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라, 사과해라.” 요즘 여기저기서 참 자주 듣는 말입니다. 아마 마음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나 봅니다. 사과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뒤틀린 관계가 회복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곧바로 사과하는 게 도리이며 갈등을 해소하는 현명한 처사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사과해도 상대방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더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치고 어정쩡해지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자는 효과적으로 사과하기 4불4행을 제안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네 가지와 해야 할 것 네 가지를 뜻합니다. 4불에 해당되는 ‘...했다면’, ‘그러나’, ‘용서해 달라’, 그리고 ‘이제 잊자’는 말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역효과를 불러오는 ‘어긋난 사과’
“저 때문에 섭섭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고개 숙이며 정중히 말했지만 상대방의 심기는 더 불편해집니다. “아니, ‘섭섭했다면’이라니!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내가 옹졸한 인간이라는 뜻인가?” 조건부 발언은 불쾌합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해명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라는 접속부사가 앞서 한 사과의 효력을 무효화해버립니다. 또한 본인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회피성 발언의 뒷맛은 씁쓸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려 놓고는 되레 본인의 죄책감 부담을 덜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본인의 감정적 니즈(needs)를 챙기는 자기중심적인 발언은 괘씸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지나간 일은 잊고(뒤로하고, 정리하고) 앞으로 잘 지냅시다.” 더 이상 과거에 억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는 뜻입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사람의 심리와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매듭지어 지고 일정한 시간 스케줄 따라 움직여지는 게 아니지요. 일방적 재촉 때문에 마음이 더 심란해집니다.
“아니, 이 정도로 사과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을 풀지 않아? 허 참,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야!” 드디어 짜증나고 꼴통 같은 상대방이 경멸스러워집니다. 문제는 비록 말을 내뱉지 않아도 짜증은 억양에 묻어나고 경멸은 얼굴 표정에 고스란히 나타나 상대방에게 비구어적으로 전달됩니다. 경멸당한 상대방의 심기는 불편함이 아니라 심한 분노로 변해버립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돼버립니다.
해명은 간단하게, 고마움은 찐하게
효과적인 사과에는 4불 대신 4행, 즉 네 가지 실행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성을 듬뿍 담아서 사과하고, 간단하게 해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상대방의 기분이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4행을 반복해야 합니다. 진정한 해명은 상황을 설명해서 적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고의성은 없었음을 밝히고, 그럼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상대방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해명은 간단해야 합니다. 사과한 후에 말이 장황하게 이어지면 본인의 입장을 앞세우는 것처럼 오해받기 쉽습니다. 특히 핑계로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많이 막혔어요. 서둘러 나온다고 했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막히는 바람에….” 핑계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마음속으로나마 “그래도 난 시간 맞췄는데, 넌 뭐야!”하며 항의하게 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많이 막혔어요. 제가 좀 더 서둘러 출발하지 못한 게 불찰이에요.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사과에 마음이 풀립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장본인이 확실하게 지기 때문입니다. 잘못의 책임을 본인이 지면 해명이고 남에게 전가하면 핑계가 됩니다.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알고 나면 한동안 힘이 듭니다. 나는 남에게 제대로 사과하지만 (아직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남은 나에게 그리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당부하세요. 제대로 된 ‘4불4행 사과‘는 내가 남에게 하되 남이 내게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조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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