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 2월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하자마자 수염을 길렀다. 나름의 ‘자유인’이 되었다는 표시였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동화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나는 행복하다. 한낮에 즐기는 여유도 즐겁다. 그런데 무슨 놀부 심보인지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선생님들을 훼방 놓고 다닌다. 명퇴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남보다 동경추구지수가 높았다면 명예퇴직도 괜찮다. 그래도 가장 명예로운 퇴직은 정년퇴직이다.
사례 1
“이번에 명퇴 신청했어요. 연금 삭감한대요. 이꼴저꼴 보기 싫은 것도 많아서 전부터 망설여왔는데 이번 기회에 사표 썼어요. 아, 그런데 이거 내 차례까지 돌아오려나……. 요즘 명퇴가 로또 당첨이라고 하니……” (A교단 교사)
사례 2
“그래도 애들과 학교가 좋잖아요? 내 체력이 받쳐주는데 왜 그만둬요. 명퇴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이제 퇴직했으니 ‘내가 하고 싶었던 일’ 할 거예요.” (올 2월 말 정년퇴직한 B교단교사)
사례 3
“더 이상 학교에 남아 있기 힘들 것 같아요. 국·영·수는 덜 힘들다고들 하는데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요즘 학생들 영어 발음이 현대화되었어요. 한계를 느껴요. 게다가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업무 양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요. 젊은 선생님을 따라가기 힘들어요.” (C교단 교사)
사례 4
“학교 경영이 해마다 어려워져. 나아지는 건 없고 책임만 늘어.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더 그래. 어깨가 무거워.”
“명퇴하세요. 강의 나가시는 대학도 있고……. 편히 사시지요.”
“그래도 그건……. 난 교직이 어울리는 것 같아. 학교에 오면 일이 있고 일단 힘이 나거든. 아이들 보는 게 행복해.” (정년 2년 남은 D교장)
사례 5
“요즈음 학교 힘들어. 명퇴한 당신이 제일 부러워.”
“그걸 뭐 부러워해? 종이 한 장 써서 던지면 되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다가) “용기도 부러워. 어떻게 그렇게 명퇴 결정을 쉽게 했어?”
“오래 생각한 거야. 결론은 더 나이 먹기 전에 명퇴하고 새로 출발하자는 거였어. 아쉽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보람이 클 거로 생각했지. 그동안 교직에 열정 다 쏟아 넣었잖아? 그래도 어려운 학교 현장을 나만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해.” (올 2월 말 명예퇴직한 F교장)
웬만큼 경력 있는 선생님들이 명예퇴직을 입에 올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최근 교원들의 명예퇴직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 지도의 어려움, 교권 추락을 부추기는 사회 풍토,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민원 폭주 등으로 교원의 자존심이 바닥을 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명퇴 수당 미확보 및 공무원연금법 개정이라는 기름 불꽃이 그나마 남아있던 교원의 자존심을 시커멓게 그을리고 있다. 명예롭게 퇴직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국민연금 액수와 공무원연금 액수를 단순 비교하는 단계에 오면 아연실색하게 된다. <사례 1>에 해당하는 선생님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적으로, 교원 개인적으로, 그리고 학생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특히 <사례 3>에 해당하는 선생님에게는 힘과 용기를 주는 국가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사례 2>나 <사례 4>는 진정 부러운 선생님들이다. 교사 교육을 받을 때 성직관, 전문직관, 노동직관 등 교직관을 배운 기억이 난다. <사례 2>의 선생님은 성직관이 알배긴 사람이다. 혹자는 ‘연금 삭감 이야기가 정퇴 전에 불거져 나왔으면 그분도 더 빨리 그만두려 하지 않았을까?’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사례 4>의 선생님을 보자. 그는 연금 삭감 뉴스를 보면서도 정퇴를 고수한다. 학교 경영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학교 표창이 수두룩하다. 성직관과 전문직관이 몸속 깊이 새겨져있다. 학교에는 이런 선생님이 참 많다. <사례 5>는 행복한 명퇴의 경우이다. 필자도 여기에 해당한다. 정년 4년 남기고 명퇴했다.
동화 작가는 초등학생 4학년 때부터의 꿈이었다. 몇 년 전 동화 공모전을 통해 정식 등단했고 작년 말에는 장편동화 한 편을 더 출간했다.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고,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전국의 어린이들도 만나고 싶었다. 아이들과 주변 사람에게 꿈을 펼치라고 거의 매일 말하다 보니 나 자신도 꿈에 집중하게 된 셈이다. 꿈을 좇다 보니 저절로 명예퇴직 준비를 미리 해 놓은 셈이 되었다. 퇴직하자마자 수염을 길렀다. 자유인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한창 근무하는 대낮에 야산에 올라 등산로를 활보해 보기도 했다. 떠밀려서 다니는 길을 내 마음대로 한적하게 걸어보고 싶었다. 새벽 수영반에 등록했다. 수영 후 느긋하게 정리 체조까지 마치고 샤워장으로 갈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샤워기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체중도 7kg이나 줄였다. 현직에 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늙어 보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사례 2, 4>에 해당하는 선생님이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선생님들을 보면 교육이 견고한 성 안에서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명퇴 생활을 즐기고 있으면서도 <사례 2, 4>에 해당하는 선생님들이 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놀부 심보일까? 필자는 누가 명퇴하겠다고 말하면 은근히 훼방을 놓는다. 다들 교직관이 투철하니까 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비교적 젊은 후배가 “저도 명퇴해 버릴까요?”라고 물어오면, “자녀는 출가를 시키셨나?”라고 되묻는다. “축의금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지. 아들이 결혼도 안 했는데 퇴직해 봐. 자녀 혼사에 영향을 줄지 몰라. ‘네 시부될 사람은 일하기 싫어서 중간에 그만두었다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보나마나 태만할 거야’라고 상대방 부모가 딸에게 말할지도 모를 일이오. 아들 앞길 막으시려고?”
간혹, “내 아들 결혼시키려면 내 나이 일흔 돼도 명퇴 못 해요!”라고 외치는 후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명퇴 수당과 연금이 있긴 하지만 수입이 줄어. 견딜 수 있겠어? 당신 딸은 예술 전공이라며? 돈이 많이 들 텐데…….”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겠다는 대답도 듣는다. 그러면 “퇴직 후 직업은 봉사활동이래. 봉사도 돈 있어야 받아준대”라고 명퇴를 은근 가로막지만 이미 마음이 굳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요즘 추세라면 명퇴와 정퇴는 길어야 6년 간격밖에 되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된 선배 선생님도 있다. 이럴 때는 좀 추상적인 질문으로 명퇴를 방해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김일환 동화작가 前 서울양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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