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싶은 학교' 진안 오천초등학교

2013.06.01 09:00:00

전북 진안군 진안읍 죽산리 산골마을에 위치한 오천초등학교. 학생 수 감소로 한때 폐교위기에 놓였던 오천초는 다양한 학력향상 프로그램과 특기·적성교육, 생태학습장을 활용한 인성교육 등을 실시하며 ‘오고 싶은 학교, 즐거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싱그러운 봄 햇살을 닮은 오천초 아이들을 만났다.


오후 3시, 정규수업은 모두 끝났지만 오천초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방과후 교실과 엄마품 돌봄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산골 오지에 위치한 오천초는 지역 여건상 사교육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맞벌이 가정이 많아 하교 후에도 아이들만 집에 남겨지는 경우가 대부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학교, 특기·적성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원했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규수업이 끝난 후부터 오후 5시까지는 방과후 교실을,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는 엄마품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한자 등 기초교과를 중심으로 한 학력신장 프로그램과 바이올린, 미술, 서예, 외발자전거, 음악줄넘기 등과 같은 특기·적성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학교에서 밤 9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니 학부모들은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고, 아이들은 다양한 영역을 배울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죠.”
권병규 교장은 “교육과정을 독창적으로 운영한 뒤로 인근 지역은 물론, 외부에도 입소문이 나면서 입학이나 전학 관련 문의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기주도학습법으로 ‘학습부진아 제로’
오천초 방과후 교실에서는 조금 특별한 수업이 열린다. 이른바 ‘사다리 학습’. 권 교장은 이에 대해 “학습자의 긍정성을 증진시키는 교육법”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수준이나 능력이 각기 다른 학생을 한 장소에서 동일한 방법과 시간을 투여해 가르친다고 가정해 봅시다. 최정상에 있는 한두 명 이외에 나머지 다른 학생들은 부정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성이 생긴 아이는 흥미를 잃게 되고, 결국 학습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죠.”
권 교장은 아이들이 학습에 대해 긍정성을 갖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사다리 학습을 개발, 적용했다. 먼저 저학년 수준의 기초단계에서부터 고학년 수준에 해당하는 고급단계까지 수준별·단계별 자료를 한 권에 담아 전교생에게 제공했다. 아이들은 이 교재를 활용해 자기 수준에 맞는 단계를 찾아 스스로 학습하고 채점하며 점차 실력을 쌓아간다. 학습부진아나 학습우수자 모두 하나의 학습 자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다는 게 권 교장의 설명이다.
또한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난이도별 급수를 정하기도 했다.
“가령 수학과목의 도형 단원을 1학년 수준에서 6학년 수준까지 한 줄로 세우면 80여 개의 급수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각 급수마다 무리 없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학습 난이도의 급간을 고르게 편성했습니다.”
지금까지 개발한 사다리 학습 자료만도 40여 권. 사다리 학습의 효과는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2006년 순창 옥천초 교감 재직 시절, 사다리 학습으로 학습부진아 18명 전원을 구제했고, 순창 쌍치초 교감으로 근무하면서는 학습부진아뿐만 아니라 전교생의 학력을 크게 신장시키기도 했다. 2011년 9월 오천초 교장 부임 이후에도 사다리 학습을 통해 학습부진아 없는 학교를 만들어냈다.
그밖에도 오천초는 영어 단어 2000개와 문장 700개 익히기,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한자 2000자 익히기, 국가공인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 획득하기, 인문도서 100권 읽기, 독해 및 논술교육 강화하기, 수학 무학년제 운영 등 독창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학력향상에 힘쓰고 있다.

특기·적성, 인성교육 효과 톡톡
지난 4월 오천초 5학년 김가영 양이 소방방재청에서 주관하는 초등학생 대상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포스터 공모전에 참여, 최우수작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김 양은 공모전에서 ‘함께하는 재난예방 행복웃음 안전한국’이라는 표어를 담아 단 1명에게 주어지는 안전행정부장관상을 받았다. 김 양은 “미술학원에 다닌 적은 없지만 학교에서 특기·적성시간에 배운 미술수업이 그림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천초는 미술, 서예, 바이올린, 사진, 외발자전거, 음악줄넘기 등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선택 수업이 아닌 전 영역에 걸쳐 전교생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 교육에 필요한 악기나 도구는 학교 예산으로 일괄 구입해 아이들에게 제공한다. 이는 학생 수가 많지 않은 소규모 학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액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실력 있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준 높은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학교 뒤편에 700제곱미터 규모의 생태학습장을 조성해 인성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은 텃밭에 상추, 오이, 가지, 배추, 토마토, 옥수수 등을 직접 심고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은 물론, 나눔과 배려를 배운다. 친환경으로 재배해 수확한 채소는 매일 점심 아이들의 식탁에 오른다. 때로는 전교생이 비빔밥을 만들어 나눠 먹는 체험행사나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한다. 지난 겨울에는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김치를 담가 마을 어르신들께 전달하기도 했다.
권 교장은 “그동안 편식했던 아이들이 직접 채소를 키우고 수확하며 음식을 골고루 먹기 시작했다”며 “주변 사람들과 채소를 나눠 먹으며 남을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났고, 자연에 대한 소중함도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폐교 위기에서 전학 오고 싶은 학교로
오천초의 특별한 학습법과 특기·적성교육, 인성교육 등이 점차 외부에 알려지게 되자 한때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는 이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서울, 전주 등 대도시에서 아이들이 전학을 오기 시작한 것. 그 결과 2011년 학생 수 18명, 3학급에서 2013년 현재 학생 수 45명, 6학급으로 크게 늘었다. 오천초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교사들도 많아져 전체 교사 수도 3명에서 7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교육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진안교육청과 전라북도교육청, 진안군청, 한국수자원공사, 봉사단체인 풍패라이온스 등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노후한 학교 곳곳을 보수했으며 오는 2015년에는 학교 신축 계획도 세워놓았다. 또한 진안군에서도 전입학생 가족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 등 여러 가지 시책을 구상 중이다.
학교의 이러한 변화를 가장 반기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6학년 구경모 군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도시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4학년 송유근 군도 “친구들이 많아져 학교에 오는 게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 권병규 진안 오천초 교장 “인성·학력보다 긍정성 교육이 먼저”
학교교육은 인성교육과 학력교육을 큰 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인성교육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인성이나 학력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긍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긍정적 자아관이 확립되면 인성함양과 학력신장은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인성과 학력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 학생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자존감이나 가치, 자긍심, 자신감 등을 일깨워주는 긍정성 교육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생 개개인의 지능과 정서, 학습에 대한 흥미 등을 고려한 자기주도적 개별화 학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김혜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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