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인천시교육청Wee센터 전문상담교사

2013.01.01 09:00:00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소심하고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이라 저에 대해선 드릴 말이 없어요. 그럼에도 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우리 학생들과 학교를 위해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천시교육청 Wee센터의 실장으로 재직 중인 박영희 전문상담교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는 극도로 아끼면서도 상담과 관심이 필요한 학교와 학생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는 동료, 후배 상담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경기도 정신보건센터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3개월간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경기지역 초·중·고등학생은 3000여 명에 이른다. 그 중 900명이 넘는 중·고교생은 실제로 자해 또는 자살을 시도했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우울증, 왕따, 학교폭력, 입시부담 등의 억눌린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탈출구는 그들의 목숨을 스스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눈빛으로 온몸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죠. 그 신호를 눈치 채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2005년 1기 전문상담교사로 인천남부교육청에 발령받은 박영희 교사가 맞이했던 첫 학생은 친족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였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이 세상에서 안정감을 느낄 곳 역시 아무데도 없어 괴로움 속에 생을 마감하려던 이 아이는 박 교사를 만나 마음을 돌릴 수 있었고, 해당학교의 교사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결국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얼마 전 모 여고에서는 가정의 불화로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 담긴 익명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쪽지를 발견한 교감이 박영희 교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필적대조를 하며 3일간 밤을 새운 끝에 쪽지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워낙 명랑하고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학생이었기에 아무도 그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박 교사 앞에서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염없이 떨리는 어깨가 힘겹게 말을 쏟아낸다.
“너무 힘들어요, 누가 좀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잡아주고, 지켜주고, 함께 이해하기
경제적 위기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당장 오늘 밤 잘 곳을 걱정해야만 했던 이 학생에게 교장·교감은 장학금 및 학비 등을 지원해주며 “학교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했다. 도움을 받게 된 학생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염려가 있으므로 모든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박 교사 역시 지속된 학교 방문에서 그 학생을 다시 마주쳤지만 ‘응, 그래, 너 잘 지내고 있구나’하고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나누었다. 문제 해결 후에도 계속 되는 지대한 관심은 오히려 학생이 과거의 일을 계속 떠올려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담자의 치유는 상담교사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비밀유지와 내담자 존중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기에, 학교장이나 센터장 등 해당 담당자들의 이해와 조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교사와 부모, 친구 등 내담자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의 주관이나 사회적 인식만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들이 우울해하고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왕따나 학교폭력의 피해자, 주위 기대 이하의 학업 성취도에 좌절하는 학생 등 주변에서 보내는 냉담한 시선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교사의 말에 자꾸 어긋나고 소위 비행을 일삼는 학생들의 행동도 남들과 다른 나를 이해시키려는 다소 거친 방법일 수 있다.
조금 다르게 생겼거나 다른 행동, 다른 생각을 한다고, 손가락질 하고 문제시하며 타자화 시키는 사회에서 아무리 당사자를 보듬어줘도 그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개인의 개별성, 독특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피해 혹은 문제 학생 상담과 함께 필요 시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주변인들의 인식변화다.
아직 부족한 인원과 충분하지 않은 지원으로 주변인 상담까지 함께 진행하기는 힘든 현실이지만, 박 교사는 그에게 주어지는 강연기회나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는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자살, 예방과 사후관리의 중요성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아마… 죽겠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던 학생은 결국 3일 뒤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함께 대화를 나눴던 친구의 죽음에 남은 아이는 잡아주지 못한 자신 탓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살사후 남겨진 학생들과 학교에 대한 수습을 위해 박 교사는 동료 상담교사들과 함께 ‘인천광역시교육청 Wee전문지원단’을 조직했다. 학교폭력 및 자살사후 위기중재를 위한 학교개입과 QPR(Question-Persuade-Refer)자살예방교육 등을 위해 별도의 교육까지 받은 상담교사들의 모임으로, 학교폭력이나 자살과 같은 최고위기 상황에 직접적·전문적 개입이 가능한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팀이라고 한다.
박 교사는 자살사건이 일어났던 학교에 방문해 사후 처리를 하면서 남은 이들에게 생긴 커다란 상처를 보았다. 친구의 자살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한데서 오는 죄책감은 물론, 죽은 친구의 감정을 동일시 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또 다시 자살을 결심하는 학생까지. 죽음에 대한 뒷수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그 상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상실의 상처는 제때 올바로 치료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징후를 깨닫기는 어려웠고, 이미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준비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각한 자살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자살 예방이나 사후처리를 위한 부분이 한참 많이 부족해요. 사고가 터지기 전까진, 아무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할까요. 더 많은 상담교사의 확보와 함께 저희와 같은 전문지원단이 전국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어요.”
아직 그들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지만 Wee전문지원단은 오늘도 위기에 빠진 학교에 찾아가 묵묵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한다. 학교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살의 징후를 깨닫게 하여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위기를 예방하게 하고, 죽은 아이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심층적인 애도작업을 실시한다. 남은 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신속히 상처를 씻어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
박 교사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교육여건 속에서 고통 받는 학생들만큼이나 지치고 상처받는 교사들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방법을 몰라서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숨 막히는 학교생활로 명예퇴직을 고려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교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이기에, 교사의 마음 치유가 우선 되어야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다.
“교사들이 힘을 내야 학교도 살아날 수 있어요.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라도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이해해주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박 교사는 상처받은 자신을 돌보는 자기치유법, 학생과 소통하는 법 등을 다루는 교사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Wee센터 소속의 상담교사인 본인이 정작 교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의 업무분야, 업무량과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예산 확보와 같은 현실적인 사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사들이 기운 나는 학교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몇 년 째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기획 중에 있다는 그는 “학생과 교사들을 위한 다방면의 관심과 교사 연수·교육과 같이 정말 필요한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학교를 치유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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