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 스며들어있는 ‘상생’과 ‘배려’의 철학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 특권계층의 사회적 책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집안인 경주 최 부잣집. ‘육연(六然) 육훈(六訓)’이라는 삶의 철학이 집안 곳곳 녹아져 있는 최 부잣집을 거닐고 있노라면 바쁜 일상 때문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상생의 철학’과 ‘겸손과 배려’가 슬며시 떠올라 마음을 부끄럽게 한다. 더불어 이제는 영남대학교 소유가 되어버린 그들의 고택을 보면서 ‘지켜줘야 할 것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느껴진다.
사랑채 현판에서 만난 배려의 미학 ‘둔차(鈍次)’경주 최 부잣집은 경주 교촌 한옥마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시골 농촌 골목길과도 같은 살가운 풍경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경주 교촌은 신라에서부터 조선으로 이어져오는 서라벌의 역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대 최진립(최치원의 17세 손)부터 12대 최 준까지 400여 년 동안 ‘가진 자의 의무’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던 경주 최 부잣집. 그 정신의 백미는 대문을 들어서면 마주치는 사랑채에 걸린 현판 ‘둔차(鈍次)’에서 엿볼 수 있다. ‘어리석은 듯 드러나지 않고 버금감’이라는 의미의 둔차는 최씨 가문의 ‘적정 만족의 원리’를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가득차면 비우게 되어 있는 법. 그러나 우리는 만족을 모른 채 얼마나 탐욕스럽게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일등이 아니어도 버금감에 만족하고 제 못난 듯 어리석어 드러나지 않게 둥글둥글 겸손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을 배려하며 함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요석궁과 경주법주최 부잣집 후손들이 경영하고 있는 한정식집 요석궁과 경주법주 역시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부자가 아니면 꿈도 못 꿨을 식재료와 대단한 정성을 담아낸 양반의 밥상은 경주에 가면 한번쯤 먹어봄직하다. 최소 30분은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다는 근처 ‘경주 교리김밥집’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KTX 경부선 2단계 구간이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경주까지 2시간. 자동차로 2시간 거리가 대전 근방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축지법과 다를 바 없다. 최 부잣집을 거쳐 경주시내 문화재 탐방도 겸하고 싶다면 승용차보다는 자전거나 스쿠터가 적합하다. 주말이면 인기 관광지는 교통체증이 심하기도 하지만 관광지마다 별도로 받는 주차요금은 ‘헉’소리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