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에 새 마음을 먹으면서 내가 구하고 나아가려는 방향이 나의 진정한 욕구이며 욕망인지를 스스로 물어보자. 그런데 자본주의 가치에 휘둘리는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욕구와 욕망을 모방하고 추종하면서 그것을 나의 목표처럼 떠받들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짜 욕망’에 휘둘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런 가짜 욕망 구조 속에 함몰되어 있음을 모르고 산다. 내 마음을 제대로 잘 찾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해에는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1. ‘먹을수록 많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 놓인 음식은 먹을수록 줄어드는 법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말해 보라는 수수께끼다. 정답은 ‘나이’다. ‘나이’는 먹을수록 많아진다. ‘나이 먹다’라는 말의 의미와 용법을 재치 넘치게 살려서 만든 수수께끼다. 또 한 살 나이를 먹어야 하는 새해인 시점에서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렇다면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인가. 이 역시 ‘나이’가 답이다. 그러나 답은 ‘나이’뿐이 아니다. 욕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진 않는다. 그러므로 ‘욕’도 정답이 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점수를 잃는 것도 ‘먹는 것’에 들어간다. 예컨대 “우리 팀이 벌써 두 골이나 먹었다”라고 했을 때의 ‘먹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경우는 배가 부르기는커녕 배가 아파지는 편에 가까운 정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묘미가 있다. 밥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마음’을 먹다니? 아니 도대체 ‘마음’이란 것이 눈에 보이기나 해야 말이지. 욕을 먹는 것이나 골을 먹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눈으로 보이는 장면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을 어떻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사전적 풀이로만 보면 ‘마음을 먹다’는 ‘생각이나 느낌 등을 마음에 품다’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결심하다’라는 정도의 뜻이다. 이어령 교수는 이 표현이 한국 사람의 의식과 정서를 잘 나타낸 말이라고 강조한다.
원래 ‘먹다’라는 말은 음식물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많다. 먹을 수 있는 것 가운데 ‘마음’을 집어넣은 한국인들의 심리는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할까. ‘먹다’는 동사지만 자연스럽게 음식물을 떠올리게 하고, 음식물은 감각적 요소를 강하게 떠올리게 한다. 맛이나 향기나 색깔 그리고 혀에 와 닿는 촉감 등의 감각들이 함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먹다’는 이런 모든 요소를 내 안으로 수렴해 가는 것이다. 이 말을 오랜 시간 써 오는 사이에 이 말은 한국인의 심리와 정서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파생되어 갔다.
예전에 시골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녔을 즈음의 일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자 할 때, 단어장을 한 장 외우고 나면 그것을 찢어서 씹어 먹는 학생들이 드물게 있었다. 간혹 선생님 중에도 너희 선배 아무개가 그 정도로 단어를 열심히 익혔다고 말해 주었다. 아마도 영어 공부를 자극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 학생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어 단어를 정복해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는 일’이 먼저 있었을 것이다. 마음먹은 바를 더 확실하게 다짐하고 실천하는 상징적 행위로 단어장 페이지를 찢어서 먹는 행위를 구체화했을 것이다.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자못 비장해지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경우에 ‘먹는다는 것’은 내 의지로 그 무엇인가를 완전히 정복해 낸다는 심리적 상태를 나타낸다. 먹음으로써 비로소 내 안에 그것을 온전하게 가두어 두는 것이다. 즉 내 것으로 확정 짓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을 먹는다고 했을 때는 ‘어떤 뜻’을 내가 먹어 삼켜서 내 마음 안에 확실하게 잡아 둔다는 것이다. 마치 음식을 먹어서 내 영양소로 잡아 두듯이 말이다. ‘어떤 뜻’이라는 것도 내가 품고자 하는 어떤 마음의 일종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내 마음 안에 어떤 특정한 마음 하나를 각별하게 간직하거나 심어 둔다는 뜻이 된다.
2.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그야말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간이다. 이맘때면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둘러보고 새해의 새로운 지향과 목표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올 한 해는 꼭 이렇게 해 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마음만 먹어놓고 실행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해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작심삼일이라도 마음을 안 먹어 본 사람보다는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계획만 세우지 실천이 부실하니 아예 계획은 세워서 무엇하느냐고 야단치는 부모도 있겠지만 작심한다는 것, 즉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나게 좋은 것이다. 더구나 발달시기의 청소년들에게는 되도록 자주 마음을 먹는 것이 좋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연결된다. 모든 마음먹기는 즉 모든 계획 세우기는 상위인지(上位認知, meta cognition)의 사고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행동이다. 공연히 아무런 계기나 반성도 없이 우연히 마음을 먹는 경우는 없다. 마음을 먹는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이다. 마음을 먹고 그것을 밀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강한 자기 주도성과 자발성이 반드시 숨어 있다. 이런 사람치고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사상도 있다. 마음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계관을 바꾸는 것까지도 마음먹기에 속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마음먹기에는 일단 이렇듯 바람직한 정신의 기제들이 놓여 있다. 문제는 마음먹기의 방향과 내용이 무엇인지에 있다.
3. 새해를 맞이하면서 먹는 마음이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가지도록 할 것인가. 우선 가짜 목표를 향해 마음먹기를 하지 말자. 가짜 목표는 가짜 욕망에서 나온다. 마음을 제대로 먹어야 한다.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가. 마음 안에 어떤 욕망을 가득 채우는 쪽으로 마음을 먹을 것인가. 마음을 비우거나 내려놓는 쪽으로 마음먹기를 할 것인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에 대입해서 마음먹기를 설계해 보자. 여기서 지혜가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