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조근정훈장 수상자 한명복 서울신현고 교장

2012.07.01 09:00:00

1976년 광희중 교사(校舍) 이전, 1982년 고등학교 최초 특수학급 개설, 1988년 서울과학고 및 1992년 한성과학고 개교, 1996년 성북교육청 개청 등 한명복 교장이 가는 자리는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월 제31회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교원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거쳐 지난 3월 ‘2012년 창의·인성 모델학교’인 신현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한명복 교장은 이곳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한 사람을 생각하는 교육

서울 신현고 교장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교생의 사진이다. 학년, 반 별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한쪽 벽면 가득 정렬되어 있다. 한명복 교장이 이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다.
“아침마다 이곳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한 명, 한 명을 떠올리죠. 교육은 ‘한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학생들 개개인이 모두 관심 받는 존재임을, 스스로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고 싶어요.”
‘한 사람을 위한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데서 시작한다. 한 교장은 동아리 출범식, 학급 캠핑, 학년별 문화체험활동 등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학생들과 어울린다. 3학년 강지한 학생은 “먼저 다가와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대화도 잘 통하고, 우리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분이시죠”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의 소통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학교에서 학기별로 한 번씩 학부모들을 위해 개설하는 인문학 강의 강연자로 직접 나선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함께 사진도 찍고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학교와 학생에 관한 학부모들의 생각을 나눈다.
개개인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교육장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있을 때는 모든 직원들의 생일을 챙겨, 한 달에 한 번씩 생일을 맞은 직원들과 만남을 가졌다. 또한 북부지역 장애인 학부모회와 정기적인 교류를 가지면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행동은 그저 보여주기만을 위한 것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그 안에 진심을 담는다면 한 번의 움직임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한 교장의 교직생활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당시 흔치 않았던 ‘고시 검정’ 제도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원자격을 얻었고 구로구 서서울생활과학고의 전신인 동광실업전수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부임했으니 나이도, 겉모습도 학생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차라리 말을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자고 다짐했죠.”
‘말보다 행동으로’라는 한 교장의 철칙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야간에 대학을 다니며 기계공학, 전자공학 학위를 땄고, 교육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공립교사 순위고사를 거쳐 공립학교로 부임했다.
광희중학교 근무 시절에는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 장애인 마을에서 봉사를 했다. 장애인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 열악했던 장애인 교육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기저기 강의도 나가고 보고서도 써서 제출하다 보니 특수학급 적임자로 선정 되어 고등학교 최초 특수학급 설치를 준비하던 여의도고로 옮겨가게 됐다. 3년간 특수학급 담임을 맡았고, 이후 4년은 특수학급의 업무를 전담했다. 당시의 제자들은 현재 방송국, IT분야, 대학 등 사회 각계에 진출해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추천서를 써줬던 학생이 연세대 교수로 임용된 뒤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을 때는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과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다보니 다음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수학급 운영에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특수교육 대학원에서 ‘영재교육’ 강의를 들은 것을 계기로 서울과학고의 개교 요원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서울과학고를 거쳐 한성과학고의 창단 교사로도 참여한 그는 1995년 장학사로 보직을 옮겼다. 장학사, 교감, 교장, 교육장을 두루 거치며 창의체험자원지도(CRM) 개발·보급,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자율화정책 자문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공교육 선진화에 앞장섰다. 현재 한 교장은 자율학교, 혁신학교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원 초빙 자율권, 독자적 프로그램 시행 등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자율권이 더 많아요.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관건이겠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자율학교, 혁신학교는 보다 넓은 창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중심이 되길
신현고에 부임한지 이제 갓 한 학기를 넘기고 있음에도 학생들은 한 교장을 선생님 이상으로 무척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학생들과는 스마트폰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이용해 메시지도 주고받는다.
“카톡 친구할래요?” 올해 초 신현고로 전편입한 2학년 최재원 학생은 한 교장에게 먼저 ‘카톡’을 보냈다. 이후 “공부는 어떠냐?” “어려워요” “그건 당근이지” 등 심각한 대화는 아니지만 일상을 주고받으며 세대를 초월한 친구가 됐다.
아침마다 학생들을 벌세우던 건물 로비에는 학교 이곳저곳에서 잠자고 있던 소파를 옮겨다 놓았다. 규제가 이루어지던 공간을 휴식공간으로 바꾸어 학생들이 자율적인 책임의식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모든 학생이 각각 자신의 중심이 되어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쉬는 시간, 하교시간 할 것 없이 학생들은 자유롭게 소파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고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 가져다 놓은 탁자에는 계절마다 색색으로 탁자보를 바꿀 것이라며 신현고 까페테리아로 바꿔나갈 계획을 귀띔해 주었다.
“이곳에서의 일몰은 또 다른 곳에서의 일출입니다. 한 가지가 끝났다는 것은, 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학생들도 그걸 알았으면 해요. 느리더라도 지치지 않고,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고요. 떠오르는 해를 보는데 느리고 빠름은 없잖아요. 그저 아이들이 서있는 경도(經度)가 다를 뿐이죠.”
1972년부터 시작된 교직생활은 이제 꼬박 40년을 넘겼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한 교장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신현고에서 맞이할 새로운 ‘일출’은 어떤 것일까. 이전까지 변화의 중심에서 ‘따라 오십시오’하고 앞장서서 달렸다면, 이제는 손을 잡고 ‘함께 갑시다’하며 걸음을 늦추고자 한다. “교사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이 스스로 서는 것을 도와야죠. 무엇보다도 ‘자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체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본인이 생각해서 움직여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일 겁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상호간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한 교장과 함께 지금 신현고의 학생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의 길’을 찾는 여정에 올라있다.
박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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