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겠지만, 최근의 학교폭력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자극적인 게임이나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폭력이 악독하거나 잔인한 양상을 띤다. 둘째,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 당사자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가족 간의 갈등, 집단 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셋째, 학교폭력 사건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복잡해지며 사건 당사자들 뿐 아니라 교사를 포함한 학교 조직 전체의 안정성과 응집성이 위협받는다.
이런 특징은 교사에게 강한 비일상적 스트레스를 주며,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불면증이나 공황증, 사소한 일에도 깜짝 놀라는 등의 심리적 증상이 생긴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당사자인 피해·가해 학생들 외에 교사에게도 심리적 증상이 생기지 않도록 관심이 필요하며 상처입거나 후유증이 남는 경우에는 치유가 필요하다.
교사가 겪게 되는 학교폭력의 후유증을 이상심리학의 이론과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하겠다. 위 도식은 개인요인과 환경요인의 결합이 심리적 증상의 발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학교폭력은 교사에게 강력한 스트레서
병리적인 심리적 증상은 항상 개인 위험요인이 배경이 되고 환경 스트레서(stressor, 스트레스 유발자)가 이를 자극하여 생겨난다. 여기서 개인 위험요인은 유전이나 성격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모두 포함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교폭력 사건은 교사에게 비일상적인 강력한 스트레서로 작용하는데, ❶ 폭력사건을 막지 못한 자책감, ❷ 폭력사건 가해·피해 학생의 처리에 동반한 고민, ❸ 학생과 부모의 비난, 불신, 위협, 적대감에 노출됨, ❹ 경찰이나 언론이 개입될 경우 반복되는 조사로 인해 심신이 지치고 소진됨 등의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강력한 자극은 개인의 평소 대처능력이나 대처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따라서 개인은 대량의 스트레서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 상황을 자극과부하(Stimulus Overload)로 부른다. 자극과부하 상태가 지속되면 자아(ego)의 방어기능이 약해지고 우울증, 공황증, 무력감, 각성 증가로 깜짝깜짝 놀람,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함, 눈물이나 짜증 증가, 화를 불쑥 내는 감정조절 실패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 나타날 것인가는 개인의 사전 취약성에 따라 다르다.
학교폭력이 교사의 정신을 할퀴어 생긴 상처는 학교폭력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도 남게 된다. 정서적으로는 무표정해지며 감정적으로 위축되거나 혹은 반대로 짜증이 늘거나 감정적 충동성이 증가하기도 한다.
인지적으로는 융통성이 저하되고 고지식해지며, 이전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던 사고방식도 차츰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고 주의집중력이나 암기력, 계산능력의 저하가 나타난다.
동기적 측면에서는 식욕이나 성욕이 줄어들 수 있고 전반적인 활력이 저하된다.
행동적 측면에서는 부담감이 드는 장소나 인간관계에 대한 회피, 그리고 술이나 게임을 이용하여 현실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있다.
학교폭력의 상처 치유
스트레스 강도를 줄여라
교사에게 남겨진 학교폭력의 상처를 치유하는 부분 역시 앞의 이론 도식을 활용하여 설명해보자.
우선 스트레서의 즉각적 제거가 필요할 것이다. 학교폭력과 관련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자극균형상태가 유지되고 과부하가 걸리지 않으며, 자극과부하 상태가 되더라도 쉽게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측, 가해측, 학교측 간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며 짧은 시간 내에 갈등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노출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노출시간을 단축시키는 것 보다 ‘덜 스트레스 받는 것’, 즉 스트레스의 강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스트레스 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❶ 학교폭력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하되, 귀가 후에는 평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덜 관여하기, ❷ 학교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혼자 책임지고 감당하기보다는 대책반을 꾸려 공동으로 관여하기, ❸ 학교폭력 사건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음을 명심하고 마음 단단히 먹기 등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심리적 증상에 대한 개입이다.
증상에 대한 개입은 크게 약물적 개입과 심리적 개입이 가능하다. 먼저 약물적 개입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우울증이나 불안감, 공황증 등 다양한 증상에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기 때문에 이를 조절해주는 약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데 우울증이나 불안증 치료약들의 대부분은 안전성이 검증된 것이므로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
고립감 줄이고 소속·연대감을 높여라
심리적 개입의 경우에는 근본적인 정신적 성장을 시도하는 장기 심리적 개입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주가 되는 단기 심리적 개입이 필요하다.
단기 심리적 개입을 할 때는 ❶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소진된 마음 이해하며 받아주기, ❷ 학교폭력 사건 발생은 내가 잘못하거나 무능해서 생긴 것은 아님을 알리기, ❸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등의 활동이 주가 된다.
단기 심리적 개입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고립감을 줄여주고 소속감과 연대감을 높여주는 것이다. 개인적 상처를 혼자 책임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개입할 경우 심리적 부담감이 경감되고 힘을 회복하게 된다.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 및 도시 전체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추모하여 심리적 외상(trauma)을 최소화 한 것이 좋은 예이다.
마지막으로는 개인 내 요인에 대한 개입이다. 이것은 태도나 감정 표현방식, 사고방식, 스트레스 대처방식 등 성격에 대해 개입하여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성장시키고 강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앞의 도식에서 개인 내 위험요인을 감소시키고 보호요인을 키우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성격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것이어서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평소 비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도 ‘힘을 내, 잘 될거야’라고 주변에서 격려하면 일시적으로 위로받고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혼자 남게 되면 본연의 성격이 다시 지배하게 된다. 성격적 측면을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며, 전문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작업해야 한다.
‘역경을 통한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이상에서 학교폭력이 교사에게 남긴 상처 치유의 3가지 개입 유형에 대해 살펴봤다. 어느 것이 더 맞는 것이냐를 따지기보다 가능한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심리적 상처 치유를 시도할 때엔 이 3가지 차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트레서에 대한 개입, 증상에 대한 개입은 단기적으로 과감하게 시도하고, 개인 내 요인에 대한 개입은 신중하게 꾸준히 시도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단기적 개입의 성공이 정신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렸을 적 힘들었던 경험이 훗날 성공의 바탕이 된다는 역경을 통한 성장(growth through adversity) 현상을 여기서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힘들었던 학교폭력 사건 처리 경험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소진되고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교사들과 유대감이 강화되고 정신적으로 강인해지는 것이다. 학교폭력 사건을 경험하는 모든 교사들에게 이것이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