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라는 좋은 말이 있음에도 왜 굳이 ‘멘토’라는 이름을 붙이는 걸까? 아쉬움이 느껴지던 찰나, 고교 시절 스승님이 떠올랐습니다. 지식중간도매상처럼 지식만을 전달해주신 것이 아니라 지혜도 전달해주신 ‘멘토’같은 스승님, 삯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교육을 베푸신 그리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델이 되어주신 스승님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꽃다발을 한아름 받았습니다. 학생들 박수와 환호 속에 향기가 물씬한 꽃다발이었습니다. 꽃과 함께 받은 학생들의 감사 편지에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고맙답니다. 존경한답니다. 그리고 베푸신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겠노라고 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스승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멘토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이 운영하는 코멘트데이(코리아 멘토의 날)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멘토와 그들의 멘티가 다 함께 만나는 축제날입니다. 멘토와 멘티의 만남을 축하하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아쉬운 면도 있었습니다. 왜 하필 멘토와 멘티라고 했을까요. 그 좋은 스승과 제자라는 말을 두고…. 특히 스승이라는 아름다운 고유 우리말이 있는데….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는 날이 되었다는 것을요. 검색창에 스승의 날을 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물 추천 바랍니다. 선물 때문에 엄청 고민했는데….”, “빤한 선물 지겹더라고요.”, “담임쌤이 이번이 마지막이라 해서 선물을 사줄까 하는데….” 아니, ‘사줄까’라니요!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아찔합니다. 어쩌다가 스승의 날이 이토록 불편한 날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에게 교사와 교수는 더 이상 하늘같은 스승이 아닌가봅니다. 어버이 같은 존재도 아닌가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어버이 같았던 스승님. 제가 고등학생 시절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혹시나 싶어 검색창에 그분의 성함을 쳐보았습니다. 참으로 반갑게도 은퇴하시면서 국가가 주는 ‘교육자 상’을 받으셨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역시! 상 받으신 게 당연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학생들에게 많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시고, 학생을 존중해주시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용돈도 주셨습니다. 제게는 멋있게 사는 인생의 비전을 주셨고, 그 분을 닮고 싶다는 간절함도 주셨습니다.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왜 저를 가르치신 많은 선생님들 중에 그 선생님이 스승님의 모습으로 떠올랐을까요? 아마 그분은 제게 지식을 전달해주신 지식중간도매상이 아니라 지혜도 전해주신 멘토였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삯을 위한 교육만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교육을 베푸신 스승이셨고, 무엇을 하며 사는가와 동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졌고 찾아뵙고 싶어졌습니다. 꽃다발 사들고 감사하다는 말, 존경한다는 말, 그리고 저 역시 선생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정보가 떴습니다. 스승님께서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진작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에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지만 부족한 제자는 어리석게도 인간의 도리를 뒤늦게 깨닫고 말았습니다.
후회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제 자신은 스승님 살아생전에 꽃 한 송이 드리지 않았으면서 오늘 제자로부터 꽃다발 받고 좋아하고 있는 제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고 창피합니다. 부끄러움과 그리움을 달랠 길 없어 또 한참 울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깨달음에 위안을 삼습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제 제자들로부터 선물 받을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그들 손잡고 건재하신 다른 한분의 스승님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제 제자들 앞에서 스승님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승님을 제 제자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닮고 싶은 스승님을 둔 저의 기쁨을 제 제자와 함께 누리고자 합니다. 스승님을 어버이 같이 여기는 모습을 제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스승의 날의 고귀한 의미를 되찾고자 합니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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