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단’ 만들어 한국교육, 세계로 진출해야”

2015.07.01 09:00:00

새로운 교원상이란 요구하고 부여받는 교권, 스승상이 아닌 교사가 스스로 학교·사회·세계

속에서 솔선하고 공헌함으로써 신뢰와 지지를 끌어내자는 한국교총이 제시하는 새로운 교

원상 정립 운동을 말한다. 무엇보다 진취적 세계관으로 글로벌교육을 실시하자는 주장은 교

육계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한국교총 회장-현장교사 좌담회]

• 좌담 참석자 I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서정현 경기 성남 내정초 교사
                     이혜인 서울 신창중 교사, 이이찬 서울 삼성고 교사
• 일시 및 장소 I 2015년 6월 16일 한국교총 회장실


'새로운 교사상'은 무엇?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지난 34회 스승의 날 기념사에서 교원 스스로 자긍심과 교권을 높이 세우는 즉, 학교와 사회, 세계를 향한 새로운 교원상 정립운동을 제안했다. 국가와 사회가 교원을 공경하고 전문성을 존중하는 시대는 사실상 지나갔다는 점에서 정부 및 정치권, 사회에 기대어 교권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교원 스스로 주체가 되어 교권을 확립하자는 의미다.

이와 관련, 교원 스스로 새로운 교원상을 정립하고 교육과 교직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교권과 교육발전을 위해 교사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6월 16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총 회장실에서 열린 현장교원 좌담회에는 안양옥 회장을 비롯해 서정현(38) 성남 내성초 교사, 이혜인(28) 서울 신창중 교사, 이이찬(46) 서울 삼성고 교사 등이 참석했다.

학교는 행정조직으로 전락...교사가 변혁의 주체 돼야

안양옥 |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 어느 때보다 교사의 역할, 교사의 존재감이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좌담회에 20~50대 교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만큼 각 세대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세계 속의 교실을 만드는 새로운 교사상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이찬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교사가 교과 전문가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교육정책 실천가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 교육은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혜인 | 교직 2년 차여서 교사상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못 해봤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정도입니다.

안양옥 | 저도 20대 때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엔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주위에서 미쳤다고 할 정도로 아이들하고 같이 생활을 했어요. 저는 교사가 아이들하고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65일, 하루 24시간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특성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교사는 일종의 ‘점쟁이’가 돼야 하는 것이죠. 또 교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학부모와 한마음이 되어, 동일한 교육관을 갖고 학생을 위한 공동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학사모일체운동(學師母一體運動)’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서정현 | 최근 들어 교직사회가 급격히 무력해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주변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사실 학교에는 우수한 재원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데 문제는 그들의 열정과 끼를 펼칠 데가 없다는 점이에요. 얼마 전 서울교대를 갔더니 행정고시 동아리가 생겼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넘치는 실력을 풀 길이 없으니 교사보다는 직업 관료가 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선배들 생활하는 걸 보니 답답하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지금 교직사회는 교장, 교감으로의 승진 외에는 통로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교사가) 거대한 국가 정책에 끌려 다니는 서비스 요원이 된 것 같다는 자괴감을 토로하는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안양옥 | 제가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그 점입니다. 학교

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행정기관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보다는 행정조직 요원처럼 생활하게 된 것이죠. 이제라도 ‘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학교를 향한 사회의 요구는 거대한 쓰나미가 돼 몰려오고 있습니다.

과도한 체험교육은 득보다 실… 학생들 부담만 키운 건 아닌지


이이찬 | 한국 교육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사들의 열정과,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지금보다 더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교육에 매진한 결과가 아닐까요.

안양옥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주석은 한국 교사들을 국가 건설자인 ‘네이션 빌더’(Nation Builder)라고 칭송하고 우리의 존사(尊師) 정신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오히려 교권 존중의 전통이 약화되고 교권이 무시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멀리 보면 5·31 교육개혁 이후 몰아닥친 수요자중심 정책기조와 단임 정부의 선언적이고 일회성의 형식적인 교원사기진작 대책, 그리고 정부의 의지 부족이 크게 작용하면서 대다수 훌륭하고 우수한 교원들이 교직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잃어버렸습니다. 교권 추락이라는 부정적 현상도 갈수록 심해졌고요.

사회 | 학교 안에서 교사의 위상이 갈수록 약화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안양옥 | 과도한 체험중심과 수요자중심 교육이 교사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체험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교육을 학교가 아닌 외부 기관과 인력에 의존하고 그런 상황에서 교사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방과후 교육도 결과적으로 교사를 (외부강사와) 비교 대상에 올려 신뢰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혜인 |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요구되는 교육의 측면도 다양해지기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교사 한 명에게 팔방미인적인 모습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변화에 맞서기 어렵다고 봅니다.

안양옥 | 제 말씀은 모두를 교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체험교육 과잉 현상을 지적한 것입니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여야지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또 체험교육이나 자유학기제 등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준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고요. 법원으로 병원으로 아이들 보내서 판사 의사를 꿈 꾸게 하지만 실상 이것이 아이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혜인 | 올해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는데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아요.

안양옥 | 최근 메르스 사태 때 학교 휴업 여부를 학교장 자율에 맡겼더니 ‘휴업하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쳤잖아요. 학부모들이 학교 문을 닫아버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헐벗고 굶주릴 때도 학교 문은 열고 교육을 시켰는데 이제는 ‘내 자식 내가 가르칠 테니까 학교는 적당히 하고 보내라’ 뭐 이런 식이 된 것이죠. 그들에게 교권 확립을 요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에 맞는 교사상 정립 시급


이이찬 |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맞는 교사상 정립이 시급하다고 보이는데 안 회장님께서 주창하신 ‘새로운 교사상’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양옥 | 국가나 사회가 교원을 공경하고 전문성을 존중해주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심지어 교사들을 단순한 기능인이나 직장인 취급을 하고 방학을 즐기는 유한 직종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어요.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는 한 교원 존경 풍토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원을 존중해 달라며 사회나 정부에 호소하기 이전에 교원 스스로 교권을 지켜나가야 할 시기가 된 것이죠. 그간 잃어버렸던 ‘존사애제’(尊師愛弟)의 교원상을 교원 스스로의 손으로 새롭게 세워 실천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원 스스로 연구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자기성찰과 사회공헌활동, 그리고 학교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세계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교원상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교원이 변혁의 주체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서정현 | 그 말씀에 동감합니다. 교육은 창조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잖아요. 교사들이 용기를 갖고 사회적 편견과 한계에 도전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안양옥 | 교사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예우와 보상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네이션빌더라며 칭송할 만큼 우수한 분들 아닙니까. 저는 우리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교사들의 열정과 초등학교 의무교육 시행을 들고 싶습니다. 우수한 교사와 초등의무교육은 대한민국이 교육 강국이 될 수 있는 결정적 원동력이 됐습니다. 문맹에서 벗어나면서 지식이 발전하고 인성교육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죠. 지난 5월에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많은 개발도상국가는 우리 교사들의 능력과 교육 시스템을 가장 부러워했습니다.

서정현 | 저 역시 한국의 교육열과 교사의 전문지식이 모여, 교육이 낙후된 지역과 멘토-멘티를 맺어 책임 있는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화 시대에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도 가질 수 있을 것 같고요.

안양옥 |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지어주고 다리 놔주고 하는 게 원조가 아닙니다. 우리의 우수한 교사들이 해외로 나가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또 세계로 뻗어 나가 교육한류를 전파하고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교사가 되자는 것이죠.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국의 평화봉사단처럼 가칭 ‘평화교육단’을 만들어 세계 여러 나라 교육현장의 봉사와 교육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과 교원의 우수성을 알리고 글로벌 역량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박 대통령께서도 “외국 순방 때 현지에서 우리나라 교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일화를 말씀해주시더군요(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안 회장의 교사 해외파견 주장이 나온 직후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개발도상국에 교사를 파견하는 국제개발협력사업(ODA)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 |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이혜인 | 교사의 가장 주된 업무인 수업보다 과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현상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제 경우 행정업무를 하느라 일과 중 수업 준비를 못 해서 퇴근 후 수업 준비를 하는 날이 많습니다. 일과 후에도 쉬지를 못하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업무 만족도도 크게 떨어졌어요. 어떤 때는 ‘내가 정말 교육자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학교에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에 빠질 때도 있어요.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교사의 자긍심도 살아날 거라고 봅니다.

이이찬 | 요즘 사제지간의 우정은 무너지고, 학생과 교사의 신뢰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접근을 한다면 학생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것이며, 이러한 믿음이 쌓인다면 교사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질 것입니다.

안양옥 | 대한민국 교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입니다. 그들은 천부적 능력으로 한국교육의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와 정부, 그리고 잘못된 교육정책이 교사들의 의욕을 꺾고 우수한 인재들을 둔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기대할 것은 오직 교육뿐입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교원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고 교권을 굳건히 확립하는 정도(正道)를 걸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편집부 / 사진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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