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학생, 칭찬하는 수업
“저는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 김민성입니다.”
1학년 미반의 2학기 일곱 번째 도덕수업이 있었던 지난해 11월 29일. 30여 명의 학생이 하나씩 차례로 일어나 ‘꿈출석’을 외치고 있다. 10년 후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이루는 데 중요한 미덕 세 가지와 소망을 말하는 ‘꿈출석’은 박영하 교사 수업의 특징 중 하나다. “저는 사랑과 열정으로 여러분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 박영하입니다”라고 마무리하자 학생들이 자연스레 손뼉을 치며 ‘칭찬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칭찬의 소리 맑은소리, 칭찬! 칭찬! 고운 소리, 칭찬! 칭찬! 칭찬합시다. 칭찬~.”
칭찬가는 수업이 시작한다는 것을 암시해주기 때문에 집중도를 높일 수 있어 매시간 시작 전에 부른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나 했더니 이번엔 ‘칭찬하기’ 시간이란다. 1번부터 돌아가며 2명의 학생이 나와서 누군가를 칭찬하는데, 이때 그 사람의 장점과 미덕을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칭찬을 하면서 욕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칭찬을 하면 칭찬 받는 상대도 기분이 좋겠지만 하는 사람도 언어가 순화되고 그 사람을 본받으려는 현상이 일어나요. 또,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는 눈이 생기죠. 이런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이 ‘칭찬 수업’의 핵심입니다.”
수업의 주체는 교사가 아닌 학생이어야
이후 수업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 상황을 역할극으로 연기하는 ‘꿈연극’, 교과서 진도에 맞춰 선정한 ‘꿈노래’와 ‘꿈시’, ‘꿈이야기’로 이어진다. 교사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가 학생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박 교사는 수업 주제에 접목시켜 도입했다고 한다. 오늘은 ‘민족 통합과 한민족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주제에 맞게 북한가요를 감상했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대홍단 감자’를 듣고 학생들은 마음에 닿는 노랫말과 느낌에 대한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북한도 통일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는 노혜림 학생과 “가사처럼 통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고, 중독성 있는 노래라 좋았다”는 이선양 학생의 대답에 박 교사는 “북한의 노래에는 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체제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며 “휘파람 노래에 ‘혁신자’라는 칭호가 등장하는 까닭은 노동생산성 향상을 촉진시키려는 의도를 가사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박 교사의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수업의 주체가 교사가 아닌 학생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 교사가 한마디 툭 던지면 학생들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자신의 느낀 점이나 생각을 말하기 바쁘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질문과 발표를 할 줄 모른다’는 통설을 뒤엎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수업에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사가 여러 가지 동기를 부여하고, 기회를 주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그의 교직철학에서 비롯됐다.
“수업은 교사 혼자 진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이 참여할 기회를 줌으로써 학생들이 표현력과 자발성을 기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에 발표와 같은 여러 활동을 시키고 있어요. 질문이 없는 수업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학생과 소통하지 않는 수업도 문제가 있죠.”
물론 학생들의 발표력이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수업시간에 궁금한 점을 질문하지 않고, 물어봐도 대답 없는 학생들에게 질문과 발표를 유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발표를 제도화시켰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늘 질문을 하는 학생만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학생만 대답해요. 그게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그 대안으로 수행평가에 질문, 대답, 발표를 포함시켜 최소 5번 이상 하도록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점수 5점이 깎이죠.”
어떤 교사들은 질문을 강제로 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봉사활동도 제도화하면서 생긴 문제점이 있듯이 질문, 발표, 대답도 점수 때문이 아니라 학생을 어떻게 하면 수업에 참여시킬까 생각하다 만들어진 아이디어로 수업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박 교사의 설명이다. 대신,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학생은 따로 ‘도덕 수업 카페’에 글을 올리도록 했다. 내성적인 학생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 될까 우려한 박 교사의 배려다. 이렇게 계속 발표를 습관화하다 보니 이제는 학생들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꿈을 키워주는 것이 교사의 사명
이런 박 교사도 처음부터 꿈과 끼 그리고 행복을 가르치는 수업을 하진 않았다.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학생들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책만 읽다 나오는 초짜 교사였다. 학생들은 그에게 진도만 나간다고 해서 진돗개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학생들이 저를 ‘진돗개’나 ‘나 홀로 50분’ 같은 별명을 지어 부를 땐 참 씁쓸하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신문을 스크랩 하도록 했죠. 그 다음에는 미담기사나 본인의 롤 모델을 스크랩한 뒤 그 인물을 닮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체험을 쓰게 하는 선행록을 쓰게 했어요.”
학생과 소통하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고심 끝에 노래, 시, 칭찬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쓰게 했던 선행록은 작년에 개발한 꿈노트로 바뀌었다. 꿈노트란 꿈을 이루기 위한 20가지 프로젝트를 일주일에 한 번씩 수행케 하는 것인데, 행복교육에서 추구하는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의 취지와도 부합한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한다.
선행록과 꿈노트의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학생들 대부분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사성도 밝아졌다는 것이다. 소극적이던 학생이 박 교사가 선행록에 남긴 ‘글을 잘 쓰는구나’라는 칭찬에 힘입어 방송작가가 되기도 했다. 박 교사는 이렇듯 학생에게 교사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교사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교직이 밥벌이 수단이 아닌 하늘이 주신 천직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해요. 의사는 수술을 잘 못했을 때 한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 있지만 교사는 수백 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그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어야 하죠. 두 번째는 전문성이에요. 수업시간에 질문이 나오거나 의문이 제기됐을 때 속 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명쾌한 논리와 지식이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학생을 사랑해야 해요. 그래야 훨씬 더 행복한 학교가 될 수 있어요.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학생이 불행해져요.”
마음으로 느끼며 배우는 도덕. 그 마음이 움직여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이며, 자신의 수업이 기다려지는 설렘이 있기를 바라는 박 교사. 그의 소망처럼 오늘도 학생들은 꿈과 함께 성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