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우수인재 선발보다 배출에 관심을"

2012.05.01 09:00:00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과 대학교육의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다고들 한다. 근래 들어 반값 등록금의 문제로 촉발된 대학을 향한 사회의 질타는 비록 대학교육 문제의 본질에서는 비켜나가 있지만,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 사회에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이 사실이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 설정, 연구와 교육과의 상관관계 혹은 우선순위, 국가의 대학교육 철학과 정책 전반 등에 대한 검토와 패러다임을 고민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아닌가 싶다.

공생하는 대학 서열과 학생 서열
우리나라 대학교육 문제의 핵심은 각 대학이 역량이 우수한 학생 선발에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평범한 학생을 뽑아서 우수한 학생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의 순위는 입학생의 성적 순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주지하는 바이다.
대학교육협의회 같은 공적 기관이나 일간지 등의 민간 기관이 시행하는 대학 평가는 교수충원률, 연구 성과, 사회적 평판 등 다방면의 지표를 활용해서 시행한다. 하지만 그 결과를 종합해 보면 결국 고등학생들이 매겨 놓은 순위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우수한 학생이 지원하는 대학이 더 좋은 대학이 되고, 때문에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경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우수한 학생을 더 특별한 학생으로 만들면 좋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우수한 학생의 존재는 교수들이 연구 성과를 더 많이 내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교육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대학 사회에서 그런 생각이 지배적 도그마가 되면 고등학교와 중학교 등으로 퍼져 나가고, 급기야 미혼 남녀들까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상대를 고르기에 여념이 없는 세태를 만든다.
우수한 자원을 뽑아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은 누구나, 어느 대학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서열 상위권의 대학이 더 좋은 교육을 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잠재된 가능성을 깨워주는 것
누구나 문제가 많다고 말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변화는 이 지점에서부터 풀어가야 한다. 진정한 교육자는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 맡은 학생을 그 수준대로 인정하고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당장 급여를 주고 일을 시켜 성과를 내야 하는 기업이라면 우수 인재 선발에 집착할 수 있다. 또 당장의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 중심의 대학원 과정이라면 우수한 학생 선발에 전력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아니다. 대학 공부를 위한 기초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여 그들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우수 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본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경험한 일이 있다. 그곳 교수들은 석사 과정에 있던 나를 학생으로 부르지도 않고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았다. 같이 연구하는 동료이자 스태프로 대우했다. 그들에게 학생은 학부생까지만 해당한다. 대학원생들에게는 연구의 질적·양적 성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전공 지식을 전수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학업 수준과 능력에 맡는 학업 지도, 인생 카운슬링을 주 업무로 삼고 있었다. 물론 대개 학부 학생 10명에 전임 교수 1명 정도인 교육 환경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과 비교했을 때 참으로 부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험은 나로 하여금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를 보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대학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스승과 제자 관계는 학생의 수준과 능력에 관계없이 개개인의 능력과 처지에 맡는 지식 전수와 지도가 이루어질 때 성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교수로서 학생을 교육 소비자 정도로 생각하고, 학생으로서는 교수를 지식 공급자로 생각하는 지금의 세태에서 참스승과 참제자라는 관계 정립은 불가능하다. 교수들이 최소한의 수학 능력을 갖고 있는 평범한 학생을 우수한 인재로 변화시키는 일이 대학 교육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전제해야 한다. 국가의 대학교육 정책 방향 또한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할 때 대한민국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는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박주석 명지대 기록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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