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논산 도산초등학교

2013.01.01 09:00:00

2012년 건강증진 모델학교 운영, 스마트교육 연구학교 운영, 대한민국 좋은학교 선정, 방과후학교 전국 대상을 휩쓴 학교가 있다. 편리한 접근성과 최신식 시설을 갖춘 도시 학교가 아니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슈퍼마켓도 오락실도 편의점도 없는 이 산골 벽지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무엇이 이 학생들을 설레게 하는 걸까? 논산의 도산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언제나 신나는 곳

“야, 방금 봤어? 나 성공 했는데!” “에이, 난 예전부터 그만큼 했어~”,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진욱아, 헬멧은 꼭 쓰고 타야지.” S보드를 타는 학생들과 함께 도산초등학교의 하루는 아침부터 쉴 새 없는 재잘거림으로 시작한다.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트램펄린(방방), 운동장을 빙 둘러 만들어져 있는 S보드길, S보드길 바깥쪽에 세워진 간이 골프연습장,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간이 축구장(풋살장)과 그 위로 펄럭이고 있는 만국기, 그리고 운동장 넘어 가장 안쪽에 세워진 나지막한 2층 건물. 이 모든 장면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의 도산초등학교가 충남 논산의 대둔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유치원생 21명을 포함해 전교생은 131명, 전체 교직원은 18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지만 다양한 종류의 체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2012년 창의경영학교 건강증진 모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학교에 오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S보드와 트램펄린부터 매일 아침마다 열리는 축구 리그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골프, 승마까지.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마음껏 운동장을 뛰놀며 공을 차고, 트램펄린에 올라 누가 높이 뛰나 내기를 하는 이 학생들은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싶어 눈을 뜨고, 학교에서 더 놀고 싶어 해가 지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학교, 계룡시에서 꼬불꼬불 산길 따라 자동차로 30분이나 가야 도착하는 이 작은 학교, 도산초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학생을 부르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4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학생 수가 30여 명밖에 되지 않던 도산초는 말 그대로 폐교 위기의 벽지 학교였다. 당시 하나뿐인 1층짜리 교사(校舍)에서 복식 수업을 하며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빴다고 한다.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도시 아이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올 수 있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방과후 활동을 운영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 이 학교로 발령을 받은 박상영 교장은 그 해의 학교예산을 아껴서 용접공인 학부모와 함께 운동장 한 구석에 간이 골프연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12㎞ 떨어진 황산벌 승마장을 찾아가 학교 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에 승마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담판을 지었다. 현재 도산초에는 골프, 승마, 축구, 스마트밴드, 오카리나, 한국화 등의 다양한 방과후학교 수업이 진행 중이다.
“도윤이는 6학년인데 이 학교가 가까운 곳도 아니라서 전학 오는걸 망설였어요. 그러나 웬걸,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먼저 다니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특색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입소문이 나자 학생들이 먼저 도산초를 찾았다. 계룡시에 사는 6학년 권도윤 학생도 학부모를 설득해서 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전교생은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비용이면 원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다. 건강증진을 위한 상설 아침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입맛 따라 골라들으며 통통하다는 말을 듣던 도윤 학생은 몸무게도 10㎏나 빠졌다고 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자던 박 교장의 결실이었을까, 도윤 학생 학부모의 자랑에 서울에 살던 친척 조카들까지 셋이나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

학교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
도산초 학생들 중 정작 인근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다른 지역이나 시내에서 전학 온 학생들은 시내까지 다니는 스쿨버스를 이용한다. 스쿨버스로 다 수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몫이다. 박 교장은 항상 4명의 학생들과 출퇴근을 함께하고, 몇몇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는 물론 인근 학생들까지 함께 차에 태워오며 등교를 돕는다.
한 반의 학생 수는 20명 내외로 각 학년마다 한 반씩 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학생들은 서로를 더욱 가족같이 생각한다. 대전에서 전학 온 6학년 박채연 학생은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너무 빨리 온다”며 친구들과 헤어지는 하교 길을 서운해 했다. 컴퓨터 게임, 학원 등에 치여 혼자 있는 생활이 익숙한 도시 아이들에 비해 학교가 놀이터인 이 학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려 놀고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매일 아침 열리는 ‘D(Dosan)-리그’는 전교생이 나와 축구경기를 하는 시간.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학생이 선수가 되어 학년별로 정해진 요일에 운동장에 설치된 간이 축구장에서 시합을 벌인다. 팀은 총 13개, 한 팀이 일 년에 갖는 경기만 해도 170경기가 넘는다. 몸을 부딪치고 팀워크를 맞춰야 할 수 있는 축구시합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동료에 대한 애정, 믿음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학교의 엄마, 아빠가 된다. S보드를 타다 넘어져 상처를 입은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교사들이 직접 울퉁불퉁한 운동장 둘레길에 시멘트를 깔아 평평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운동회인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라고 사시사철 펄럭이는 만국기를 달아놓았다.
이 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구가 또 있다. 바로 도산초를 명물에 올려놓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강사들이다. 아이패드를 이용해 악기를 연주하는 ‘스마트 밴드’의 경우 대전의 소문난 가족밴드를 박 교장이 직접 찾아가 섭외해왔다. 1년 넘게 진행해 온 강사의 요청에 따라 최근에는 실물 악기를 다루는 밴드부로도 발전했다. 박세영 강사는 “1주일에 한 번 밖에 방문하진 않지만 어느새 가족 같아졌다. 밴드부 개설처럼 쉽지 않을 것 같은 요구도 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적극 수용해주니 우리도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간이 축구장은 물론, 방과후학교 교실로 사용되는 간이 골프연습장은 지역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토요일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학교의 다양한 시설을 개방하다보니 어느새 도산초는 지역 주민과도 가족이 되었다.

살아있는 학교, 행복한 아이들
‘어린애들은 뛰어 놀면서 크는 거야’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요즘, 하루 종일 학교에서 운동장만 누비는 듯한 학생들에게 학업에 대한 걱정이 있지는 않을까.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하교 후 학원을 다닐 시간에 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을 하는 만큼, 교사들은 이들의 학업이 뒤처지지 않도록 정규 수업시간을 알차게 활용한다. 방과후학교 역시 영어캠프, 수학영재, 창의논술반 등을 운영하며 학업보충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도한다. 학습지나 교육자료를 아낌없이 나눠주고 무엇보다 기초실력 다지기에 집중하다보니, 기초학습부진 학생은 한 명도 없고 오히려 학력은 도 평균보다 5점이나 높다고 한다.
현재 이 학교 모든 교실에는 명패가 2개씩 붙어있다. ‘2학년-동시창작’, ‘도서실-한국화’, ‘급식실-오카리나’ 등. 정규 수업이 끝나면 이 교실은 학생들의 취미와 특기를 길러주는 놀이터로 변한다. 호박이 마법에 걸려 신데렐라를 태우는 멋진 마차가 된 것처럼, 도산초 교실은 종이 울리는 순간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학교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오늘도 친구로 변신하는 도산초 안에서 행복한 설렘을 마주한다.
박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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