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교육은 부담 아니라 혜택, 전국 학생들 골고루 다 받아야!

2013.11.01 09:00:00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지향점

“無窮花 三千里 華麗 江山! 大韓 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이렇듯 한자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함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고만 적혀 있는 교재를 보다 보니, 한자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만 알아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됐다.



초기 암 같은 ‘단어 불감증’
한글만 알아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자 교육 당국도 그런 착각으로 말미암아 한글전용 교과서를 만들고, 한자교육은 물론 한자어 지도도 외면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학생들은 아파도 아픈 줄 모르는 초기 암 (癌)을 방불케 하는 ‘단어 불감증’에 걸리게 됐다.
교육 당국, 교원, 학생 모두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이런 와중에 학생들을 더 이상 한쪽 날개로만 날게 할 수는 없다. 두 쪽 나래를 활짝 펴야 높이 그리고 멀리 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깨닫고 선각자적 역할을 한 곳이 있으니 바로 서울시교육청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특색사업의 하나로 ‘한자교육 활성화’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이다. 이를 크게 환영한다. 이 프로그램이 육영흥국(育英興國)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교육은 ‘부담’이 아니라 ‘혜택’이다. 이 시책의 혜택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다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는데 일조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참고 사항을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몇 자 적어 본다.

초등 3학년이 어휘학습의 적기
첫째, 한자교육에 앞서 한자어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휘(한자어) 지도는 매일 매 과목 수업시간에 담임교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교과서에 한자는 한 글자도 없다. 그러나 한자어는 석류 알처럼 송송 박혀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교과서에 한자가 그대로 노출(露出)되어 있기에 ‘선(先) 한자-후(後) 한자어’ 교육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모든 한자어가 한글로만 적혀 있기 때문에 ‘선(先) 한자어-후(後) 한자’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한자어 지도는 전문 한자 교사의 몫이 아니라 모든 담임교사의 몫이다.
독서학습(Learning to read)이 끝나고 학습독서(Reading to learn)가 시작되는 3학년 때가 어휘 학습의 적기다. 그래서 이때에 국어사전 찾기 단원이 설정되어 있다. 국어사전 찾기와 한자어 학습을 병행해야 효과적이다. 3학년 이후의 고학년 학생들이 개념어, 핵심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국어사전을 찾아 그 속뜻을 정리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저(低)비용-고(高)효율의 학습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속담은 어휘 학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능성 등산복’같이 유용한 국어사전
둘째, 한자어 공부는 낱낱 한자의 속뜻(힌트) 학습이 관건이다. 알고 보면 한자어는 매우 쉽고 재미있다. 그 가운데 의미를 암시하는 힌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뱀은 파충류이다’의 ‘파충류’는 3개의 힌트가 주어져 있다. ‘기어 다닐 파’(爬), ‘벌레 충’(蟲), ‘무리 류’(類)가 그것이다. 이 3개의 힌트를 알면 ‘기어 다니는(爬) 벌레(蟲) 같은 동물의 무리(類)’라는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한자어는 왜 그런 뜻이 되는지, 그 이유(=속뜻, 언어학에서는 Morphological motivation이라 함)를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그렇게 하자면 예전에는 국어사전과 한자 옥편을 동시에 다 찾아보아야 했다. 요즘은 국어사전 하나만으로도 가능해졌다. 기능성 등산복이 있는 것처럼 기능성 국어사전이 있기 때문이다.

자의(字義) 중심 교육으로 어휘력 키워야
셋째, 방과후 또는 창체활동 시간에 실시하는 한자 교육은 자의(字義)를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재래식 한자 교육은 자형을 중심으로 쓰기에 치중하다 보니 어렵다는 인식과 반감을 사게 됐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자는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義)라는 3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한자어를 한글전용으로 표기하는 관례에서는 자형과 자음은 그 상대적 중요성이 비교적 낮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의 (字義)다.
자의 중심의 한자 교육이란 낱낱 한자가 쓰인 단어를 많이 익히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음 심’(心)자를 공부하면서, 심정(心情), 심기(心氣), 심성(心性), 심란(心亂), 심리(心理), 심사(心思) 같은 전순(前順) 어휘는 물론이고, 결심(決心), 고심(苦心), 관심(關心), 내심(內心), 열심(熱心), 명심(銘心), 동심(童心), 방심(放心), 한심(寒心), 선심(善心), 세심(細心), 조심(操心) 같은 역순(逆順) 어휘도 함께 익힘으로써 어휘력 신장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학습이 획수와 필순을 익히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함을 한자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한자 교육은 이 점을 간과(看過)했다.

한자를 각 교육대학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넷째, 교사의 한자 소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교사의 교수 역량은 한자 지식에 의해 배가(倍加)된다. 독서 지도는 한글만 알아도 되지만 독해 지도는 한자도 알아야 한다. ‘쓰나미’란 일본말을 쓰지 않기 위해선 ‘해일’이란 단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다 해’(海), ‘넘칠 일’(溢)이란 속뜻을 말해 줄 수 있는 정도의 한자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 교육대학의 교과과정에 한자 과목이 필수로 지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못해 가련하다. 대학에 다닐 때 배우지도 아니한 한자 지식을 수업 시간에 활용해야 하는 교사들의 입장이! 한 권의 책만 있어도 누구나 금방 한자를 마스터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있어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교사가 한자에 능통해야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
‘왕대밭에 왕대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한자를 잘 알아야 ‘왕대밭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국 각 교육대학의 교육과정에서 한자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야 한다. 한글만 아는 교사에 비해 한자도 잘 아는 교사가 훨씬 더 유능하고 유식한 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한자 두 날개로 날 수 있도록
끝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종대왕 덕분에 두 날개로 훨훨 날 수 있는 행복한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음(音)을 나타내는[表] 데 기막히게 좋은 ‘한글’이라는 날개, 그리고 뜻[意]을 나타내는[表] 데 효과적인 ‘한자’라는 날개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 날개로만 날려고 40년째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한글’과 ‘한자’ 다 잘 알도록 교육을 시킴으로써 육영흥국(育英興國)의 꿈을 이룰 수 있다.
한자 교육은 ‘부담’이 아니라 ‘혜택’이다. 그 교육적 혜택을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다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진정한 애국자, 유능한 애국자, 유식한 애국자가 양산되기 위해서는 두 날개로 ‘지식의 바다’ 위를 드높이 날아오르도록 해야 한다. 졸저 <선생님 한자책>의 머리말에서 한 말을 인용하면서 졸고를 맺는다.
“새는 두 날개가 튼튼해야 높이 날고,
사람은 한자도 잘 알아야 높이 된다.”
전광진 성균관대 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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