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와 동아리가 학교문화 바꾼다!

2015.07.01 09:00:00

‘행복+++’ 학교 강원 묵호중학교

교권 vs 인권, 해묵은 논쟁은 그만~



망상해수욕장과 묵호항 사이에 위치한 묵호중학교. 조금은 사납고 거칠 것만 같은 이미지의 바닷가 남자 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런데 웬걸,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복도와 운동장. 큰 소리로 인사하는 예의바른 학생들. 밝은 표정의 교사들을 보니, 따가운 6월의 햇살을 맞으며 새벽길을 나선 피곤함이 사라져 버린다. 소문(?)대로 학교폭력도 체벌도 없지만 인성교육이 잘 되고 있음을, 굳이 누군가의 입을 빌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포스를 묵호중학교 스스로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더하기)학교’를 모토로 한 강원도형 혁신학교인 묵호중은 서울과 경기도의 신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갈등도 반목도 없고, 학력은 물론 인성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는, ‘교권과 학생인권, 학부모 신뢰’까지 조화를 이룬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토끼를 잡은 행복+++(트리플)학교’를 3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이루어 낸 것이다. 그 성과의 비결을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들어봤다.


교육벌 : 스스로 만들고, 지키며 책임감 키우기

묵호중은 학교생활규정 개정을 위한 간담회가 수시로 열린다. 간담회에서 학생대표들은 학부모와 교사와 마주한 자리에서 재미있는 수업, 행복한 수업을 위해 자성(自省)의 일환으로 교육벌을 제안한다. 수업을 방해하면 스스로 벌을 달게 받겠다는 약속을 한다.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지난해보다 업그레이드된 안을 내놓는다. 이 제안에 따라 수업을 방해한 학생은 방과 후에 자신이 받을 벌의 종류를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이를 실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이들이 가장 쑥스러워 한다는 벌은 <원어민 선생님과 프리토킹>, <‘사랑
합니다’라고 말해요> 등이고, <태극기 닦기>처럼 나라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벌에서부터 창의력을 자극하는 유형의 벌도 있다. <사물의 새로운 용도를 30가지 쓰세요>와 같은 방식이다. 이 같은 벌을 경험한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방해하면 자신이 느꼈던 곤란함을 들려주며 제지하는 등 든든한 ‘수업도우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표-1]) 


학생부장은 “<욕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 30가지>를 적으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싸운 아이들이 함께 도미노 쌓기를 하면서 화해를 하거나 협동심을 키우게 된다”면서“‘이게 벌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벌 받는 학생들이 차라리 맞는 게 낫겠다고 할 정도니 체벌보다 확실한 벌이다. 또 수십 가지 항목 중에서 자신이 선택해 벌을 받기에 아이들의 불만도 없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반목도 없다. 이보다 더 특별한 벌이 있을까 여겨질 만큼 영양만점, 효과만점인 셈이다.

게시판은 소통의 장 : 하복 반바지도 "오케이!"

‘학생의 소리’라는 게시판도 흥미롭다. 처음엔 ‘남녀공학을 만들어주세요’ 같은 장난스런 요구도 많았지만 ‘진지하게’ 답변을 달아주니 아이들도 진지해 졌다. 게시판 요구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액세서리 착용, 교복과 체육복 반바지 착용 등의 요구였고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교복도 원하면 반바지로 입을 수 있고, 학생들의 희망으로 삼겹살도 점심 메뉴에 추가됐다.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도 충실하게 답변을 달아 준다. 박병태 교장은 “복장이나 두발 문제로 교사와 학생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소모일 뿐”이라고 쿨(!)하게 정리한다. 게시판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 것은 교장선생님의 민주적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학생과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자생적 동아리와 학교폭력 잡는 '피스메이커'

2013년 10개에 불과했던 자생동아리가 이제는 밀리터리 모형 조립반, 개그 동아리반, UCC 제작 동아리반, 프로그래밍반 등 21개의 자생동아리와 9개의 교사 주도 동아리로 확대됐다. 이들의 활동모습은 UCC로 만들어져 축제의 시작 프로그램으로 활용,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동아리활동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학교생활 만족도까지 높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주향숙 교감은 “지역 특성상 1년정도 근무하고 강릉으로 전근이 많아 교사중심 동아리는 지속성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었다”면서 “학생들이 동아리를 조직하고 교사를 위촉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니 훨씬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이동수 학생부장도 “처음엔 저도 잘 모르는 ‘플로어볼’이라는 동아리를 아이들이 맡아 달라고 해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자극이 됐다”고 덧붙였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교사라도 아리지도를 맡아 여행코스를 만들고 안전 등을 살피는 지원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피스메이커’ 역시 자생동아리의 하나다. 어떤 방법으로도 잘 되지 않던 학교폭력이나 왕따 등의 문제들이 묵호중에서 사라진 데는 이 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피스메이커’는 전 학년 각 반에 한두 명씩 있으며, 학생자치회에서 추천하거나 자원하면 심사를 거쳐 선출된다. 이 중에는 속칭 문제아였던 학생들도 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 ‘피스메이커’는 모든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왕따 당하는 아이가 없도록 도와준다.


삼위일체로 학교변화 이끈 학생, 교사와 학부모 박 교장은 “묵호중학교의 이런 변화는 지금은 졸업한 한 학생의 의견에서 시작됐다”며 학교를 변화시킨 모든 공을 학생들의 공으로 돌렸다. 하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것일까.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교장선생님의 민주적 리더십이 없었다면, 3D 업종이라며 꺼리는 학생부장을 5년째 맡아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교사가 없었다면, 전근이 많은 지역 특성에도 불구하고 전입 교사들이 학교의 방침대로 연수 등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살피는 교감선생님이 없었다면, 학부모들이 학교의 교육방침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노력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묵호중을 이루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교육벌 <도미노 쌓기>와 <퍼즐 맞추기>처럼 한 조각이라도 빠지거나 아귀가 맞지 않으면, 즐겁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거창한 인성교육을 표방하지 않아도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그렇게 인성은 아이들의 마음에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
편집부 / 사진=묵호중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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