 놓여 있었다.

제천동중 장호식 교사가 전하는 ‘학교폭력’ 지도 노하우
발달과정 이해하며 유연한 자세로 대처하라

교사들이 현장에서 학교폭력을 지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피해사실조차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있고, 사실 확인 후에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럴 땐 이렇게 해보자.
 
첫째 학교폭력을 지도하는데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과 관심이다. 관계에 대한 신뢰없이 훈계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학교폭력 문제가 가장 심각한 중학생들의 발달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문제가 두드러진 중학교 2학년은 가치관에 혼란을 겪으면서 학교, 사회에 대한 반감이 큰 시기다. 판단력이 미숙한 상태에서 즉흥적인 행동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유연한 자세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둘째 피해학생 파악하기. 피해학생이 은폐해 학교폭력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담임교사는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 피해학생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제천동중은 ‘소원 우체통’을 활용하고 있다.
셋째 학교폭력 사실이 확인되면 학부모를 동반하고 상담을 진행한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와의 협조, 신뢰가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해학생의 잘못을 추궁하기보다는 가정문제와 연계해서 상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필요한 경우에는 학부모의 양해를 구해 합의사항을 녹취로 남길 수도 있다. 녹취할 경우, 합의사항을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책임있게 이행해야 한다.

넷째 학교폭력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담임교사가 항상 학생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교사가 교실에 부재했을 때 문제 상황이 생기기 쉽다. 교사는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촉각을 세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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