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바라기'서순원 김천 동신초 교사

2013.05.01 09:00:00

자나 깨나 학생들만 생각하며 승진도 마다하고 평교사로 재직한지 39년, 2012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인 서순원 교사의 모든 행보는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학생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 짓는 서 교사의 밝은 얼굴은 아낌없이 생명의 에너지를 나눠주는 오월의 햇살 같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철부지 교사
농촌 벽지학교 근무, 익명의 장학금, 무료 독서·문예지도,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생일은 물론 어린이날을 비롯해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같은 기념일까지 챙겨주는 교사가 있다. 작년에는 자신의 전원주택으로 반 아이들 모두를 1박 2일 캠프에 초대해 백일장도 열고 시 낭송회도 가졌다면서 아직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는, 바로 서순원 교사의 이야기다.
그가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시절만 해도 벽지학교에 대한 가산점 등의 혜택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서 교사는 자신의 도움을 더욱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가고 싶다며 벽지 학교 근무를 자청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 승진 기회도 마다했다. 
“사실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승진을 위한 점수도 부족할거예요. 하지만 그건 어차피 저에게 필요 없는 점수인거죠. 저는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평교사가 좋아요.”
서 교사는 언제나 학교에 제일 먼저 출근한다. 집안일도 뒤로 미루고 새벽같이 학교에 도착해서 환기도 시킨다. 여름엔 시원한 공기로, 겨울엔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싶어서란다.
도대체 아이들 어디가 그렇게 좋을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서 교사가 대답한다. “그냥 좋은걸 어떻게 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서 다 해주고 싶은데.”
서 교사는 아무런 이유나 바라는 것도 없이 아이들만 생각한다. 남들이 바보같이 산다고 손가락질 하고, 철부지라고 부른다 해도 상관없다. 그는 그저 지금 그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서 교사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성원들 간의 믿음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없다면 교육도 없다. 그의 큰 사랑을 느껴서일까, 전교생이 19명이던 양각분교 교사 시절에는 ‘선생님이 정말 좋아, 학교에 가면 언제든 선생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저녁에도, 일요일에도 서 교사를 찾아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 이야기만 시작하면 함박웃음을 짓는 서 교사지만 모든 학생들이 다 그를 잘 따랐던 것은 아니다. 힘들게 했던 학생들도 있고, 학생 걱정에 속을 썩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라고 힘든 일이 왜 없겠어요. 첫 발령 학교에서 만났던 주억이는 전교에서 알아주는 문제아였어요. 쫓아다니면서 가르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했는데 그 어떤 것도 먹히지 않더라고요. 하루는 회초리를 구해오게 해서 그걸로 제 손바닥을 계속 때렸어요. 그 아이가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교사인 제가 잘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요.”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일화 이후로 이 학생은 스스로 공부는 물론 청소도, 학급일도 앞장서 하며 서 교사의 속을 썩이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그가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이 얼마나 컸으면, 소년가장으로 학교에서 알아주는 문제아였던 한 아이는 먼저 찾아와 자신의 담임이 돼달라고도 했다.
학생 때문에 힘든 적은 있어도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그는 ‘꾸중은 짧지만 감화는 영원하다’고, 아무리 말썽쟁이더라도 아이를 변화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

마음을 표현하고 다듬는 글쓰기 지도
유난한 아이들 사랑만으로도 주목받는 서 교사에게 독특한 이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라는 것이다. 식용으로 팔려가는 개를 보며 느낀 기분을 토대로 써내려간 동화 ‘왕눈이와 돌이’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덜컥 당선됐다. 이후 동화집, 수필집, 소설집, 시집 등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이 책들 역시 모두 자비로 출판해서 돈도 받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학교, 교도소 등 그의 책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증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는 철부지, 서순원 교사답다.
작가가 되기 위해 따로 공부를 한 적은 없다지만 그는 발령 첫 해부터 학생들에게 문예지도를 해왔다. 좋은 글은 마음을 정화시키고, 또 글쓰기는 마음을 표현하고 다듬는 법을 배우게 하기에 인성교육에도 좋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힘들어하던 민지는 서 교사를 만나 자신의 삶을 글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웠다. 이후 ‘김천예술제’에 나가 차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늘더니 각종 대회마다 상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교실에서 쓰는 글과 자연에 나가 쓰는 글은 많은 차이가 있어요. 자연 속에서 쓰는 시에서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죠. 그래서 틈 나는 대로 함께 나가서 자연을 접하고, 백일장도 열고, 시낭송회도 가지려고 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먼저 서 교사를 거쳐 간 학생들이 쓴 작품 중 좋은 것을 읽어보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 후 또 본인들의 글을 쓰고 발표하며 나누는 기회를 통해 자연스레 글의 맛과 글의 힘을 깨닫는다.
현재도 방과 후 활동으로 열려있는 서 교사의 글쓰기 교실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학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며 강사료도 따로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과 함께, “나이 먹을 틈도 없어요”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삶의 이유가 없다는 그는 “교사는 자신의 천직”이라고 강조한다. 정말 ‘학생바보’라는 말이 어울린다. 마치 그에겐 학생만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네 자녀를 둔 엄마다. 교직 생활 초기에는 시댁의 반대로 교단을 잠깐 떠나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알지 못할 병으로 시름시름 앓게 되면서 야위어 몸도 가누기 힘들어졌고, 결국 1년 7개월 만에 다시 교단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년퇴직 2년여를 앞두고 있다. 그는 퇴직 후에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교육 봉사를 하면 우리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지 않겠어요? 오후에 학교로 찾아가 글쓰기 지도를 하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을 집에 초대해서 백일장도 하고, 시 낭송회도 열고.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 행복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외모도, 생각도, 퇴직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인 듯 그 또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서 교사에게 마지막으로 그 비결을 물었다. 다시 한 번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가 대답한다.
“평생을 이렇게 순수한 애들하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제가 늙겠어요?”
박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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