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적 교사 vs 전인적 교사

2015.08.01 09:00:00

영화 <어벤져스>가 인기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각자 놀라운 재능을 지닌 히어로들은 전 우주적인 악당들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를 이끄는 교사상도 이런 관점에서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 ‘십인십색’의 아이들을 혼자서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교사상이 아니라 여러 개의 ‘교사상들’이 필요하다.

최고의 교사
미래 한국 교육에 꼭 필요한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세계 속에 우뚝 선 한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자는 어떤 이인가? 그 교사의 모습을 뚜렷하게 그리라는 것이 내게 맡겨진 주문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비교적 흔하다.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진행되어 온 흔적이 있다. 새로운 세기(millennium)나, 백 년, 십 년이 시작될 때, 혹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다. 또는 교육의 현실이 어렵고 심각한 문제가 속속 생겨날 때도 예정 없던 재점검과 새 그림 그리기가 펼쳐진다. 이런 일이 처리되는 통상적인 방식이 있다. 주로 이런 식이다. 우선 앞에 놓인 문제점들을 나열한다. 그 원인을 파악한다. 해결 방향을 찾는다. 해결에 필요한 자질들을 나열한다. 마지막으로 그 자질들을 모두 갖춘 이상적 교사의 모습을 그린다. 초승달 같은 눈썹, 별같이 빛나는 눈, 오뚝 솟은 코, 앵두 같은 입술을 하나로 모아서 최고의 미인을 그려내듯이 말이다.

대략 이렇게 그려진 최고의 교사는 시기마다 다른 이미지로 드러난다. 예전에는 ‘군자로서의 교사’, ‘선비로서의 교사’, 심지어는 ‘보살로서의 교사’ 등과 같은 동양적 이미지로 그려졌다. 근자에는 ‘배려적 교사’, ‘변혁적 교사’ 또는 ‘반성적 교사’와 같은 서양적 이미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지닌 구체적 자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히 못 하는 것이라고는 없는 ‘전능적 교사(全能的 敎師)’인 것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경향으로 보인다. 현재는 언제나 문제투성이며 복잡한 세상이다. 교육의 이상적 상태를 이루기 위한 문제 예방과 해결을 위해서는 보통 교사는 역부족이다. 일종의 교육적 히어로가 필연적이다. 그러니 이상적 교사의 모습이 전능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엄친아’ 교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교사협회의 ‘교사자질표준’이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개발해놓은 ‘교사자격기준’을 보라. 일반교사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자질이요, 기준들이다.

전인적 교사
나는 이런 전형적인 방식에 약간의 회의를 가지고 있다. 도대체 이런 자질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현실적 교사가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다만 몇이나 될까? 전국에, 한 시·도에, 한 지역청에, 그리고 한 학교에 말이다. 교과지식, 수업기술, 학생 이해 등등 10개의 영역에 5에서 10가지 정도의 세부 자질을 3이나 5단계 수준별로 다 갖춘 이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사실 리스트를 보는 거의 모든 이들은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다. 노골적인 비하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물론 예비교사를 제대로 교육하고 현직 교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구체적 조처를 취하려면 이런 방식의 접근은 필요하다. 비빌 언덕이나 기준 즉, 적어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출발점과 최종적인 도착점에 대한 가시적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는 해도 이 방식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겉보기는 그럴듯해도 실효는 없는, 외화내빈의 속 빈 강정 같다. 현장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일개 교사인 나 개인하고는 그다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자질 또는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역량들을 모두 갖추는 것은 평범한 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이 이슈에 대한 대안적 접근은 없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의 본성은 체성(體性), 지성(知性), 감성(感性), 덕성(德性), 영성(靈性)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은 몸과 마음(지정의)과 영혼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 이 다섯 가지 본성(五性)이 각각 올바로 성숙하도록 하며, 전체가 서로 강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품부(稟賦) 받은바 원래 모습의 ‘온전한 사람(全人)’이 되는 길이다. 교육이란 이 오성을 온전히 기르고자 하는, 본성 완성의 노력이다. 미숙에서 성숙으로 이끄는 일이다.

교사는 학생을 이러한 온전한 상태로 이끄는 사람이다. 어떤 교과를 가르치든 간에 교사직을 맡은 사람의 최종 목표는 이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수학문제를 아무리 잘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학생의 체성, 감성, 덕성, 영성과 강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로 머무른다면, 그래서 그 학생이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숙하는 데 긍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수학교사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전능적 교사의 입장에서는 혹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인적 교사’에게는 그렇지 않다.

전능적 교사의 접근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사회를 선도하는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교사가 어떤 역량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반면에 전인적 교사는 인간으로서 학생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키고 완성하는 교육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교사가 어떤 성품을 지니고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전자는 교육 현실적 입장, 후자는 교육 본질적 입장이라고 할까? 전자는 사회가 변화할 때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전면적으로 또는 국부적으로 다른 모습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후자는 항구적이다. 인간이 지닌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교사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교사의 이미지는 겉모습과 속 모습, 두 층에 걸친 것이다. 전능적 교사의 관점은 겉모습에 대해서, 전인적 교사의 관점은 속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시대와 유행에 따라 외양은 바뀐다.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리고 같아야만 한다. 인간은 인간스러워야만 하고, 사람은 사람다워야만 한다. 교사의 속 모습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의 체성, 지성, 감성, 덕성, 영성은 언제나 알차고 풍성해야만 한다. 이런 사람만이 전인적 학생을 길러내는 일을 해낼 수 있다.

교사 '어벤져스'
그런데 오성이 총체적으로 완성된 교사 역시 또 다른 이상이 아닌가? 전능적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량들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과 결과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은가? 전인적 교사상에서 말하는 5가지 본성을 완성하라는 주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 세상에 5가지를 다 갖춘 이가 어디 있느냐는 게다. 정당한 지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최의창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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